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과 함께하는 가정예배

 

가정예배 칼럼리스트 소진우 목사01.jpg

제목: 숨긴 그물에

성경: 시편 35 8 찬양: 찬송가 400

숨긴 그물에 자기가 잡히게 하시며라는 말은 여기서 다윗은 그의 대적들이 그를 모해하기 위하여 계획했었던 바가 그들에게 임할 것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앞에 있는 장애물이 마다 그것으로 인하여 넘어져 사탄이 박수 것을 생각하면 오기로 오는 장애물을 뛰어 넘는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나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박수 치실 그분을 생각하며 사는 하루 되길 바랍니다.

 

제목: 이유있는 즐거움

성경: 시편 35 9 찬양: 찬송가 270

4-8절에서 자신을 대적하는 세력의 몰락을 갈구했던 다윗은 돌연 승리의 기쁨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시편 기자를 비롯한 구약성경의 저자들이 표현하는 시의 독특한 기법으로 그들은 역경으로 인한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의 신실한 구원을 신뢰하였기 때문에 역경 극복을 간구하는 탄원 중에서도 종국적 구원을 찬앙하곤 하였습니다. 위기 가운데 함께 하신 하나님께서는 능히 건지시고 도우실 주님이시기에 즐거워 있습니다.

 

제목: 주님이 기뻐하시는 사람

성경: 시편 35 10 찬양: 찬송가 412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생각하니 고통과 위험 가운데서 부서지고 어그러진 같았던 뼈들이 다시 힘이 생기고 기쁘다는 의미의 모든 뼈로 해석할 수도 있겠습니다. 사함 받아 천국 소망을 바라보고 있는 자라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인적인 나의 생각과 행동과 말이 주님으로 맞추어 지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믿습니다. 오늘 하루를 살아도 주님이 나를 보고 기뻐하실 쪽으로 초점을 맞추는 살기를 바랍니다.

 

제목: 불의한 증인 앞에서라도

성경: 시편 35 11 찬양: 찬송가 620

불의한 증인의 이에 해당하는 원어는 사악하고 불법적인 증인이라는 뜻입니다. 불의한 증인이란 근거도 없는 거짓 소문을 퍼뜨려 대상을 궁지에 몰아넣는 이상의 불법한 거짓 증인들이라고 정의할 있겠습니다. 삼인성호(三人成虎) 말처럼 이유없는 거짓 소문으로 인하여 고통과 고난에 있을지라도 보시지 않는 곳에서 보시는 하나님을 의식하는 믿음의 눈을 가지고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제목: 번도 혼자였던 적은 없다.

성경: 시편 35 12 찬양: 찬송가 489

나의 영혼을 외롭게 한다는 말은 나의 영혼이 무엇을 잃게 되었다는 뜻으로 세상 속에서 홀로라는 저자의 외로움을 드러낸 표현입니다. 친구 없는 자들을 돕고 고통당하는 자를 위로하기를 애썼던 그리고 남을 위하여 진실 되게 기도하였던 자신을 모두가 버렸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태어나서 지금 순간까지 번도 홀로 이었던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함께 하시기에 나는 홀로 있는 같으나 혼자가 아닙니다.

 

제목: 듣고 보시고 아시고

성경: 시편 35 13 찬양: 찬송가 308

대적의 아픔, 고통을 자신의 아픔, 고통으로 알고 기도하는 기도자의 마음이 강조되고 있는 문맥을 중시할 본절은 다윗의 심경을 그리고 있는 같습니다. 상한 심령을 가지고 나아 나의 기도를 보시고 듣고 계시고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 이야기 합시다. 사람은 몰라 준다하여도 하나님은 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도움을 받으려기 보다는 하나님의 도움으로 승리하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제목: 굽어 슬퍼하는데

성경: 시편 35 14 찬양: 찬송가 289

굽어 슬퍼한다는 말은 슬픔의 외적인 표시였습니다. 예를 들면 깎지 않은 수염, 씻지 않은 얼굴 등을 강조하는 용어입니다. 이것들은 근동 지역에서 애곡하는 모습의 외면적인 특징들이었습니다.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 친구들 몰라줘도 주님은 아십니다. 또한 주의 사랑은 영원하고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으로 가득차고 넘쳐 나에게 가득한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제목: 살리는 언어는

성경: 시편 35 15 찬양: 찬송가 93

여기의 때리고, 치는 수단은 혀인데 이러한 사실들을 고려해 본다면 혀로 남을 중상하고, 욕하고, 모욕하는 자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겠습니다. 언어로 사람을 살리기도 하지만 죽이기도 합니다. 내가 오늘 하는 언어의 습관을 돌아보면 내가 살리는 사람인지 죽이는 사람인가를 돌아봅시다. 언어의 상처는 깊은 마음에 남습니다. 그러나 살리는 언어와 긍정의 언어는 영혼을 절망과 좌절 가운데에서도 살릴 있습니다.

 

제목: 덕을 세우는 행동

성경: 시편 35 16 찬양: 찬송가 425

여기의 망령되이 해당하는 원어는 불경스러운, 경건하지 못한, 파렴치한 사람을 가리키는 용어로 만취된 술좌석에서나 있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조롱하는 자란 문자 그대로의 뜻으로 해석할 없는 구절입니다. 조롱하는 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더듬더듬 하는자, 외국말을 하는 나아가서 농담하는 , 조롱하는 자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행동하나가 덕을 세우는 일에 전념 하는 사람이 되길 축복합니다.

 

제목: 상대방 입장에서 서서

성경: 시편 35 17 찬양: 찬송가 275

영역본에는 사랑하는 것으로 번역된 동일 구절의 영혼과 평행을 이루고 있는 단어는 에서도 찾아볼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유일하고 사랑스러운 딸을 가리킬 사용되었던 점을 고려할 용어를 유일할 아니라 사랑스럽고 귀한 생명으로 번역하는 것은 무리가 없겠습니다. 남의 목숨과 남의 것이 소중하다면 목숨, 것이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상대방 입장에 서서 생각해보고 그렇다면 실수 확률이 것입니다.

 

제목: 주께 감사하며

성경: 시편 35 18 찬양: 찬송가 91

대회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는 9, 10절과 동일한 성격을 지닌 구절로 비애의 탄원에 이어 분명한 구원을 내다보고 드리는 감사의 찬양입니다. 개인보다는 공동체의 경험을 더욱 중시하는 시편 저자의 의중을 그리고 있는 표현법입니다. 우리의 감사의 대상을 알고 감사로 물드는 삶을 그분의 뜻을 발견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여러분 되길 바랍니다.

 

제목: 부당한 오해와 가운데

성경: 시편 35 19 찬양: 찬송가 256

부당하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어떤 정당한 이유가 없이 라는 뜻이며 바로 이어지고 있는 까닭 없이와 분명한 평행을 이루는 단어이다. 다윗은 본절에서 그의 대적들이 정당한 이유도 없이 자신을 대적한다고 토로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아무 이유 없이 오해도 받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모든 가운데 간섭하고 계시다면 나는 말씀에 기준하여 살아 진실은 알려지고 문제는 해결되는 역사가 우리 가운데 있기를 축원합니다.

 

제목: 화평을 말하지 않는 자들이지만

성경: 시편 35 20 찬양: 찬송가 336

화평을 말하지 않는 자란 다윗의 대적들이 이웃과 좋은 말로 대화하는 것을 혹은 주위의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자들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들은 싸우기를 좋아하는 자들이라는 입니다. 우리는 오늘날 이런 자들을 싸움장이라고 부릅니다. 어느 가정, 어느 교회, 어느 국가든 좋은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용하고 시끄럽지 않다면 누군가의 희생과 덮어주는 후덕함이 있는 믿습니다.

 

제목: 조롱하는 소리도

성경: 시편 35 21 찬양: 찬송가 519

본절의 하하의 원어는 기쁨의 탄성인데 특히 다른 사람의 상처를 보고 음흉하게 즐거워하는 탄성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는 사악한 승리자의 탄성이기도 합니다. 나아가서 탄성은 십자가 아래서 예수께 온갖 조롱을 퍼부으며 희희낙락했던 자들의 탄성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조롱하는 소리에도 주의 순결한 신부로써 살아가는 거룩한 주님의 자녀로써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제목: 잠잠하지 마옵소서

성경: 시편 35 22 찬양: 찬송가 421

잠잠하지 마옵소서는 말하자면 대적들을 꾸짖고 징벌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표현은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호소라고 있습니다. 나를 멀리하지 마옵소서는 하나님이 개입하셔야 고통스러운 순간임에도 불구하고 개입하지 않으실 터뜨릴 있는 탄성으로 고통의 정도가 얼마나 심각한가를 암시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스데반이 죽을 주님은 벌려 일어서서 스데반을 맞이하셨습니다. 우리의 고통과 고난 주님이 벌려 안아 주시기를 간구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