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응답(応答)하라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주필 송택규 박사

1517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500주년에 즈음하여 나는 참담한 심정으로 글을 씁니다.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고 아름답고 거룩해야 기독교가 세상 사람들로부터 천덕꾸러기가 되어개독교라는 소리를 듣는가 하면 대형교회의 부패와 타락과 부조리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존경받아야 교회 목사님들의 공사를 불문한 개인적 비리들이 만천하에 폭로되면서 기독교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고 기독교가 자리를 점점 잃어가고 있음은 정말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교회를 향한 갖은 욕설과 비아냥거림 속에 성도들 입에서는 어찌하여 기독교가 이렇게 되었느냐는 한탄의 신음소리도 천지를 진동하고 있습니다.

 

500 마르틴 루터는 사도바울이 말한믿음으로 구원 얻는다 이신칭의(以信稱義) 주장하며 부패하고 타락한 카톨릭에서 독립하여 오늘날 개신교를 탄생케 하였습니다. 당시 종교개혁은 상상조차 없는 일로 과히 혁명적이라 있겠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 했습니다. 그것은 말씀 중심으로 누구나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 것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믿습니다라고 고백만 하면 누구나 구원 얻은 것으로 착각하게 하는 과오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은 반은 성공하고 반은 실패한 미완의 종교개혁이 되었습니다.

 

이유는 사도바울이 말한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 속에는 행위자체를 배제한 의미가 아니라행위 전제로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를 적용해가는 과정 속에서 행위 버리고 믿음만 강조하다보니믿습니까?” “아멘!하면 구원 얻은 것으로 잘못 인식되게 함으로서 오류를 범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이며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이는 말씀에 순종하겠다는 것입니다. 바로 순종은 행함을 뜻하는 말입니다. 이렇게 행함은 없고 말만 많은 기독교인들을 세상은 이중인격자로 매도해 버리고 우리는 양심도 없고 영혼도 없는 자들이라는 비난의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성경에서 () 핵심 구절인 로마서 1 17절에 보면 복음에는 하나님의 () 나타나서 믿음에서 믿음으로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義人)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하셨습니다. 말씀은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려면 믿음으로 가는 행위 함께 있어야 된다는 뜻입니다.

 

로마서 2 13절에서도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라고 했듯이 사도바울의 말씀을 역으로 해석하면믿습니다하는 자가 구원자가 아니라 오직 믿음을하는 자라야 구원에 이르게 됨을 말씀하고 있음을 있습니다. 이유는 신실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의 믿음 안에서 사람이 한대로 보응하시고 심판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7:3, 2:6)

 

그러므로 야고보 기자는 야고보서 2 14절에서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말합니다.

 

야고보서 2 17절과 22절에서도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자체가 죽은 이니라” “내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완전하게 되었느니라하시며 2 26절에서는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같이 행함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 다시 강조하며 결론을 짓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구원에 이르는 길을 직접 말씀하신 구절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7 21절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갈 있다 율법의 실천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요한복음 3 5절에서는 성령으로 거듭나야천국에 들어갈 있음을 말씀하시며 육신적 행위로는 율법을 지켜야 되고 정신적 행위로는 성령을 받아 내적 변화되어야만 천국에 들어갈 있음을 강조하셨습니다.

 

이처럼 덮어놓고 예수를 믿습니다한마디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고 회개를 통하여 죄인이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박혀 죽는 과정이 있을 비로소 사함 받고 의롭다칭함을 받는다는 행위적 사실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뒤에는 거룩한 믿음의 행위가 있을 비로서 거듭남의 역사가 일어나고 성화의 과정을 거쳐 영화에 이르게 됩니다. 이러한 교리들을 가리켜 신학에서는 구원의 서정(차례, 순서) 또는 여정이라고 말합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차를 가지고 처음 길을 무엇을 가지고 갑니까? 지도나 또는 내비게이션을 가지고 가지요. 그런데 잘못된 지도나 정확하지 않은 내비게이션을 가지고 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더구나 신앙인이 잘못된 이정표를 가지고 간다면 그가 천국을 있겠습니까? 100% 지옥으로 떨어지겠지요? 천국의 확신, 구원의 확신이 없는 신앙생활은 망망대해의 바다 가운데서 나침판을 잃고 떠도는 배와 같은 것이라 입니다.

 

그렇다면 기독교의 구원의 정확한 나침판은 무엇이며 어떤 것입니까? 기독교 교단이나 교파들이 구원으로 가는 길이 제각각 다릅니까? 어느 교단 것이 진짜입니까? 이것도 저것도 진실이 아니라고 한다면 틀리는 것은 아닌지요?

 

저는 단호히 외칩니다!

 

첫째, “‘믿습니다말만하면 구원 얻었다 잘못 가르쳐 성도들이 지옥에 갔다면 책임을 하나님은 가르친 자들에게서 찾으실 것입니다. 문제에 대하여 기독교는 응답해야 합니다.

 

둘째, 구원의 바른 길을 제시하지 못함으로 구원의 확신도 없이 살다 지옥 성도들이 있다면 문제에 대하여도 하나님께서는 책임을 물으실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하여 기독교는 응답해야 합니다.

 

셋째, 기독교의 지고(至高)한가치는 구원에 있습니다. 지고의 가치가 훼손되고 왜곡됨으로서 생기는 기독교의 엄청난 폐해는 어찌할 것입니까? 거짓구원으로 지옥 성도들의 책임 바른길로 인도 못한 것에 대한 책임 성도들에 대한 정신적 피해에 대한 책임 기독교 이미지 손실에 대한 책임 하나님 영광을 회손 시킨 죄에 따른 책임 성도들의 시간 낭비 물질적 손실에 대한 책임.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책임을 누가 것입니까? 기독교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분명히 응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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