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둘람에 모인 자들

삼상 22:1~5 총회장 이영풍 목사 총회 수련회 개회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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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회에 어떤 말씀으로 설교 것인가 고민하다가 주님께서 저의 심령을 움직여 주셨습니다. 작년에 수련회 폐회설교를 준비했으나, 불법을 행하는 자들의 횡포로 준비했던 설교를 제대로 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가지고 설교하기로 했습니다.

 

오늘 우리 총회 수련회에 모이신 목사님들의 모습이 어떤 모습일까 생각해보았습니다. 바로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아둘람에 모인 자들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다윗을 찾아온 아둘람에 모인 자들을 통해서 은혜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1,먼저 아둘람은 어떤 곳입니까? 피난처 곳입니다.

본문 1절에 "그러므로 다윗이 그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형제와 아비의 집이 듣고는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라고 했습니다. 아둘람이란 말의 뜻은,.... '피난처', '보호처' 뜻입니다. 찬송가가 생각이 나네요...

 

피난처 있으니 환난을 당한 이리오라 땅들이 변하고 물결이 일어나 산위에 넘치되 두렵잖네아둘람은 사울의 눈을 피해 다윗이 숨을 있는 피난처였습니다. 다윗만이 아니라 "환난 당한 " "빚진 " "마음이 원통한 " 피할 곳이었습니다. 여기서환난 당한 , 빚진 , 마음이 원통한 통해서 목사님들 모습을 그려 봤습니다. 우리 목사님들이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환난을 당하기도 합니다.

 

빚진 자가 되어서 어려움을 당하는 자도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다보면,... 억울한 일도 당하기에....마음이 원통하기도 합니다. ? 이렇게 되었습니까? 한가지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사명 때문이 아니던가요? 아둘람 굴에 저들이 무엇 때문에 모여들었습니까? 위로받기 위해서입니다.

 

이번 수련회가 우리 목사님들에게 위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6년전 우리 총회가 처음으로 수련회를 갔었을 안면도 백사장 해수욕장에서 당시 총회장님이 마지막 설교에여러분 나가라고 해도 나가지 않는 성도들 대리고 목회 잘하십시오? 당시는 목회 초년생이라서 무슨 말씀인가 몰랐는데, 목회를 하다 보니 알겠더라구요. 나가라고 해도 나가지 않는 성도가 누굽니까? 사모를 두고 하는 말씀이 아닙니까?

 

그분이 교회를 세웠습니다만 거기까지 오기까지 많은 마음의 아픔을 짐작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목사님들이 목회현장에서 환난을 당하기도하고, 경제적인 어려움에 빚진 되기도 하고 그래서 마음이 원통할때가 많았지요. 이번 수련회에서 힘을 얻을 아니라, 크신 위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아둘람은 피난처일 뿐만 아니라, 어떤 ? .기도하는 곳입니다.

[142] 보면 바로 다윗이 아둘람 굴에 숨어 있을 하나님께 기도한 내용입니다. "내가 소리내어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소리내어 여호와께 간구하는도다, 내가 원통함을 앞에 토하며, 우환을 앞에 진술하는 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아둘람에 있을 때에 다윗이 당하고 있는 현실은 너무도 비참한 상황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할 만한 처지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절망의 자리에서, 원통한 자리에서,....하나님을 향하여 무릎을 꿇었습니다. 가장 힘들 , 고통스러울 하나님을 바라볼 있는 것은 축복입니다. 기도할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 그렇습니까? 기도하는 자들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다윗처럼, 하나님께 우리의 원통함을 토해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고, 우리의 절망을 토해내야 것입니다. 나의 원통함을 풀어주실 것을 확신을 가지고, 간절하고 진지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시대는 점점 기도의 부르짖음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삶에 지친 영혼들이 무엇으로 응답을 받으며, 무슨 방법으로 하나님과 교통할 있습니까?

 

3,아둘람은 피난처요, 기도하는 곳일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떠나는 장소입니다. 본문 [5]"선지자 갓이 다윗에게 이르되 요새에 있지 말고 떠나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그래서 어떻다고 합니까? 다윗이 떠나 헤렛 수풀에 이르렀다" 말씀합니다. 아둘람을 찾아 다윗을 찾은 400명의 무리 중에는,.. 선지자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아 사람에게 전하는 사람입니다. 자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그대로 전하는 사람입니다.

 

다윗을 찾아 아둘람에 사람들 중에는 세상과 섞이지 않은 선지자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시류에 연합하지 않아서환난을 당하고 마음이 원통한선지자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이런 선지자가 있었다는 것보다, 선지자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모두 순종하는 아둘람 사람들의 모습에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당시 아둘람에 모인환난을 당한 , 마음이 원통한 , 빚진 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했었다는 것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해 " 요새에 있지 말고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사울이 지배하는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어쩌면 도저히 이해할 없었을 것입니다. ? 안전한 곳으로 숨어야 하는 상황인데 오히려 적지로 들어가라고 하시니,......사실 말씀은 다윗으로는 순종할 없는 말씀입니다. 그래도 말씀을 듣자마자 다윗과 400명의 식솔들은 바로 순종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수련회에 참석한 웨신총회 여러분!

우리는 2 3일의 수련회를 마치게 되면 각자 사역의 현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 " 요새에 있지 말고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 말씀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총회를 시대에 아둘람 총회로 세우셨음을 저는 믿습니다. 어쩌면 아둘람에 모여든 자들처럼 힘이 없고 나약한 우리의 모습이라서,.....한국교회의 교단 가운데 어쩌면 군소 총회를 벗어나지 못할지 모르지만,..우리 총회에 같은 하나님의 종이 있고,....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총회원들이 있는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아둘람에 모인 400명은, 당시 비록 오합지졸 이었지만, 다윗 왕국을 세우는 자들이 됩니다. [삼하23] 보면 다윗을 도왔던 군대 지휘관들의 이름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지만 상당수가 아둘람에서 함께 고난을 당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둘람 굴에서 함께 고난을 당한 사람들이 다윗이 왕국을 세웁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셔서 하나님 나라를 세워야 사명 자들입니다. 저는 여러분 가운데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웨신총회의 용사들을 그려봅니다. 다윗 왕국 건설위해 하나님께서 쓰셨던 요압장군 있습니다. 그리고 다윗왕국의 개국 공신 가운데는 " 용사" 있고, 삼십[30]용사 있습니다.

 

분명 여러분 가운데는 이런 하나님의 역사를 이룰 귀한 존재들입니다.

지금은 비록 "환난을 당한자요" 빚진 자요" "마음에 원통함을 당한자" 같은 모습이지만, 우리는 그냥 위로나 받으며 아둘람에 머무르는 것으로 인생을 마칠 자는 결코 아닙니다. [삼하23:13] 보면 다윗이 아둘람 굴에 사령부를 세워놓고 블레셋과 전쟁을 합니다. 그런데 다윗이 블레셋의 영채가 있는 베들레헴 성문 우물을 마시고 싶어 합니다. 그때 용사는 용감히 적진 깊숙히 들어가서 우물물을 떠서 다윗에게 바칩니다.

 

그런데 다윗은 물을 3 용사의 피로 여겨 차마 마시지 못하고 하나님의 전에 부어드립니다. 시간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누가 우리 주님의 목마름을 시원케 3 용사가 되시겠습니까? 누가 한국교단의 답답한 현실을 보며 목말라하시는,. 하나님의 목마름을 시원케 해드릴 있는 웨신총회의 3 용사가 되겠습니까? 이제 나아갑시다. 요새에 있지 말고 유다땅으로 들어가라말씀처럼 이제 나갑시다. 유다로 가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둘람에서 유다로 가서 다윗왕국을 건설한 것처럼,. 이제 아둘람 같은 이곳에서,..23일의 일정이 시작됩니다. 서로가 위로하고 서로가 힘이 되어주는 수련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둘람에 피했던 자들이 다윗왕국의 개국공신이 되어 다윗왕국의 주축을 이루었던 것처럼,. ..바로 여러분이 새롭게 펼쳐갈 웨신총회 역사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축원합니다./ 아멘

샬롬. 이영풍목사입니다. 연락처는 02-417-2848(), 02-443-5153(빛교회) 입니다.오늘 하루도 주님 가운데 평안하십시요. 사랑하고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