미국 목사들끼리 하는 욕 


 장찬영 목사

우리가 자주 쓰는 ‘영성’이란 용어는 17세기 프랑스에서 출간된 영성에 관한 책에서 기원되어 오늘날 ‘영성신학’ 혹은 ‘영성목회’ 등의 말로 구체화된 말입니다. 이에 대해 여러 정의를 내릴 수 있지만, 그 원래적 의미는 “영혼과 하나님 사이에서 순수하게 영적인 것을 추구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말이 참 좋습니다. 무엇보다 ‘순수하게’라는 표현이 더 그렇습니다. 이런 가운데 근간에 영성이란 말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그만큼 우리가 소음과 불화음 속에서 살고 있음을 보여주는 역설적 사인이기도 합니다. 불행한 일이지만, 사실입니다.

 

저는 우리교회의 영성을 대단히 자랑스럽고 감사하게 생각하는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왜 그러냐고 묻는다면, 저는 우리교회 안에 흐르는 영성의 순수함에 그 이유를 두고 싶습니다. 이 말은 지난 주 연차총회에 참석하셨던 한 목사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우리교회를 나름대로 잘 알고 계시는 그 목사님은 우리교회가 이러한 영적 분위기를 잃어버리지 말고 잘 지켜 나가기를 바란다는 마음이셨습니다. 그만큼 순수함을 잃어버리고 예수님의 마음과 열정을 잃어버린 교회와 성도가 많기 때문입니다.

 

왜 그럴까요? 왜 혼탁해질까요? 왜 순수하지 못하고 자꾸 복잡해 질까요? 그것은 바로 구원의 감격, 바로 첫 사랑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지난 연차총회 차 들렸던 아틀란타에 갔다가 다일공동체가 운영하는 한 카페에 잠시 들릴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화장실 벽에 걸린 액자의 글귀 때문에 화장실 안에서 평소보다 길게 묵상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액자에는 바로 ‘처음처럼’이란 글이 씌여 있었습니다. 아, ‘처음처럼. . . ’ 근데 왜 처음처럼 안 될까요? 긴 얘기를 한 마디로 줄인다면 바로 성령님과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오시면 순수와 불순수가 가려지집니다. 성령님은 진짜 교회와 그리스도인을 가름짓는 키이며, 처음의 감격을 찾아가게 하는 유일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미국 목사들끼리 하는 욕 가운데 “성령없이 목회하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냥 지나치기에는 소름까지 끼치는 말입니다. 마치 성령이 떠난 교회가 연상 될 정도로 기가 막힌 말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떠났다는 말은 적당치 않은 것 같습니다. 성령님은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했기에, 사실은 우리가 성령님을 환영하지 않는다는 표현이 옳습니다. 성령님을 환영하지 않는 교회. 성령님께 별로 관심이 없는 교회. 성령님을 막연하게 생각하는 성도. 성령세례의 경험없이 신앙생활하는 성도. 너무도 가슴아픈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지난 4년 동안 부단히 성령님에 대해서 집중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루머와 불평과 오해와 갈등으로부터 순수와 열정과 섬김과 관계의 회복을 경험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성령님을 영접하고 성령님을 환영하고 성령님을 고백하면서 교회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들은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되었고,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을 통해 오는 진정한 기쁨을 회복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사람을 보고 교회 나오거나 인본주의적 믿음을 가졌던 사람들에게는 갈등이었지만, 성령님은 당신만이 교회의 주인임을 보여주셨습니다. 성령님은 꿈을 꾸게 하시고, 성령님은 회복시키십니다. 성령님은 하나가 되게 하시고, 복음전파의 열정을 갖게 하시고, 이전의 잘못된 습관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분리시킵니다.

 

베니 힌 목사님이 쓰신 “Good Morning, Holy Spirit?”이라는 제목의 책에 보면, 목사님은 성령세례 받던 그 날 이 후로부터 매일아침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안녕하세요, 성령님?”이라는 인사와 함께 하루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는 자신의 생각으로 살지 않고 성령님께서 자신을 완전히 지배하도록 하는 삶의 비결을 터득한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삶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성품을 만지시고, 우리의 생각을 순전하게 하십니다.

 

저는 우리교회가 가지고 있는 이 영적 순수함을 자랑합니다. 순수함은 어린아이같은 것입니다. 순수함은 엎드림이요, 자기포기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사는 이유는 못 배워서가 아닙니다. 몰라서가 아닙니다. 배울 만큼 배웠고, 알 만큼 알지만 세상의 방법대로 살지 않습니다. “순수하게 영적인 것에 집중하는 힘” 바로 그 사람의 영성이자, 실제적인 영적집중력입니다. 그러면 제대로, 잘 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