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엘서 강해(17)

교회의 환난(2)

요엘 1:8~12절                                                                                           작성 정기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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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8절 “너희는 애곡하기를 처녀가 어렸을 때에 약혼한 남편을 인하여 굵은 베로 동이고 애곡함같이 할지어다”아멘. /“자기의 젊은 시절의 남편을 위하여 굵은 베옷으로 동인 한 처녀같이 애곡하라”는 것이다. 여기서 굵은 베옷은 슬픔을 말해준다. 그리고 회개를 말해준다. 그리고 애곡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자지러지도록 기절할 정도로 슬프게 통곡하는 것처럼 우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애곡하라는 말씀입니다.

 

-제임스 성경에서 말씀을 보았듯이 젊은 시절의 남편이란 말을 볼 때에 이제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신혼의 단꿈이 한참 무르익어가는 때를 가리키지 않나 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은 결혼하고도 한 1, 또한 정혼하고도 한 3년 이렇게 시간적 여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젊은 나이에 그만 신랑이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신랑이 죽어버렸다. 그 여인의 꿈과 희망과 그를 사모하는 모든 것들이 일순간에 산산조각이 난 것이다. 이런 극한 슬픔이 또 어디 있겠는가?

 

자신을 낳아 주신 부모가 세상을 떠나도 슬픈 일이지만 그 보다 더 슬픈 것은 남편의 죽었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말세에도 남편을 잃은 여인처럼 극한 슬픔이 올 것이며, 애곡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굵은 베는 무엇을 말하는가? 회개를 말한다. 잘못을 후에 가서 뉘우친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이렇게 했었더라면 후에 굵은 베옷을 입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굵은 베옷을 왜 입었는가? 그것은 그만큼 준비가 안 되었고 죄악이 관용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요나서를 보면 니느웨성의 백성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결국은 회개한 것이다. 회개한 결과 심판의 자리에서 죽을 수밖에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자리에서 살아남게 된 것이다. 여기 굵은 베는 죄를 회개함을 가리킨다. 즉 굵은 베로 동이고 애곡함과 같은 상태가 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당할 고통과 슬픔이 약혼한 남편을 위하여 참으로 사랑의 결실이 사랑의 홈이 이루어지기 전에 그 약혼자가 죽었으니 절망적인 상태요, 희망이 끊어진 가련한 신부의 모습으로 본문은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아 너희는 깨달아 알지어다. 교회 생활하는 모든 성도들이여 이것을 깨달아 알지어다. 그런 말씀입니다. 4:8에 ’이를 인하여 너희는 굵은 베를 두르고 애곡하라‘ 대저 여호와의 맹렬한 “노”가 아직 너희에게서 돌이키지 아니 하였음이니라’ 고 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말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굵은 베옷을 입고 통곡하자고 했습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여호와의 노가 올 것이다. 이 일을 아직 진행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노가 지나갈 때까지 깨어서 근신하고 회개하고 죄를 멀리하자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눈물의 선지자였다.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노가 임할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눈물로 호소를 해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레미야의 그러한 외침을 미친놈으로 취급합니다. 그래서 그 누구도 예레미야의 외침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이스라엘을 바라볼 때 안타까워서 예레미야의 눈에는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오늘 이 시대에 반드시 이러한 눈물의 사자가 나와야 합니다. 오늘 이 시대는 눈물도 말라버린 시대이다. 사람들의 마음이 죄악으로 물들어서 차돌과 같이 굳어져 있기에 눈물도 사랑도 외침도 없는 삭막한 때에 우리가 살고 있다. 지금 예레미야와 같은 사자들이 필요한 때입니다. 성도들이 너무도 많이 타락해 있기 때문이다.

 

회개할 줄 몰랐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의 채찍이 있었다는 사실을 오늘 이 백성들은 왜 모르는가? 이스라엘은 그토록 눈물을 흘리며 자기 민족을 살리기 위해서 몸부림쳤건만 그들은 깨닫지 못하고 교만만 떨었다. 죄악을 물마시듯, 밥 먹듯이 저질렀던 것이다.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신자들과 주의 종들을 볼지라도 눈물을 흘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극히 적습니다. 신자들의 죄악상을 보고도 눈먼 소경과도 같이 못 본채 합니다. 주님의 강단에서 회개하라는 목소리가 사라졌습니다.

 

물론 비록 적은 수이지만 지금 이 시대에도 회개를 외치며 하나님의 말씀을 강하게 외치는 종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강단 90%가 회개가 사라졌습니다. 신자들이 오늘날 신앙생활이 형편없이 변질되었음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의 채찍을 들어 외치는 종들이 적습니다. 이것이 오늘의 교회생활입니다.

 

어쩌면 옛날이나 지금이나 꼭 같아졌는지 모릅니다. 다시 예레미야는 외칩니다. 6:26에서“딸 내 백성아, 굵은 베를 두르고 재에서 굴며 독자를 잃음같이 슬퍼하며 통곡할지어다. 멸망시킬 자가 홀연히 우리에게 올 것임이니라”고 했다. 사랑하는 딸아! 그리고 내 백성들아 너는 굵은 베를 두르고 재에서 굴라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죽었다든지 왕에게 잘못을 저질렀을 때 재를 덮어쓰고 회개 했음을 봅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진노의 날이 이르기 전에 미리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방법에 있어서‘독자를 잃은 부모의 마음처럼 슬퍼하면서 통곡하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을 멸망시킬 자가 홀연히 닥아 오고 있다는 것을 렘 626절에서 다시 경고합니다. 여기서 우린 이해를 돕기 위해서 성경을 몇 군데 찾아서 합동하겠습니다.

 

(22:12~14)“그 날에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명하사 통곡하며 애호하며 머리털을 뜯으며 굵은 베를 띠라 하셨거늘 13) 너희가 기뻐하며 즐거워하여 소를 잡고 양을 죽여 고기를 먹고 포도주를 마시면서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 하도다. 14) 만군의 여호와께서 친히 내 귀에 들려 가라사대 진실로 이 죄악은 너희 죽기까지 속하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아멘 여기서 주님은‘그 날에 하셨습니다. 이는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명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주께서 명하시는데 어떻게 명하십니까? [너희는 통곡하며 애호하며, 머리털을 뜯으며 굵은 베를 띠라 하셨거늘’ 그랬다. 그러나 13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통곡은커녕, 애호하기는커녕, 어떻게 했습니까? 하나님 앞에 어떠한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까? 13절을 읽어보면 “너희가 기뻐하며 즐거워하여 소를 잡고 양을 죽여 고기를 먹고 포도주를 마시면서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 하도다”하였다는 것이다.

 

먹고 보자 하나님이 설마 어떻게 하시겠냐? 먹자 먹어, 먹고 죽은 귀신이 떼 깔이 좋다 더라 먹고 마시자 마음껏 놀자, 소고기 양 고기를 해 먹고 술을 즐기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죄악상을 보시고 그래도 그들을 살려 주시려고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 그들의 죄를 생각하고 통곡하고 애호하며 머리털을 뜯으며 회개할 것을 명하였으나, 이 백성들의 행위가 어떠하였는가? 자신들의 죄가 너무도 커서 그 죄를 부끄러워하며 통곡하며 애호하며 머리털을 뜯기는커녕 오히려 기뻐하고 즐기고 마셨다는 예기입니다.

 

이러한 사건은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신약교회도 다를 바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포도를 즐겼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포도주는 ‘진리의 말씀을 가리키고 있다. 그리고 양 고기는 말씀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소는 사명자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그들의 죄악상은 소 잡아 양 잡아 고기를 즐기며 포도주를 즐기고 먹었것만 그들은 환난이 온다는 사실에 대해서 전혀 대비하지 못했다는 것을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