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松 건강칼럼 (570)... 애국시인 尹東柱의 삶과 죽음

윤동주(尹東柱) 탄생 100주년

박명윤(보건학박사,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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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윤동주(尹東柱) 시인이 탄생한 ,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윤동주 시인은 1917 12 30 만주 간도성 화룡현 명동촌(지금의 만주 지린성 연변 용정)에서 아버지 윤영석과 어머니 김용 사이의 4 2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아명(兒名) 해환(海煥)이다.

 

함경도와 평안도 일대에 19세기 말경 기근이 심해지자 조선 사람들은 국경을 넘어 북간도와 연해주 등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윤동주의 증조부도 집안을 이끌고 1886년경 함경도에서 만주로 이주하였다. 윤동주는 어려서부터 기독교인인 할아버지와 학교 교사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고 자랐다.

 

윤동주는 1925 명동소학교(明東小學校) 입학하여 5학년 급우들과 함께 문예지 새명동 만들 만큼 어려서부터 문학에 관심을 보였다. 소학교 졸업 용정의 은진중학교애 입학하였으며, 1935 평양의 숭실중학교로 전학하였다. 숭실활천(崇實活泉) 공상(空想) 발표하였다. 윤동주는 숭실중학교에서 신사참배 강요에 항의하며 자퇴하고, 고향 용정으로 돌아와 광명중학교에 편입하였다.

 

1938 2 광명중학교를 졸업한 경성(京城, 서울)으로 유학을 와서 4월에 연희전문학교( 연세대학교) 문과에 입학하여 왕성한 문학 활동을 했으며, 1939 연희전문 2학년 재학 소년(少年)잡지에 동시 산울림 발표하며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1941 12 연희전문학교 졸업에 즈음하여 그동안 틈틈이 썼던 시들 19편을 골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 내려 했으나 당시 흉흉한 세상을 걱정한 주변인들의 만류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1941 연말에 고향집 부모는 일제(日帝) 탄압과 아들의 도일(渡日) 수속을 위해 성씨를 하라누마(平沼) 창씨했다. 윤동주는 히라누마 도슈(平沼東柱) 창시개명을 매우 괴로워했다고 한다. 그는 창씨개명에 따른 고통과 참담한 비애를 그린 참회록(懺悔錄) 1942 1 24일에 썼다. 참회록은 고국에서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1942 4월에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릿쿄대학(立敎大學) 영문과에 입하하였으나 6개월 만에 중퇴하고, 교토 도시샤(同志社)대학 문학부로 전학하였다. 일본경찰의 감시를 당하고 있던 윤동주는 1943 7 귀향길에 오르기 독립운동 혐의로 체포되어 경찰서에 구금되었다. 교토지방재판소에서 <독립운동> 죄목으로 2년형을 언도받고 큐수(九州) 후쿠오카(福岡)형무소에 투옥되었다.

 

윤동주 시인은 자기 자신을 반성하고 끊임없이 성찰하면서 일본에서 쉽게 씌어진 5편을 서울의 친구에게 보냈으며, 이것이 윤동주의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당시 경성(京城, 서울)에선 동주 시를 읽지 않은 여학생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윤동주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흐뭇하고 따뜻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성품을 지닌 훈남인데다, 슬픈 글을 이토록 서정적으로 썼다는 것을 독자들은 놀라워했다.

 

윤동주는 1945 2 16 27세의 젊은 나이로 감옥에서 요절(夭折)했다. 사인(死因) 관해서는 옥중(獄中)에서 정체를 없는 주사를 주기적으로 맞은 결과, 또는 일본군(日本軍) 의한 마루타, 생체실험설이 제기되었으나 불확실(不確實)하다. 윤동주 시인의 유해는 화장하여 용정의 동산교회 묘지에 3 6 묻혔으며, 장례식에서 우물 속의 자화상 새로운 낭독되었다.

 

사후 1947 2 정지용의 소개로 경향신문에 윤동주의 유작이 소개되고 추도회가 거행되었다. 1948 1월에 유고 31편을 모아 정지용의 서문을 붙여 <하늘과 바람과 별과 > 정음사에서 간행했다. 윤동주는 민족적 저항시인, 강인한 의지와 부드러운 서정을 지닌 시인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북한에서는 일제말기 독립의식을 고취한 애국적 시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정부는 1990 8 15 윤동주 시인에게 건국공로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1999년에는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가 20세기를 빛낸 한국의 예술인으로 선정했다.

 

윤동주 시인의 10주기(十週忌) 1955 2월에 정음사(正音社)에서 유고집(遺稿集) <하늘과 바람과 별과 > 발행했다. 유고집은 5 224쪽이며, 서시(序詩) 시작되는 윤동주 시집 1부는 연희전문학교(延禧專門學校) 문과를 졸업할 무렵에 졸업을 기념하고자 77 한정판으로 출판하려던 자선(自選)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 18편의 시가 실려 있다. 2부는 일본 동경 유학시절 작품 5편이 실려 있으며, 작품과 일기장은 일경(日警) 압수되어 찾을 길이 없다. 3부는 습작기(習作期) 작품 42, 4부는 동요(童謠) 22, 그리고 5부는 산문(散文) 5편이 실려 있다.

 

윤동주 시인의 대표작 <序詩> 1941 11 20일에 지은 시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의 자선(自選)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 수록된 작품은 자화상/ 소년/ 오는 地圖/ 돌아와 보는 / 병원/ 새로운 / 看板 없는 거리/ 太初의 아침/ 태초의 아침/ 새벽이 때까지/ 무서운 시간/ 十字架/ 바람이 불어/ 슬픈 族屬/ 눈감고 간다/ 다른 고향/ / 헤는 모두 18편이다.

 

윤동주 시인의 모교인 연세대학교는 윤동주 시비(詩碑) 신촌 캠퍼스 경내에 1968 11 3 건립하였으며, 시비 앞면에는 <서시> 그리고 뒷면에는 연세대학교총학생회 글이 새겨져 있다. 윤동주는 민족의 수난기였던 1917 독립운동의 거점 북간도 명동에 태어나 그곳에서 자랐고 1938 봄에 연희동산을 찾아 1941년에 문과를 마쳤다. 그는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학업을 계속하며 항일독립운동을 펼치던 19452 16 일본 후꾸오까형무소에서 모진 형벌로 목숨을 잃으니 나이 29세였다. 그가 동산을 거닐며 지은 구슬 같은 시들은 암흑기 민족문학의 마지막 등불로서 겨레의 가슴을 울리니 메아리 하늘과 바람과 별과 더불어 길이 그치지 않는다. 여기 그를 따르고 아끼는 학생 친지 동문 동학들이 정성을 모아 그의 체온이 깃들인 언덕에 그의 한수를 새겨 시비를 세운다.

 

2013 2월에는 캠퍼스 핀슨홀(Pinson Hall) 윤동주 기념관(Yoon Dong Ju Memorial Hall) 설치했다. 연희전문학교 창립 초기에 공이 미국 남감리교 총무 핀슨 박사를 기념하기 위하여 핀슨홀 명명된 2 석조건물은 1922 학생기숙사로 준공되었다. 1938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한 윤동주는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사색하고 고뇌하며 쓰기에 전념하였다.

 

연세대학교는 올해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맞아 다양한 기념사업을 펼치고 있다. 윤동주시인 추모식(2 16), 윤동주 기념 음악회(5 18), 탄생100주년 기념식(12 7), 윤동주 시문학상 시상식 기념강좌(7 3), 경연대회/연변 윤동주 백일장(5 20, 중국연변), 윤동주 백일장(8 9, 원주캠퍼스), 국제학술대회(12 8-9), 윤동주와 강연시리즈( 8) 등을 개최한다.

 

연세대학교 윤동주기념사업회(회장: 김용학 연세대 총장) 윤동주 탄생 100주년 사업 취지는 다음과 같다. 윤동주 시인은 우리 역사의 가장 어두운 시대를 양심의 빛으로 비추며 살다간 청년으로, 민족의 순결한 정신과 세계시민으로서의 양심을 상징하는 시인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시인의 모교인 연세대학교는 모든 죽어가는 에게 바쳐진 그의 삶과 시에 담긴 정신이 연세와 민족뿐 아니라 아시아와 세계에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있음을 기억하고자 한다.

 

윤동주 탄생 100주년 기념음악회 새로운 지난 5 18 오후 8 연세대학교 백양누리 금호아트홀(Kumho Art Hall Yonsei)에서 열렸다. 1938 5 10일의 날짜가 찍힌 새로운 이라는 시에서 윤동주 시인은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이라고 했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 어제도 가고 오늘도 / 나의길 새로운 /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 오늘도... 내일도... / 내를 건너서 숲으로 /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연세대학교 음악대학 교수 졸업생들이 중심이 되어 발족한 관현악 합주단인 연세 신포니에타(The Yonsei Sinfonietta) 이탈리아 작곡가 비발디(Antonio Vivaldi, 1678-1741) 사계(Four Seasons) 중에서 겨울(Winter) (Spring) 그리고 노르웨이의 작곡가 그리그(Edvard Grieg, 1843-1907) Two Elegiac Melodies Op.34 연주했다.

 

특히 이번 음악회는 윤동주 시인의 시와 삶에서 영감을 받아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작곡가인 연세대학교 음악대학 임지선 교수와 교토시립예술대학의 나카무라 노리코 교수의 창작곡(創作曲) 선보였다. 임지연 교수의 비올라(viola) 협주곡, 새로운 (A New Path: In Memory of Yoon Dong Ju) 나카무라 노리코 교수의 海煥*草木川花奏鳴(해환초목천화주명) 각기 윤동주 시인의 시에 대한 음악적 해석이며, 시와 음악이 만나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 것이다. (*海煥은 윤동주 시인의 兒名)

 

윤동주 시인이 <序詩>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는 삶을 살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또한 <새로운 >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구절과 같이 우리도 올바른 새로운 길로 힘차게 걸어가야 한다.

 

/ 靑松 朴明潤(서울대학교 保健學博士會 고문, 대한보건협회 자문위원, 아시아記者協會 The AsiaN 논설위원) <청송건강칼럼(570). 2017.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