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4(31)

사도요한이 바라본 천상 교회의 광경

요한계시록 4장 강해                                                                                         주사랑교회 장한국 목사(진리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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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요한계시록 1-3장까지 국내에서 해외에서 수 많은 독자님들께서 애독해주시고 기도로 후원으로 힘을 불어 넣어주셨기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지저스타임즈 JTNTV방송(http://jtntv.kr)을 통하여 요한계시록 22장까지 연재해 나갈 것을 약속드립니다. 많은 기도와 격려로 함께해주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가 계시록 4장의 말씀을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대하는가? 4장의 계시 말씀이 이 우주 안에는 없고 하늘나라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깨닫기가 매우 어렵고, 우리를 흥분되게 하는 말씀입니다. 지금까지 계시록을 다룬 많은 책들에서 계 4:3 보좌에 앉으신 분이 벽옥, 홍보석, 에메랄드 같다는 것이 무엇을 말씀하는 것이며 그것들이 우리와 어떻게 관계가 되고 있는지를 밝히 드러내고 있나요? 오직 하나님이 깨닫게 하고 열어주고 믿게 하셔야만 알 수 있는 말씀입니다.


사도요한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모든 것을 밝히 보고 깨달아서 기록하였는데 그것이 요한계시록입니다. 이 계시록을 사도요한과 똑같이 온전히 깨달을 수 있는가? 하나님은 읽는 자(계 1:3)를 세워서 그를 통해 계시록 말씀을 듣고 깨닫게 하여 비로소 믿게 하시는 것입니다. 1절 이 일 후에 내가 쳐다보니, 보라, 하늘에 한 문이 열려 있는데 내가 들은 첫 음성은 나팔 소리 같았으며,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이리로 올라오라. 내가 이후에 마땅히 일어나야 할 일들을 네게 보여 주리라.”하더라.


‘이 일 후에’는 계시록 1ㆍ2ㆍ3장이 끝난 후를 말합니다. 특별히 1장에서 일곱 금촛대 교회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계시록 2ㆍ3장에서 구체적으로 일곱 금촛대 교회를 말씀하셨습니다. 일곱 금 촛대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로 세우는 일곱 과정이므로 우리에게 모두 해당됨을 깨달았습니다. 계시록 2ㆍ3장의 말씀을 내게 주신 것으로 받아가진 우리에게 “보라, 하늘 문이 열려있는데”하고 말씀하십니다.


‘하늘에 한 문이 열렸다’는 것은 영적인 문을 말합니다. 이는 사도요한에게 하늘 문이 열려서 하늘나라가 활짝 보이게 됐다는 것입니다. 계 3:7 필라델피아 교회의 열린 문은 어떠한 문이었나요? 그 문은 천년왕국에서 누리게 될 영광과 그 왕국에 들어 갈 수 있는 비밀들을 열어주신 것을 말씀합니다. 그래서 천년왕국이 특정한 다른 이들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필라델피아 교회 자신들에게 주신 기업임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주님이 이렇게 열어주신 것을 누구도 가릴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증거하는 본인도 주님이 열어주신 이 필라델피아 교회의 열린 문을 이 세상의 누구도 닫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황금이나 물질 등으로 마음이 흔들리고 눈이 멀게 되는 것은 아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안 되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늘 문이 열렸다는 것이 이와 같습니다. 요한이 영의 눈으로 하늘 문이 열린 것은 계시록의 수신자들에게도 그 하늘 문이 열린 것입니다. 예수님이 요한에게 먼저 하늘 문을 열어주시고, 요한은 그것을 기록했습니다. 우리는 수월하게 열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스스로 계시록 4장 말씀을 읽어 내려가면서 술술 깨달을 수 있나요? 길선주 목사님은 성령이 충만하고 계시록을 5만 번 읽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요한과 똑같이 하늘 문이 활짝 열리지 않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는 주님이 열어주셔야만 하늘 문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은혜의 역사인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눈으로, 영의 눈으로 계시록 4장의 하늘나라가 보여야 되는데 스스로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계시록 4장의 말씀은 또다시 요한과 같이 보여 준 자를 통해서 해석해주면(읽어 주면) 그 말씀을 그대로 믿음으로 받아서 볼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내가 들은 첫 음성은 나팔소리 같았다’는 것은 예수님의 음성을 말씀합니다(계 1:10). 예수님이 요한에게 말씀하시는 그 말씀들이 나팔소리 같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요한에게 “이리로 올라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부분에서 여러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환란 전 휴거를 주장하는 세대주의에서는 이 구절을 근거로 휴거를 주장하고, 또 어떤 이들은 요한이 하늘나라로 올라갔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그러나 위와 같은 해석은 앞뒤가 맞지 않는 해석입니다. ‘이리로 올라오라’는 말씀에 의해 하늘나라로 올라가서 하늘나라를 본 것은 그의 육신이 올라간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요한의 영을 이끌어서 영의 눈으로 하늘나라를 보게 한 것을 말씀합니다. 그의 몸은 밧모섬에 있는 것입니다. 휴거는 사람의 몸이 우주 안의 공중으로 끌려 올라가는 것이지 하늘나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닙니다(살전 4:17). 본문의 상황과 휴거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마치 고후 12:2-3에서 주의 영이 사도바울을 셋째 하늘, 즉 낙원으로 이끌어 간 것과 같습니다. 바울이 그곳에 가서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말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도 바울의 영이 성령에 의해 낙원으로 올려 져서 그의 영의 눈으로 본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사도요한과 바울의 경우가 입신은 아닙니다. 입신하여 하늘나라에 들어갔다가 나왔다는 말은 거짓 속임수입니다. 천국은 사람이 출퇴근하는 곳이 아닙니다. 한 번 천국으로 들어갔으면 다시 이 땅으로 나올 수 없습니다.


눅 16:19절 이하에서 부자가 사후에 간 곳이 음부(헬:하데스)인데, 대부분의 성경해석자들이 영어성경에 표기된 대로 Hell을 ‘지옥’으로 풀어 놓았습니다. 그 결과 부자를 지옥간 자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영어성경에는 지옥과 음부를 구분 하지 않고 모두 Hell로 표기하고 있으나, 헬라어 성경은 지옥(게헨나)과 음부(하데스)로 정확히 구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부자가 아브라함의 아들이라고 하셨습니다. 또 부자가 자신의 다섯 형제들을 걱정하여 자신처럼 마귀에게 속아서 사후에 음부로 오지 않게 해달라고 간구하는 것은 지옥에 간 자가 가질 수 없는 마음입니다. 형제들을 살리려고 하는 마음은 마귀에게 속한 마음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지옥에 들어간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제일 먼저 지옥에 들어가는 자가 짐승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라고 계 19:20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시공을 초월하듯이 우리가 나중에 부활하게 되면 천국과 지상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이리로 올라오라”함은 휴거나 입신이 아닙니다. 또한 기도 중에 천사가 보여주는 환상도 아닙니다. 사도바울이 성령에 의해 영의 눈으로 셋째 하늘을 본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성령에 의해 사도요한의 영이 하늘나라의 것을 그의 영의 눈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후에 마땅히 일어나야 할 일들 - 이는 사도요한에게 이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말합니다. 요한이 2절 이하에서 본 24보좌와 그 위에 앉은 24장로, 일곱 영들은 그가 보고 있는 시점에서 그 이전에 끝난 사건인가요, 아니면 이후에 될 일들을 본 것인가요? 이후에 될 일을 본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일들입니다. 24보좌에 이미 확정된 자들이 앉아 있는 것을 요한과 우리에게 구경삼아 보여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후에 될 일, 즉 이후에 24보좌에 앉게 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주님 재림 시 확정되는 자리입니다.


이 말씀을 믿고 그에 따른 소망을 가진 자는 자기가 앞으로 앉을 자리를 보는 자가 된 것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여 지면 그것을 확신하고 실상으로 누리는 행복감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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