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살아남은 것들remnents이 맞이하는 봄

 아프고 춥고 너무나 견디기 힘들었던 겨울이 지나고, 봄의 중심인 4월이다. 봄은 혹독한 계절, 겨울을 이기고 살아남은 것들이 맞이하는 계절이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자이다. 매년 봄이 되면, 루마니아 작가 게오르규의‘25가 생각난다. 2차 세계대전 속에서 포로로 잡혀 수많은 수용소를 전전하다가, 마지막 까지 살아남은 시꺼멓게불타다 남은 그루터기요한 모리츠 가족이 떠오른다.

  당대의 지성이며 시인인프라얀 코루카와 당시 암흑세계를 종교적인 인간구원을 꿈꾸며 신을 향한 신명을 가지고, 열정적 삶을 살아간 목사알렉산더 코루카가족은 전쟁터에서 순교하고 만다. 그런데 연합군에 의해서 히틀러의 독일이 무너질 때까지 13년을 수십 개의 수용소를 전전하며불타다 남은 그루터기상처투성이로 끝까지 살아남은 자는 무식한 농부요한 모리츠가족이다.

  작가 게오르규는 인간의 시간이 끝나버린 종말론적인 이 시대, 하나님의 때, 카이로의 시간‘25,‘남은 자의 역사,‘남은 자의 사명,‘남은 자신학을 말하고 있다. 이시대의남은 자의 사명은 무엇인가. 역사의 증언자요, 한 시대를 깨우는 선지자요, 노아의 여덟 가족처럼, 새로운 역사를 위한 씨앗이며, 새 역사의 농사꾼이다.

  우리의 이웃인 일본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지난날 우리와 역사적인 악연을 가진 저들이 무너지고 있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운 것은, 지진이나 해일로 당하는 천재지변이 아니라, 그보다 무서운 하나님의 때, 카이로스의 시간을 깨닫지 못하는 역사의식이다. 때를 모르는 자를 우리는 철부지라는 말을 쓴다. 철부지節不知는 한자로 계절이 오고가는 때를 모른다는 말이다. 경제적으로는 대국을 이루었고, 기고만장한 때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일본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가장 저들이 불쌍하고 측은 것은 아시아를 휩쓸었던, 지난날 과거의 패권주의 의식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과거에 집착하고 있다는 점이다. 백성들은 참혹한 천재지변을 만나 수만명이 죽고, 이재민들이 고통을 겪고 있는데, 역사를 기록하고 끌고 가야할 지도자라고 하는 자들은, 독도가 저희 것이라고 정신 나간 헛소리를 하고 있다. 아직도 일본은 자민당 정권, 지난날 전쟁을 일으켰던 극우 보수주의자들이 주도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정치개혁이나 역사개혁을 이루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 집착하는 민족이나 국가는 희망이 없다. 성서나 유대인이 유월절을 통해서 말하고 있는 것은, 지나간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기념할지언정 뒤돌아보며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모세를 따라 나온 2백만의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그 1세대가 다 죽고 가나안에 못 들어간 이유가 무엇인가. 뒤돌아보며 버리고 떠나온 애급에 집착하다가 그들은 광야에서 모두 죽어간 것이다. 이것이 출애굽기의 역사적 교훈이 아닌가. 경주마에게 가면을(차안 대, 귀마개) 씌우는 이유가 무엇일까. 뒤나 옆을 보지 말고, 앞의 목표만을 향해 달리라는 의미이다.

  잔인한 4월 새봄이 왔다. 혹독한 겨울을 이기고 살아남은 자의 봄이다. 새 역사의 봄에 살아남은 우리가 감당해야 할 사명은 역사의 증인으로, 새로운 종자로, 새 농사를 지어야 할 농사꾼으로 살아남은 것이다. 지나간 겨울, 지나간 역사는 기억하고, 기념할지언정 집착하지 말자. 앞의 목표와 목적을 향해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경주마처럼,,,

박 영남 < 시인, 문학평론가 > 건국대학 교수 (본지 운영이사 및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