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松 건강칼럼 (610)... 대한보건 60

보건협회 60년사

박명윤(보건학박사,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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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100 시대를 선도하는 사단법인 대한보건협회(Korea Public Health Association) 창립 60주년을 맞아 지난 4 7-8 보건학 종합학술대회개최에 이어 보건협회 60(1957-2017) 발자취를 기록한 60년사 발간했다. <대한보건협회 60년사> 출판기념회와 31 보건대상(保健大賞) 시상식이 12 11 오후 6 강남 노보텔앰배서더호텔에서 개최되었다. 대한보건협회는 서울시지부, 미국지부 15 지부와 보건관련 22 학회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한보건협회 회장 박병주 교수(서울대 예방의학) 개회사에 이어 명예회장 권이혁 박사(서울대 총장, 문교부 장관, 보건사회부 장관 역임)께서 축사를 했다. 보건대상 심사위원장 신광순 교수(서울대 명예교수) 심사 경과보고에 이어 이승욱 박사(서울대 보건대학원장, 대한보건협회장 역임) 31 <보건대상> 수상했다. 보건협회 60년사(520) 출판 경과보고는 편찬위원장 임국환 교수(고려대 명예교수) 했다.

 

대한보건협회의 목적은 국민보건에 관한 사항을 조사 연구하여 홍보하고, 보건의 국제적 동향에 대한 관련 지식과 정보를 수집, 분석, 평가하여 회원 상호간에 교환하고 보건정책수립 국민보건의 향상, 사회복지의 증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협회 정관 2조에 명시되어 있다.

 

필자와 대한보건협회의 인연은 국제연합아동기금(UNICEF) 기획관리관으로 재직할 당시 우리나라에 지원하는 보건 영양사업을 관장하였기에 보건 분야 인사들과 교류가 많았다. 대한보건협회 권이혁 회장 재임 당시인 1986년에 사업부 차장으로 선임되었으며, 후에 감사(2006-2008), 그리고 2015년부터는 자문위원으로 봉사하고 있다. 협회 회관건립모금에 동참하여 1차로 백만원을, 그리고 2 모금 1천만원을 2015년에 기탁하였다.

 

협회 사업부 차장으로 활동하면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금연(禁煙) 포스터 3종을 UNICEF 재정지원을 받아 제작하여 전국 보건소와 병원에 배부한 있다. 한국소비자연맹(회장 정광모) 포스터 모집에 응모한 그림과 사진 중에서 3점을 선정하여 사용했다. 금연 포스터에는 대한보건협회, 한국소비자연맹, 국제연합아동기금 기관 명칭이 표시되어 있다.

 

필자는 대한보건협회 28 <보건대상> 수상자로 선정되어 상패와 상금을 2014 12 5일에 받았다. <보건대상>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박명윤 귀하는 협회가 제정한 보건대상 시상규정에 의하여 심사한 결과 국민보건증진에 기여한 공적이 지대하고 보건학 발전에 이바지한바 크므로 보건대상을 드립니다. 2014. 12. 5 사단법인 대한보건협회 회장 임국환

 

<대한보건협회 60년사> 크게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 협회 설립 이전의 우리나라 보건 분야 상황을 기술했으며, 대한보건협회 전신인 대한공중보건협회의 역사를 정리한 대한보건협회의 역사를 기술하였다. 대한보건협회 역사는 단계 시대로 구분하여, 번째 시기는 1975 협회 재건총회 개최와 체계를 확립하는 과정을 기술하였다.

 

번째 시기는 1979년부터 1988년까지 협회의 직제 조직을 확대발전시킨 시기이며, 번째 시기는 1989년부터 2002년까지 협회의 사업을 정부지원을 받아 활발하게 수행한 시기이다. 그리고 2003 이후 현재까지를 협회 기능을 확립하고 발전시킨 시기로 구분하여 기술하였다.

 

우리나라에 현대사회의 보건(Public Health) 개념이 도입된 것은 8.15해방 직후 미국의 군정(軍政) 실시된 시절이다. 당시 군정법령 1호로 위생국 설치에 관한 1945 9 24일에 공포되어 일제(日帝)강점기 경찰관서에서 담당하던 위생(衛生)업무가 행정부서인 위생국으로 이관되었다. 그리고 위생국은 보건후생국으로 개칭(1945.10.27)되었다가 보건후생부로 승격(군정법령 64, 1946.3.29)되었다.

 

당시 보건후생부 보건관련 11개국(수의국, 예방의학국, 위생국, 의무국, 간호사업국, 통계국, 약품국, 치무국, 연구국 ) 후생관련 4개국(구호국, 조사분석국, 부녀국 ) 15 47개과의 방대한 기구로서 규모와 예산이 두드려졌다. 보건후생부에는 미군장교와 하사관 80명과 한국인 779명의 인력이 근무했다. 지방에는 도에 보건후생국을 설치하고 산하에 의무과, 약무과, 예방의학 행정과, 위생시설과, 수의과, 후생과 6 과를 두었다.

 

이와 같은 변천과정을 거치면서 일제시대 단속위주의 위생 대한 인식이 국민의 건강과 복지를 중요시하는 미국식 보건 개념으로 바뀌었다. , 미군정청(美軍政廳)에서 보건후생부가 가장 규모인 것은 그만큼 보건후생 분야를 중요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미국형 보건행정체제는 1947 5 27 우리나라 과도정부가 수립되자 대폭 축소되어 중앙의 보건후생부는 의무국, 약무국, 예방의학국, 후생국, 조사분석국, 부녀국 6개국으로 그리고 직원도 560명으로 축소되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보건후생 업무를 담당할 전문 인력이 부족하여 미군정청은 의사 10명을 모집하여 미국 유학 귀국하여 2년간 공직생활을 수행한다는 조건부로 미국 대학(하버드대, 존스홉킨스대, 미시간대) 보건대학원으로 유학을 보내 1945 11월부터 1년간 연수를 시켰다. 1945 록펠러재단 1 장학생에 이어 1947년에 2 장학생 5명이 미국에서 연수를 받았다. 밖에도 UN기술원조처, UNICEF, FAO, UNKRA, ICA, CMB, 한미재단 등의 도움으로 많은 인사들이 해외에 유학을 다녀왔다.

 

1950년에 발발한 6.25전쟁 보건사회부는 외국 원조로 보건진료소를 설치하고 운영했으나, 의사인 보건소장들이 진료업무는 능숙했으나 보건업무에는 미숙하여 전문가 양성이 필요했다. 이에 서울 중구보건소에 한미재단의 지원으로 공중보건원을 설치하여 1955 까지 3년간 100여명의 수료자를 배출했다.

 

공중보건원이 폐쇄됨에 따라 1956 3월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보건학과과정이 개설되어 10명의 공중보건학 전공학생이 입학했으나 3명만이 과정을 이수했으며, 1958년에 폐강되었다. 한편 1954 3월에 한미재단의 지원으로 보건간호사 교육을 목적으로 중앙간호연구원이 설치되어 5년간 90여명의 수료자를 배출했으나 1959년에 폐원되었다.

 

우리나라에서 보건학(保健學) 공식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1955 후반으로 당시 보건계에서 뜻을 함께하는 인사들로 구성된 보건7인위원회 주축이 되어 매주 모여 회동했다. 한편 1957 3월에는 보사부의 뜻있는 인사들이 공중보건연구회 구성하여 모임을 가졌다. 이들 연구회가 모체가 되어 대한공중보건협회 결성을 논의하고 1957 9 21 서울대 의과대학 강당에서 보사부장관을 비롯한 보건계 인사 100 명이 모여 창립총회를 개최하였다.

 

대한공중보건협회는 창립 다양한 주제로 학술집담회, 종합학술대회, 국제세미나 등을 개최하였다. 또한 대한예방의학회와 긴밀하고 유기적인 협조체제 아래 학술활동을 연례적으로 전개하였다. 그러나 1970 에방의학(豫防醫學) 전문과목으로 법제화되어 전문의(專門醫)제가 도입됨에 따라 임상분야 학회로 분류됨으로써 대한공중보건협회와 궤를 달리하게 되었다.

 

대한공중보건협회는 집행부의 뜻하지 못한 해체상태로 타당하고 짜임새 있는 관점에서 협회의 활로를 모색하지 않을 없었다. 이에 협회의 재건을 위한 움직임이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 재직 중이던 젊은 학자들과 뜻있는 회원들을 중심으로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마침내 1975 4 2 대한공중보건협회는 대한보건협회 명칭을 바꾸어 새로 발족하기에 이른다.

 

대한보건협회 재건총회가 1975 4 26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강당에서 1백여 명의 보건인들이 모인 가운데 개최되었다. 초대 회장에 권이혁 당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장이 선출되었다. 국민보건의 향상을 통한 사회복지의 중진에 기여하기 위해 보건의료사업에 대한 지원, 보건과학의 발전, 보건인의 자질향상 단결 도모를 목적으로 대한보건협회가 출범했다.

 

이에 1975-1978년을 협회의 발족 체제 확립기로 본다. 이어서 직제 조직의 정착기(1980-1989), 정부지원 사업의 활용기(1989-2002) 거처 2003년부터 현재까지를 협회 기능의 확립 발전기로 본다.

 

2003년부터 5 동안 국민건강증진기금의 국고보조금이 예년의 2배인 6억원으로 증액되어 협회에 배정됨에 따라 절주(節酒)운동사업도 보다 활력을 받기 시작했다. 절주운동사업으로 각종 공익매체를 활용한 홍보물 제작 보급을 비롯하여 대학교의 절주캠페인, 절주 지도자 교육, 음주운전 주류(酒類)판매 지역의 감시 활동 등을 연중 전개했다.

 

2006 12 5-7 전경련회관 국제회의실에서 협회 주최의 음주문화와 알코올정책에 관한 국제회의 개최함과 동시에 미국 질병통제센터(CDC) 후원으로 1 국제알코올 컨퍼런스 유치하여 외국의 사례를 익힐 있었다. 또한 대한보건협회는 한국야쿠르트의 재정지원으로 유산균과 건강국제학술심포지엄을 수차례 개최한 있다.

 

2008년부터 9 동안 국민건강증진기금이 10억원 내외로 증액됨에 따라 국고보조금으로 실시한 음주폐해예방관리사업 기존의 절주교육사업, 절주모니터링 체제구축사업이 더욱 활성화되어 기존사업의 확대는 물론 신규사업의 도입으로 보다 효율적인 운영이 가능하였다. 추가로 도입된 사업은 대학절주동아리 운영, 알코올정책 공동체(20 단체) 파랑새포럼사무국 운영, 전국보건소 절주사업 프로그램 대학절주동아리 경진대회 개최 등이다.

 

2017년부터는 종전의 협회 중점사업이던 국민건강증진기금 사업이 한국건강증진개발원으로 이관됨에 따라 종전의 10억원 규모의 음주폐해예방관리사업에서 절주예방교육사업(지원금 231백만원)으로 대폭 삭감됨에 따라 대한보건협회는 새로운 고유사업의 개발에 중점을 두고 있다.

 

2016 이래 실시하고 있는 현안문제에 대한 월례집담회 협회 회의실에서 14차에 걸쳐 진행되었다. 새로운 협회사업으로 걸어서 주자건강걷기캠페인을 2017 5 25일부터 10 31일까지 실시하여 많은 호응을 얻었다. 협회 활성화를 위한 고유사업으로 보건의료 데이터 연수교육 개최하여 3회에 걸쳐 126명이 참가하여 10,450천원의 수입을 올렸다.

 

대한보건협회 60(1957-2017) 역사 동안 우리나라 대통령은 초대 이승만 박사에 이어 윤보선박정희최규하전두한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19 대통령으로 이어졌다. 작년에 제작된 2017 달력에는 오늘(12 20) 대통령 선거일공휴일로 표시되어 있다. 만약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으로 파면되지 않았다면 어떤 리더십을 가진 인물이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