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엘서 1 강해(29)

오호라 날이여!

요엘 1: 13~20절                                                                                       작성자 정기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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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간 이어서...

요엘서의 주제는 장차 될 일들이다. 요엘서는 구약에서 신약의 요한 계시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요엘서 역시 분명히 될 일들이다. 여호와의 그 날들, 15절에‘오호라 그 날이여!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나니 곧 멸망같이 전능자에게로서 이르리로다’고 하셨다.

 

/‘슬프도다, 그 날이여! 이는 주의 날이 가까웠으며, 전능하신 분으로부터 오는 멸망처럼 그 날이 올 것임이라’고 했다. 우리가 알아 둘 것은 성경에서 그 날이여! 혹은 여호와의 날이여! 주의 날이여! 하는 말씀들은 대부분 종말을 가리킨다. 1차 적인 종말은 이스라엘이 구약 때에 당했으며, 또한 예수님이 초림 하셨을 때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한 자들이 영적으로 당했다. 그때에는 외관상으로는 보지 못했지만 나타나지 않았지만 그 때에 망한 자들이 많았다. 그리고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 재림을 말씀하고 있다.

 

그래서 여호와의 두렵고 떨리는 날이여! 이 말은 모두가 재림을 가리킨다. 구약성경을 보면‘여호와의 두렵고 떨리는 날’ ‘두려운 날’ 이 날은 전혀 과거에는 있지도 않았던 장차 닥쳐올 일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엘서를 대할 때 지금은 좀 어렵고 신앙생활하기가 힘들지라도 마지막에 닥칠 그 날을 대비해서 신앙생활을 바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먹고 싶은 것도 절제할 수 있고, 그리고 하기 싫은 기도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것들이 후에 가서는 하고 싶어도 못하는 날이 온다. 그래서 언제나 우리는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오늘 본문 1:13에 ‘제사장들아! 하고 부른다. 제사장들은 교회 제 1위에 속한다. 최고의 대표자들이다. 목회자를 말한다. 13절에 ’목사들아, 너희는 굵은 베로 동이고 슬피 울지어다. 고 했다.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굵은 베는 초상집에서나 입는 옷이다. 굵은 베옷을 입는 것은 회개를 말해 준다. 말세에는 슬피 울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우리 목회자들로부터 정신 차려야 한다.

 

목회자들로부터 평신도에 이르기까지 이제는 굵은 베옷을 입고 슬피 울라고 했다. 애통하고 애곡하라는 것이다. 통곡하라는 것이다. 마지막 때 특히 주의 종들이 정신 차리지 않으면 엄청난 슬픔과 통곡으로 고통하는 일이 일어난다. 이점을 우리가 알았다면 주의 종이 되었다는 것도 두렵고 떨리지 않을 수 없다. 주의 종들이 사명을 바로 하지 못한 책임이 너무도 크고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먼저는 제사장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슬피 울라는 것이다. 회개를 하라는 말씀이다.

 

한국교회 목회자들은 정말 이 때가 회개하라는 경고임을 깨달아야 한다. 요즘 종교세로 인하여 목회자들이 벌벌 떨면서 정권 실세들 앞에 복종을 하고 있다. 성도들이 월급 받아서 하나님께 11조와 각종 헌금으로 영광을 돌려드리고 있다. 이미 세금은 정부에 다 내놓은 것인데, 교회 헌금을 또 세금을 내란다. 목회자들이 혼비백산하여 종교세법에 대해 세미나에 끌려 다니고 있다. 전국 교회들이 합심하여 강하게 나가지 못하고 끝내 정치의 시녀노릇을 한다는 말인가? 이렇게 되면 목회도 끝장나는 날이 오고야 말 것이다. 오늘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어떻게 해야 만이 교회가 강하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것이다. 지금 한국교회는 위기이다. 기도해야 한다.

 

둘째는 단에서 수종드는 자들이다. 이들은 제 2위에 속하는 장로 권사 급에 속한 자들로 보면 된다. 또는 안수집사 또는 예배위원도 2위급에 속한다. 단에 수종드는 자들, 쉽게 말해서 교회에서 수종드는 자들은 다 포함된다. 단에서 수종드는 자들 중에는 성가대와 반주자, 예배를 도와 일하는 자들을 말한다. 이들이 정신을 차리라는 것이다.

 

셋째는 교회에서 제 3위급에 대해서 말씀이다. ‘수종드는 너희는 곡할지어다’고 했다. 곡하라, 통곡하라, 고 했다. ‘내 하나님께 수종드는 자들아! 이는 일반 성도들이라 하겠다. 충성된 일반 신자들, 너희는 와서 굵은 베를 입고 밤이 맞도록 누울지어다’고 했다. 이것은 곧 철야 기도하라는 것이다. 철야 기도를 통해서 회개하라는 것이다. 교회성도들이 제사장을 비롯해서 평신도에 이르기까지 회개하고 밤이 맞도록 기도하고 깨어있을 것을 말씀한다. 영적으로 깨어 있을 것을 가리킨다.

 

다시 본문 13에‘이는 소제와 전제를 너희 하나님의 전에 드리지 못함이로다’고 하셨다. 이 말씀대로 언젠가는 기도하고 싶어도 예배드리고 싶어도 이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못한다는 예기이다. 여기서‘소제’는 기도와 찬미를 가리킨다. 지금은 기도와 찬송을 밤새도록 한다고 해도 이를 금지할 자가 없지만, 그러나 앞으로 그러한 날이 온다고 했다. 또한‘전제’는 어떤 헌금, 제물, 헌신을 가리킨다.

 

그런데 예배드리는 것을 금지할 때가 오면 아무리 헌금하고 싶어도, 헌신하고 봉사하고 싶어도, 기도하고 싶어도, 제물을 드리고 싶어도 바칠 수 없는 날이 온다. 소제와 전제를 하나님 앞에 드리지 못하는 때가 온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이러한 날이 오기 전에 지금 신앙의 자유가 남아 있을 때, 미리 대비를 하여 하늘나라 창고에 많이많이 쌓아 두라는 말씀이다. 아멘!

 

다함께 13~14절‘제사장들아 너희는 굵은 베로 동이고 슬피 울지어다 단에 수송드는 자들아 너희는 곡할지어다 내 하나님께 수종드는 자들아 너희는 와서 굵은 베를 입고 밤이 맞도록 누울지어다 이는 소제와 전제를 너희 하나님의 전에 드리지 못함이로라 14) 너희는 금식 일을 정하고 성회를 선포하여 장로들과 이 땅 모든 거민을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전으로 몰수히 모으고 여호와께 부르짖을 지어다’ 아멘

 

지금 보신대로 하나님은 13~14절에서 계속해서 아주 강하게 말씀하고 있다. 아주 강하게 금식을 명령하신다. 금식은 육을 아주 죽이는 과정이다. 금식을 해 보아야 배고픈 사람의 사정을 알 수 있다. 금식은 대식가에게는 참으로 고통이 아닐 수 없다. 한 끼도 밤을 먹지 않으면 죽는 줄로 아는 사람은 한 끼도 못 참는다. 그러나 금식은 그만큼 자기를 철저하게 죽이는 일이다. 마지막 때 금식도 마찬가지이다.

 

금식하는 것이 훈련되어 있지 않으면, 먹는 것 때문에 어려움이 올 것이다. 마지막 때 금식 훈련이 되어 있지 아니하면 곧 닥칠 문제는 먹는 문제, 입고 싶은 것 때문에 천국을 포기할 것이다. 그러므로 거듭 말씀드리기는 금식기도를 미리 정해서 하는 것이 좋다. 금식은 전혀 밥을 먹지 않는 것을 말한다. 금식은 밥을 먹지 않고 물만 마신다. 금식은 밥을 먹지 않고 말씀만 먹는다. 밥을 먹지 않고 믿음만 먹는다. 밥을 먹지 않고 믿음만 먹으니 너무도 좋고 은혜가 넘친다.

 

다함께 (58:6)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아멘 이는 철저하게 육을 말한다. 흉악의 결박도 회개하고, 그러므로 금식이란 아주 좋은 것이다. 과거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금식을 했다. 종들이 했다.

 

(삼상 7:5) 사무엘이 가로되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 하매‘ 느혜미야 선지는 (1:4)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아멘. 느혜미야는 예루살렘이 훼파되었다는 소식과 그 사랑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빌론에 포로가 되어 잡혀가고, 그러한 소식을 접하고 너무도 가슴이 답답하고 애가 타서 결국 금식기도를 한다.

그 교회와 자손들과 그들을 위해서 금식을 한다. 금식기도는 엄청난 위력이 있다. 다윗이 위대했던 것은 시 35편에서 원수를 위하여 그들의 질병과 영혼을 위하여 금식하였다. 다윗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원수를 위해서 또는 원수들이 병들어서 앓고 있을 때 그 육체의 질병을 위해서, 그리고 그들의 영혼을 위해서 금식기도 하였다. 이 진리를 아는 사람들은 지금도 구국기도를 하는데 자신들의 육을 죽이고 생명을 걸고 금식하며 기도한다. 선지자 요나도 요나서 3장에서 금식 일을 선포하고 기도하였다. 하나님은 저 못된 니느웨성을 멸하기로 이미 작성하셨다.

 

그래도 하나님은 마지막 저들에게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 요나를 보내어 경고하도록 하셨다. 그런데 그 니느웨가 마지막 때 살아남을 성임을 본다. 그토록 죄악으로 인하여 타락한 백성들이 두 증인과 같은 심정을 가진 요나가 니느웨성으로 들어가 외칠 때에 그들이 귀가 열렸고 그래서 임금을 비롯해서 온 백성에 이르기까지 짐승들까지 금식하게 하고 백성들은 굵은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하자 하나님은 그들의 죄를 사하시고 살아남게 하셨다.

 

위에서도 말씀드렸듯이 니느웨는 원래가 망할 백성들이었다. 그러나 요나의 외침을 듣고 귀가 뚫리자 임금으로부터 온 백성이 금식하며 회개하였을 때 살아나게 되었다. 이는 놀라운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여기‘몰수히 모으고’이 말은 첫째는 많은 무리를 말하지만, 여기서는 작게는 두 세 사람을 모은다 할 수 있다. 그래서 두 세 사람을 합심이라고 말한다.

다음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