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에서 마주친 목사와 목사아들

칼럼 김진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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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 정치범으로 옥중에 있던 때가 기억난다. 그때 나는 박정희 대통령의 긴급조치 위반으로 15년형을 살고 있었다. 매섭게 추운 겨울 날씨에 나는 독방을 서성거리며 찬송을 불렀다. 어머니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익숙하게 부르던 주를 가까이 하려 함은 십자가 같은 고생이나 흥얼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옆방에서 벽을 쾅쾅 치는 소리가 들렸다.

 

옆방에 찬송 부르는 선생님, 찬송 부르는 선생님』『? 저를 부르십니까? 누구신지요?』『, 선생님 저는 옆방에 있는 미결수입니다. 폭행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러세요. 그런데 저를 부르십니까?』『선생님, 죄송스럽습니다만 지금 부르시던 찬송을 소리 높여 불러주십시오. 가사를 적고 싶은데 들리지 않습니다20 초나 되었음직한 젊은이의 음성이었다. 나는 의아해 하며 되물었다.

 

소리를 높여 부르기는 하겠습니다만 어쩐 일로 그러시는지요?나의 물음에 젊은이는 자기의 사연을 말해주었다. 자기는 시골 목사의 아들로서 목사인 아버지가 가족을 너무 고생만 시키는 일이 불만이었다. 그렇게 한다고 교인들이 알아주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더라는 것이었다. 때로는 아버지가 교회 장로나 교인들에게 구박받는 것을 때는 미칠 것만 같았고, 그렇게 살아가는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 아버지에 대한 반발로 자기는 깡패가 되었노라 했다.

 

나가서 싸움질을 일삼고 때로는 교인 자녀들을 때려주는 말썽을 일으켰다. 그런 자기를 어머니가 울면서 달래고, 붙들고 기도하고, 때로는 손잡고 찬송을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그때에 어머니가 즐겨 부르시던 찬송이 바로 내가 부르고 있는 찬송이라고 했다. 이번에도 폭행으로 들어와 재판을 기다리고 있는데 옆방에서 내가 부르는 찬송 소리를 들으니 눈물이 쏟아지고 어머니에 대한 죄스러움에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고 그렇게도 밉기만 하던 아버지가 그리워 견딜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를 따라 찬송을 함께 부르며 가사를 적으려고 애쓰는데 목소리가 너무 낮아 들리지 않으니 높은 목소리로 불러달라는 부탁이었다.

 

나는 그의 그런 사연을 듣고는 가슴이 찡하여 구절 구절을 일러주며 함께 불렀다. 서로 얼굴도 모르는 사이에 벽을 가운데 두고 소리로만 통하는 처지였지만 나도 그도 울며 찬송을 불렀다.

 

주를 가까이 하려 함은 십자가 같은 고생이나 일생 소원은 찬송하면서 주께 나가기 원합니다. 고생하는 야곱이 돌베개 베고 같습니다. 꿈에도 소원이 찬송하면서 주께 나가기 원합니다 그는 끝내 통곡하였고 우리 둘의 대화는 그것으로 끝났다. 일이 있은 두어 달이 지난 어느 낯모르는 부인이 면회를 왔다. 50 초의 부인을 면회장에서 만난 나는 의아스러워 물었다.

 

처음 뵙는 분인 같은데요? 저를 찾아오신 맞습니까?』『, 선생님, 저를 모르시겠지요. 선생님께서 전에 옆방에 있는 청년에게 찬송가를 가르쳐주신 기억나세요?』『, 기억납니다. 목사 아들이라던 청년 말이지요』『, 맞습니다. 제가 에미 됩니다』『! 그럼 목사 사모님 되십니까?』『, 제가 목사 사모이고 애의 에미 됩니다. 선생님이 찬송을 가르쳐주신 애가 맏아들입니다』『사모님 반갑습니다. 그런데 웬일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자세히 말씀드리지요. 아들이 얼마 집행유예를 받고 출감했습니다. 그런데 감옥에서 나온 후로 새사람으로 변했습니다. 썩이던 옛날 모습은 씻은 듯이 사라지고 착실한 사람으로 변했기에 제가 물었습니다. 얘야, 감옥에서 무슨 일이 있었니. 감옥 갔다 오더니 그렇게 변할 수가 없구나 그랬더니 감옥에 있을 옆방에 계시던 선생님 만난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찬송을 따라 부르면서 통곡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이제 출감하면 목숨 걸고 사람답게 살아야겠다고 맹세했다고 합니다. 아들이 변하게 내력을 들은 남편이 그렇게 고마운 분을 얼른 가서 뵙고 인사라도 드리라고 나를 보냈습니다. 선생님은 우리 아들의 은인이시고 저희 가정의 은인입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사모님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가면서 차근차근 말해주었다. 나도 가슴이 찡하고 감동이 전해왔다. 그래서 나도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려드렸다.

 

저도 지금 찬송을 부를 때마다 어머니 생각을 합니다. 제가 자라며 고달플 때마다 찬송을 불러달라고 하시던 어머니를 생각하며 감옥생활을 이겨나가고 있습니다 사모님께서는 어려운 처지임에도 나를 위해 영치금까지 넣고 가신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렇게나마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