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미투 운동에 즈음하여

논설위원 임용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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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미투 운동 가해자로 지목된 배우 조민기씨가 경찰 출석을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있었다. 또한 수년간 학생들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한국외대 교수가 숨진 채 발견돼 경찰이 조사 중이라는 17일 뉴스 보도가 있었다. ‘미투’ 관련 사망은 지난 9일 숨진 배우 조민기씨에 이어 두 번 째다.

 

최근 자신이 관련된 문제로 검찰 조사를 앞두거나 큰 위기에 처한 유명 인사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왔는데 이번 일도 그러한 이유 때문에 조금 염려하긴 했어도 다시 또 그런 일이 연이어 발생 했다는 소식에 대해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극단적 선택은 당연히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것이 사실이지만, 또 다른 편에서 생각하면 그들의 선택은 비겁하거나 최악의 도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신이 그들에게 선사한 귀중한 생명을 자신이 함부로 자살로 끝냈다는 것도 비통한 일이지만, 그들의 이기적인 죽음은 남은 유족들을 탈출구 없는 영원한 나락으로 떨어트린 것이나 다름없다는 점에서도 매우 안타깝다. 더 나아가서는 피해자들에게도 어쩌면 그들의 죽음이 자신들 때문이라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고스란히 남겨 줬을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씨리고 아플 정도다. 물론 본인들이야 공인의 한 사람으로서 이런 부끄러운 행위들이 감당하기 두렵고 고통스러웠을 법도 하지만 차라리 대중 앞에 나서서 잘못을 시인하고 피해자들에게 사과 하며 죄 값을 치루는 것이 마땅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불현 듯 머리 속에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물론 그들의 죽음은 안타깝지만 잘못된 생각을 했고 무책임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다시는 이런 일들이 우리 주위에서 반복되지 않았으면 한다.

 

최근 우리 대한민국에서는 성범죄를 고발하는 미투 운동이 사회적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문화계, 정치계, 법조계, 종교계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성범죄 고발 사례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이 미투 운동(Me Too movement)201710월 미국에서 하비 와인스타인(Harvey Weinstein)의 성폭력 및 성희롱 행위를 비난하기 위해 소셜 미디어(social media)에서 인기를 끌게 된 해시태그(#MeToo)를 다는 행동에서 시작된 해시태그 운동(Hashtag activism)이라 알려져 있다. 이 해시태그 캠페인은 사회 운동가 타라나 버크(Tarana Burke)가 사용했던 것으로, 앨리사 밀라노(Alyssa Milano)에 의해 대중화 되었다고 전해진다.

 

밀라노는 여성들이 트위터((twitter)에 여성혐오, 성폭행 등의 경험을 공개하여 사람들이 이러한 행동의 보편성을 인식할 수 있도록 독려하였으며, 이후 수많은 저명인사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그러한 경험을 밝히며 이 해시태그를 사용했다. 이처럼 밀라노가 미투 캠페인을 제안한 지 24시간 만에 약 50만 명이 넘는 사람이 리트윗(retweet)하며 지지를 표했고, 8만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MeToo 해시태그를 달아 자신의 성폭행, 성추행 경험담을 폭로했다. 이때부터 이러한 운동은 전 세계적으로 퍼지게 되었다

 

우리 대한민국도 이미 이러한 운동이 깊숙이 파고든 상태다. 지난 2018129일 현직 검사 서지현이 JTBC 뉴스룸에 출연하여 검찰 내의 성폭력 실상을 고발하면서 전 영역으로 확산되었다. 연극연출가 이윤택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고발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널리 퍼져 나가면서 위력에 의한 성폭력 피해가 대한민국을 휩쓸었다. 이후 유력한 대선 후보 가운데 하나이자 충남지사였던 안희정, 노벨 문학상 후보 언급까지 될 정도의 문화계의 거장 시인 고은, 극작가 오태석, 배우 故 조민기, 배우 조재현, 배우 오달수 등 가해자로 지목된 인물들은 불과 2개월도 안 된 상태에서 수십 명으로 늘어났다. 이들의 민낯은 이 운동으로 인해 하나둘씩 들어나더니 마침내 그들의 과거 전적은 뒤로 가고 모두들 맥없이 무너진 상태다.

 

지금 대다수의 국민들은 이 미투 운동에 적극 찬성하고 있다. 그것은 이 운동으로 인해 점점 시회가 투명해지고 깨끗해 질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일 것이고,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성범죄를 줄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만들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염려되는 한 가지는 미투 운동이 확산됨에 따라 이를 악용하는 사례도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여기에 대한 특별한 주의가 요망된다. 최근 미투 운동이 활발히 진행되는 과정에서 청와대 게시판에는 아무런 근거도 없이 성범죄 피해 사례의 글을 올렸다가 여론이 거세지자 곧바로 글을 삭제한 사례가 있었다. 이로 인해 아무런 잘못이 없는 사람이 누명을 쓰고 피해를 입는 다면 피해자에게는 그의 인생사에 치명적인 독을 마실 수 있고 큰 오점으로 남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한편에는 이 미투 운동을 반대하며 너무 극단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이들은 미투 운동은 일종의 성추행, 성폭력으로부터의 해방을 주장하는 페미니스트(feminist)의 남성 혐오에 대한 거짓된 발상이라 치부하기도 한다. 밑도 끝도 없이 여성의 말 한마디면 상대 남성은 성폭력의 가해자가 되어 사회적인 지위와 명예를 잃는다는 것이다. 미투 운동을 하는 사람들 중 의도적인 악심을 품고 한 사람을 죽이려면 얼마든지 남자 한명 요절내는 것은 일도 아니라는 입장이다.

 

거짓 고소는 심각한 거짓말이며 말로 공격할 수 있는 최악의 개인적 방법이고 여기에다 미디어라는 핵폭탄을 싣는 다면 어느 것으로도 막을 수 없는 복수의 가장 예리한 칼날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물론 이러한 일은 우리 사회에서 분명 없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사안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미리 염려하며 앞서가는 것도 지금 순수하게 일고 있는 미투 운동에 찬물을 껴 얹는 일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주장들을 충분히 인지하면서 이성적인 시각으로 상황을 바라볼 때, 앞으로 이 미투 운동이 우리 사회에 많은 의미를 남길 수 있는 사건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앞선다. 우리 사회는 실제로 우월한 지위를 이용하여 상대를 성적으로 착취하는 경우가 많이 있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대한 지적이나 피해의 사실을 알리는 일은 정말 쉽지 않는 일로 여겨져 왔다.

 

막상 용기를 내 이야기를 해본들 오히려 가해자의 우월한 지위를 이용하기 위해 꼬리를 친 꽃뱀 정도로 매도당하기 쉽고, 오히려 피해자는 자신의 지위를 잃을까봐 피해당한 사실 자체를 쉽게 털어놓지 못하고 전전긍긍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실상은 어떠한가. 아름다운 시를 쓰며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던 고은 시인을 비롯하여 참신한 이미지 상을 뛰어 넘어 나라를 책임지며 국민을 보호하겠다고 대통령까지 꿈꾸던 존경과 사랑을 받던 사람도 그런 일을 저질렀다고 하니 이제 성범죄는 무식하고 음란하고 흉악한 사람들만이 저지르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 새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이제 사회적 위치나 명성,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가 보호막이 되던 시기는 이미 막을 내린 것이다.

 

지금 현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MeToo 폭로들은 많은 변화들을 일으키고 있다. 많은 정치인들이 흰 장미 브로치를 달고 미투 운동을 지지하는 #WithYou 캠페인에 함께하고 있으며 국방부와 일부 정당들도 미투 운동에 동참하며 여러 대안들을 내놓고 있다. 심지어는 문재인 대통령까지도 지난 226일에 피해자들의 용기에 경의를 표하며 미투 운동을 적극 지지하겠다는 의사를 밝힌바 있다.

 

미투 운동. 여성이 성범죄 피해 사실을 고백한다는 것은 사실 너무도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그런데 피해자들의 용기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함께 아파하고 응원해주는 인식이 생겨난 것은 대단히 긍정적인 일이다. 지금 미투 운동이 휩쓴 영역은 문화계, 정치계, 체육계, 의료계, 교육계 등을 뛰어 넘어 전 역역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일파만파 퍼져나가고 있다.

 

아직도 많이 감추어져 있을 성범죄가 이번 미투 운동을 통해 한번 뒤집어지고 나면, 후에는 아마도 이러한 우월한 지위를 이용하여 성범죄를 저지르는 행위나 기타 유사 행위들은 이 땅에서 많이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아마도 현재 거세게 일고 있는 미투 운동의 전과 후의 성범죄에 대한 인식의 차이는 생각보다 클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더 이상 권력에 의한 성범죄가 사라지고 피해자가 숨고 쉬쉬하는 그런 분위기는 이 땅에서 영원히 사라지길 기대해 본다.

 

이제 우리 종교계도 여기에 대한 입장을 밝힐 때가 되었다. 무조건 덮는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무조건 까발린다고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우리 기독교는 무엇보다도 성경적인 해석과 현명한 대처가 필요한 시점이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보아 문제시 되는 것을 사회적 여론이나 세속적 흐름이 압도적이라 해서 이에 편승해서 따라가는 것도 안 될 일이지만 무조건적인 침묵도 능사는 아니다. 물론 교회들 내에서도 뜻하지 않는 성범죄와 관련 된 변수들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잘못된 것은 회개하며 바로잡아야 하며 뼈를 깎는 아픔을 견딜 각오로 이를 도려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지금 우리 앞에 놓인 미투 운동에 대해서는 보다 적극적이고 선제적인 대응책이 필요하며 지혜로운 판단과 조심성 있는 행동이 요구된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죄에 관한 문제를 해결해야 함도 중요한 일이지만 죽을 생명도 동시에 살려 내야 할 사명이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