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 신 도

 인도는 전통적으로 카스트라고 하는 신분제도에 의해 독특한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인도는 크게 네 개의 카스트가 있는데,

 브라만 계급으로 이들은 힌두 승려그룹이며 크샤트리아 계급으로 이들은 귀족과 무사들 그룹이며 바이샤 계급으로 이들은 평민들로 구성되며 수드라 계급은 가장 낮은 천민과 노예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실재적으로는 직업에 따라 약 2,378개의 카스트가 있으며 결혼과 같은 대사는 같은 신분이 아니면 성사되지 않을 정도로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인도 사회 속에 깊게 뿌리박고 있다. 지금도 이들은 목숨을 걸고 이 전통을 지키고 있다.

 세계 소프트웨어 2위국이고 인공위성을 띄우고 핵을 보유하고 있지만 흔히 인도를 일컬어 인도의 머리는 21세기에 있고 꼬리는 19세기에 있다.”고 한다.

 인도뿐만 아니라 중국이나 유럽의 국가들도 형태와 강도의 차이는 다소 다르지만 역시 여러 계층의 복잡한 신분사회 구조를 이루고 있으며 그 계층 간의 갈등, 충돌 그리고 신분상승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들이 있는 것이다.

 봉건제도의 국가형태가 아니라도 현대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이라는 가치기준에 따라서 다양한 계층과 특성의 새로운 계급사회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계급구조는 하나님 앞에서 누구나 제사장이라는 신앙을 가지고 있는 개혁주의 교회 안에서도 여전히 제도화되어 있다. 이와 같은 비 성경적 인본주의는 개혁되지 않고 천주교 조직의 폐습을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흔히 개혁교회 안에서도 목사를 가부장적이며 하나님의 대리자로서의 절대권위를 부여하고 있으며 그 성직자 그룹도 이미 천주교의 복잡하고 엄격한 계급조직을 모방하여 굳어져 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종교 그룹은 피 지배대상에 대한 적절한 카스트제도가 필요한 것이다. , “평신도라는 카스트가 있어야 되고 이 안에서 또 경제자본논리에 따라서 다시 세분화되어 전체적으로 거대하고 특별한 종교계급사회가 형성되는 것이다.

 “평신도라는 단어는 성경적으로 적절하지 못한 용어이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조직이나 계급 등은 자연발생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또 그것이 어느 정도 사회나 조직을 기능적으로 잘 유지 발전시키는 적절한 장치이기도 하다. 그러나 문제는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 소위 성직자와 평신도라는 마치 계급사회 같은 신분의 구별이 정해지고 이에 따라 기득권층과 소외계층의 갈등이 조장된다면 이것은 이미 기독교 신앙 공동체는 아닌 것이다.

 이러한 것을 권위주의(Hierachism) 즉 계급주의라고 한다.
 한국 기독교 사회 안에는 이러한 인본주의의 부작용 현상으로 목사직과 교회직의 성직이 대량생산 되고 있다. 현대판 시모니(simony-성직매매)의 난장판 시대인 것이다. 목사직과 교회 각 직분을 받는다는 것은 면죄부와 같은 천국 티켓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노비문서인 것이다. 그래서 목사는 인 것이다.
평신도(?)여 무지몽매에서 깨어나라!

                                                                                                     본지 칼럼리스트 이준철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