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松 건강칼럼 (519)... C형 간염, 간경변증, 간암
간염(肝炎), 간경변증(肝硬變症), 간암(肝癌)
박명윤(보건학박사,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지난해 11월에 서울 양천구 소재 다나의원에서 ‘C형 간염(hepatitis C) 집단 감염(感染)’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달에는 31일부터 전라북도 순창 지역에 ‘C형 간염 괴담(怪談)’이 돌기 시작했다. 즉 8월 30일에 질병관리본부는 ‘순창의 한 내과 의원에서 C형 간염 집단 감염이 발생하여 역학조사반을 내려 보냈다’면서 출입기자단에게 보도제한(엠바고, embargo)을 요청했다.
질병관리본부는 2013-2015년 건강보험으로 해당 내과의원에서 C형 간염 치료를 받은 사람이 203명이었다는 ‘빅 데이터’ 분석 결과를 근거로 제시했다. 그러나 한 시간여 뒤에 ‘이 병원에서 환자가 집단으로 발생한 것인지, 기존 C형 간염 환자들이 이 병원에서 진료를 받아서 수치가 많이 잡힌 것인지 알기 어렵다’고 했다.
순창에 소재하고 있는 네 군데 내과 의원 가운데 유일하게 감염(感染)내과가 있는 A병원이 감염원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이에 지난 1년 사이 C형 간염이 집단 발병했던 서울 동작구, 강원도 원주 소재 병원에 이어 A병원에서도 집단감염이 발생했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졌다. 엉뚱한 괴담으로 A병원은 내원 환자가 뚝 떨어져 곤욕을 당했다.
전라북도 보건 당국은 “순창 인구 2만9000여명 중에서 C형 간염 환자는 237명이라고 밝히면서, 이미 C형 간염에 걸린 일부 환자들이 감염병 전문 병원인 A병원을 치료 목적으로 방문했을 뿐 집단 감염이 발생한 것은 아니다”고 괴담 진화에 나섰다. 건강보험공단의 전국 C형간염 진료현황 자료에 따르면 2006년 3만6863명에서 2015년 4만4271명으로 증가했다.
서울의 다나의원의 경우는 보건 당국 조사 결과에 따르면 다나의원 K원장은 피로 회복과 비만 치료 목적 등으로 주사 처방을 많이 했으며, 이 과정에서 1회용 주사기를 반복 사용하였고, 남은 주사액을 버리지 않고 재사용했다. 즉 내원 환자들에게 수액 치료와 동시에 영양제 등을 첨가 주사할 때 같은 주사기를 반복 사용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다나의원 원장은 개당 100-200원하는 1회용 주사기를 반복 사용하는 등 상식에 반하는 의료 행위를 한 결과 대형 집단 감염 사태가 빚어졌다. 1회용 주사기는 사용 후 폐기하는 것이 상식이기 때문에 소독 의무도 없고 관련한 처벌 규정도 없다. 이에 주사기를 재사용한 경우 시정 조치를 내리거나 비도덕적 의료 행위를 적용해 1개월 자격정지를 내리는 것 외에 다른 처벌 조항은 없다.
한편 미국에서는 지난 2013년 네바다주 클라크 카운티 법원은 1회용 주사기를 여러 번 사용해 환자 9명이 C형 간염에 걸리게 하고 이 중 2명을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를 인정해 담당의사에게 종신형(終身刑)을 선고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월부터 전 국민을 대상으로 ‘주사기 재사용’ 등에 대한 신고를 받고 있다. 현재(9월 5일)까지 총 85건 신고를 접수했으며, 이 중 54건에 대해 현장조사를 벌여 26곳에서 실제로 1회용 주사기 재상용 등 위법행위를 적발해 전국 시군구 보건소에 행정처분을 의뢰했다.
적발된 의료기관 가운데 10여 곳은 전국 평균을 웃도는 C형 간염 환자들이 이들 병원들에 다녀간 사실이 확인됐다. 의료기관의 불법 행위 유형은 ▲1회용 주사기 재사용 ▲주사기 외 1회용 의료기기 재사용 ▲의료기기 소독 불량 ▲주사기 포장을 뜯은 뒤 방치 등이다.
보건복지부는 이번 조사에서 1회용 주사기 재사용 등 불법행위를 저지른 의사 12명에 대하여 징계처분(1개월 자격정지) 대상으로 지난 5월에 결정했지만 4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징계가 마무리되지 않고 있다. 의료인 징계는 사전 통보와 청문 등을 통해 결정되는데 보건복지부는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징계 절차를 신속히 밟지 않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9월 6일 발표한 ‘C형 간염 예방 및 관리 대책’에 의하면 1회용 주사기 재사용 등으로 C형 간염을 전파했을 가능성이 높은 의료기관은 앞으로 역학(疫學)조사를 받기 전에 영업정지와 병ㆍ의원 명단을 공개해 경각심을 준다. 또 C형 간염을 ‘발생자 전원 감시 대상’ 감염병 체계로 전환해 C형 간염 환자를 확인한 모든 의료기관(현재는 186개 의료기관)은 의무적으로 보건 당국에 보고토록 했다.
내년 상반기부터 C형 간염 발생률이 높은 지역의 40세와 66세 등 생애(生涯)전환기 건강진단 대상자에게 C형 간염 검사를 시범적으로 실시한다. 1회용 의료기기 재사용을 막기 위해 구입량과 사용량을 비교할 수 있는 유통관리 시스템 도입을 위한 ‘의료기기법’ 개정안을 9월 중 내놓기로 했다. 1회용 주사기를 재사용하는 경우가 확인되면 담당 의사에 대한 처벌을 현재 1개월 자격정지에서 최대 1년으로 높이기로 했다.
간염(肝炎, hepatitis)이란 간세포 및 간 조직의 염증(炎症)을 의미한다. 간염은 급성과 만성으로 구분하며, 간염이 6개월 이상 낫지 않고 진행하는 경우를 만성 간염이라고 한다. 주요 원인에는 바이러스, 알코올, 약물, 자가면역 등이 있다. 간염을 세분하면 급성 바이러스성 간염(A, B, C, D, E형), 만성 간염(B, C, D형), 알코올성 간염, 독성 간염, 자가면역성 간염 등이 있다.
C형 간염은 C형 간염 바이러스(hepatitis C virus, HCV)에 감염되었을 때 이에 대응하기 위한 신체의 면역반응으로 인해 간에 염증이 생기는 질환을 말한다. 원인은 C형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된 혈액 등 체액(體液)에 의해 감염되며 성(性)접촉, 수혈, 혈액을 이용한 의약품, 오염된 주사기의 재사용, 소독되지 않은 침(鍼)의 사용, 피어싱(piercing), 문신을 새기는 과정 등에서 감염될 수 있다.
일반에게 C형간염은 B형과 달리 인지도가 매우 낮은 편이다. 대한간학회(大韓肝學會) 등에 따르면 최근 직장인 건강검진에 C형간염(肝炎) 검사가 보편화된 이후 C형간염 판정을 받는 환자와 이에 따른 간암(肝癌) 등으로 간 이식을 받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학계에서는 국내 C형간염 유병률(有病率)을 전 국민의 1%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B형 간염과 C형 간염의 차이점은 ‘B형 간염’은 바이러스가 많이 증식하며, 보통 항원, 항체 검사를 쉽게 할 수 있다. 항체는 바이러스를 죽이며, 항체가 있으면 바이러스가 대개 없다. 항체 검사가 매우 정확하며, 면역학적 검사로 진단이 정확하다. 한편 ‘C형 간염’은 바이러스 증식이 적고 돌연변이를 잘 일으키며, 항원검사가 어려워 보통 항체검사를 한다.
간암(liver cancer)은 발생 건수로는 전체 암 중에서 6위지만, 사망률은 폐암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우리나라 간암의 원인으로 간암 발생이 가장 많은 40-50대를 포함하면 B형간염이 약 70%, 그리고 C형간염으로 인한 간암은 약 10% 정도이다. 그러나 60세 이상 고령자는 간암의 약 30%는 C형간염에서 비롯된다.
급성 C형 간염은 바이러스 잠복기는 평균 7-8주로 대부분 무증상이며 20%에서 황달이 발생한다. 드물게는 피로감, 소화불량, 오심, 허약감, 체중감소 등이 동반되고, 전격성 C형 간염의 발생빈도는 극히 드물다. 전형적인 급성 C형 간염은 4-6개월 이내에 정상으로 회복되는 경우가 많다. 만약 6개월 이상 자각증상이 있거나 간 기능이 회복되지 않으면 만성 간염으로 이행되었음을 의미한다.
만성 C형 간염은 대부분 증상이 심하지 않아 평소에는 잘 모르고 있다가 신체검사 또는 헌혈 시 우연히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본인이 C형 간염 환자인지를 모르고 수십 년이 지난 후 간경변증(肝硬變症, hepatocirrhosis)이나 간암(肝癌)으로 진행된 후에 발견하는 경우도 많다. 또한 B형 간염에 비해 서서히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 고령(高齡)인 환자가 많다.
C형간염에 걸릴 경우 약 15% 정도는 급성 증상을 보이지만 나머지 대부분 환자들은 만성 보균자가 된다. C형 간염이 우리 몸에서 자연적으로 제거되는 경우는 1% 미만으로 매우 드물고, 성인에게 감염되면 55-85%가 만성화된다. 만성화된 C형간염을 20년 이상 방치할 경우 간암과 같은 치명적인 간 질환으로 진행될 수 있다. C형간염이 만성화되면 20-30%는 간경변증으로 진행되고, 2-5%는 간암으로 발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C형간염은 증상이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지만, 일부 환자에서는 황달(黃疸), 권태감, 피로감, 전신 쇠약감, 근육통, 식욕부진, 구토, 복통 등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증상들이 무조건 C형간염이라고 볼 수는 없으므로, 간 기능검사, 혈액검사 등을 통해 C형간염 바이러스 항체를 검출하거나, C형간염 바이러스의 RNA를 검출하는 검사법을 통해 확진을 한다.
C형간염은 빨리 치료할수록 효과가 훨씬 좋다. 따라서 치료는 간이 딱딱해지는 간섬유화가 오기 전에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시아인은 C형간염 치료제에 잘 듣는 유전자를 갖고 있어 치료가 비교적 잘 된다. 또한 감염된 C형간염 바이러스도 여러 유형(1-6형) 중 치료가 잘 되는 2-3형의 비율이 서양인보다 더 높아 치료가 잘 되는 편이다.
C형간염에 걸린 경우 급성기나 악화기에는 과도한 신체 활동은 회복을 느리게 할 수 있으므로 삼가며, 충분한 휴식을 취하도록 한다. 단백질이 풍부한 음식과 수분을 충분히 섭취하면 회복에 도움이 된다. 또한 의약품, 한약, 건강식품 등이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복용여부를 전문의와 상담하여야 한다.
C형 간염의 기존 표준 치료는 인터페론(interferon)과 리바비린(ribavirin)을 같이 이용하였다. 대한간학회지(2012년)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인터페론과 리바비린의 병합 요법의 반응률은 유전자형이 1형의 경우는 53.6-80.8%, 2형 또는 3형의 경우는 78.9-92.7%였다. 한편 과립백혈구의 일종인 호중구(好中球) 감소 등 부작용으로 치료를 중단한 경우는 10-14%로 나타났다. 최근에 C형간염을 획기적으로 치료하는 약들이 개발되고 있다.
한편 생체 간이식 수술에서 기증자의 간을 땔 때는 간의 문맥(정맥)과 담도가 복잡해 수술 중 출혈이 생겨 기증자가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여전히 개복술(開腹術)을 많이 한다. 그러나 최근에 3D 복강경이 개발되면서 복강경으로 간을 꺼내는 것이 가능해졌다. 또한 상하좌우로 100도씩 구부러지는 복강경 카메라의 개발도 복강경 간수술을 수월하게 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C형간염 등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각종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아시아태평양 간학회(肝學會) 회장인 싱가포르 국립의대 림생기 교수는 “C형간염에 대한 교육과 검진을 통해 질병의 발견 비율을 높이는 것이 전 세계 의학계의 시급한 이슈이므로 정부기관과 전문가들이 적극적으로 노력하여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에는 약 25만명이 C형 간염에 걸린 줄 모르고 지내다가 나중에 간경변증ㆍ간암 진단을 받는 경우가 있다. C형간염은 AㆍB형과 달리 형태가 변화무쌍한 RNA 바이러스이므로 항체 백신을 만들기 어렵다. 백신이 없으므로 감염되지 않도록 예방에 신경을 써야 한다. 주사기는 반드시 1회용을 사용하여야 하며, 면도기 등 혈액에 오염될 수 있는 모든 물건이 간염(肝炎)을 전파시킬 가능성이 있으므로 주의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