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주의(利己主義)와 이타주의(利他主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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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리스트 이준철 목사(사진) ***
 
 오늘날과 같은 무한경쟁 사회에서 적자 생존한다는 것이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다
. 사느냐? 죽느냐? 하는 야생의 법칙 때문에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경쟁 상대이며 때로는 생존을 위해서 적과의 동침도 감수해야하는 사회가 바로 소위 만물의 영장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의 처절하고 슬픈 모습인 것이다. 여기에는 가진 자가 적자이며 그리고 더 많이 가진 자일수록 영향력 있는 지도자의 위치에 서게 된다.

 고상한 사상이나 이념은 퇴색해버린 고물에 지나지 않으며 천박하게 세속화된 종교는 윤락녀처럼 돈 앞에서 억지웃음 짓는다. 잘살기 위해서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것은 이미 상식이며 또 이것을 누가 왈가왈부할 수 있겠는가? 오늘날 세속의 가치 기준은 잘사는 것이 곧 진리이다. 그런데 문제는 잘 산다는 것이 전적으로 질에 있지 않고 량에 있다는 것이다.

 이 물량주의의 욕구충족을 위해서 수단이나 방법은 결코 문제되지 않는다. 일단 어느 정도 성공하면 모든 과정은 합리화되고 그 영향력은 증대된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것이다.“꿩 잡는 것이 매라 한다. 이러한 이기주의는 사회를 역동적으로 성장시키는 하나의 기능이기도 하지만 이것이 인간의 삶에 있어서 절대적인 기술과 진리로 자리매김되면 인간사회는 태초 이전의 혼돈상태로 회기하게 될지도 모른다.

 질서는 균형이고 이 균형은 아름다움()인 것이다. 이기주의는 탐욕을 실천강령(praxis)으로한 일종의 반 기독교적 유사종교라 말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탐심은 우상숭배로 규정짓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윤리는 절대적으로이타주의이다. 이 이타주의를 바탕으로 창조 하나님께서 친히 성육신하시어 이 땅에 오신 것이고 이 이타주의로 인해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대속 제물로 희생되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본받으라고 하셨다. 이타주의에는 당연히 희생이 수반되는 것이고 그래서 혹 실패로도 보이기 쉽다.

 그러나 성공 같은 실패가 있는 것이고 실패 같은 성공이 있는 것이다. 이기주의는 성공 같은 실패를 지향하고, 이타주의는 실패 같은 성공을 추구한다. 기독교의 하나님 나라는 이러한 이타주의가 상식이 되고 규범이 되는 사회인 것이다. 그렇지 못하고 이기주의가 난무하는 곳 이라면 하나님 나라는 안드로메다를 지나 가늠할 수 없는 먼 곳에 있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수십억, 수백억짜리 교회건물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우리들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이기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찾고 있다. 그것은 유토피아 즉,utopia 어디에도 없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