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과 함께하는 가정예배 14-

 

 가정예배 칼럼리스트 소진우 목사01.jpg

제목: 홍수 때에라도

성경: 시편 29 11 찬송가 414

홍수는 악인들에게는 형벌이지만 의인들에게는 구원입니다. 하나님은 홍수로 악인들을 제거함으로써 의인들에게 진정한 평강을 허락해 주십니다. 여기서 힘이란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실 의인들이 심판을 벗어날 있는 용기와 소망을 의미합니다. 또한 힘은 환난과 핍박 중에 이를 극복할 있도록 하나님에 의해 베풀어지는 하늘의 능력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어떠한 환난 가운데 평안이 있는 것은 주님 주시는 기쁨과 소망으로 굳게 섰을 가능합니다.

 

제목: 모든 상황 속에서

성경: 시편 30 1 찬송가 306

본절은 여호와께 대한 찬송과 찬송의 이유를 밝히고 있는 구절로서 본시 전체 내용의 주제가 됩니다. 다윗이 깊은 곤경에 처해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곤경에서 벗어날 있었으며 이로 인해 여호와를 찬송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우물과 같이 깊고 터널같이 어두운 문제가 있음에도 기도하고 찬양 있는 이유는 주께서 함께하시기를 믿기 때문입니다.

 

제목: 주는 나의 치료자

성경: 시편 30 2 찬송가 249

다윗은 부르짖으매 라는 말을 사용함로서 자신의 질병이 단순한 의술로써 회복된 것이 아니라 기도를 통해 기적적으로 회복되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의 병이 의술로는 고치기 매우 힘든 상태였다는 증거가 3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이처럼 고치기 힘든 중병에서 기적적으로 일어났으니 다윗은 하나님께 감사의 찬송을 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상 의학, 어떠한 치료제로는 고칠 없는 질병도 하나님께서는 고치십니다. 하나님께 나의 연약함과 나약함을 모두 맡겨 회복되고 치유되기를 바랍니다.

 

제목: 죽겠다는 말보다는

성경: 시편 30 3 찬송가 134

스올은 무의식 상태로 있는 지하의 세계입니다. 이는 죽음에서 건지셨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무엇만 하면 죽겠다는 소리를 끝에 습관처럼 붙여달고 삽니다. 죽을 같은 상황 속에서도 죽겠다는 보다는 무조건 긍정하고 무조건 기뻐하고 무조건 감사하는 신앙인의 모습을 보입시다. 언어, 긍정의 언어로 상황은 어떠한가를 누구보다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기도의 무릎이 됩시다.

 

제목: 내가 받은 사랑은

성경: 시편 30 4 찬송가 289

본절은 자신의 하나님께 대한 찬송에 함께할 것을 다윗이 성도들에게 권면하는 장면입니다. 성도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하나님의 언약적인 사랑 또는 불변의 사랑, 끊임없는 사랑을 의미하는 헤세드에서 파생되었습니다. 용어는 하나님의 불변하신 사랑을 입은 , 하나님을 끊임없이 사랑하는 등의 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을 맛보고 알은 자만이 사랑을 또한 남에게 있습니다. 거저 받은 사랑을 받은 자로써 나누고 누리며 사는 사랑인이 됩시다.

 

제목: 노염은 잠깐

성경: 시편 30 5 찬송가 471

노염이란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이며 은총이란 하나님의 자비하신 속성에서 비롯되는 것이나 인간의 통회함을 보시고 분노를 돌이키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여기서 다윗이 증거하고자 하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에 대하여 분노하시나 분노를 오래 끌지 않으신다는 그리고 회개하는 자의 죄를 즉시 도말하시고 영원히 사랑하신다는 은혜로운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느끼며 살기를 소망합니다.

 

제목: 자만하지 않을 있는 방법

성경: 시편 30 6 찬송가 359

본절에서부터 12절까지에는 다윗의 실수와 그로 인한 고통 그리고 고통을 극복하고 하나님을 찬송하게 되는 그의 삶의 과정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한때 자기 자신을 신뢰한 자만심을 고백한 구절이 본절입니다. 자만은 불경건이며 어리석은 자의 특성입니다. 자만심은 율법에서 엄중히 금지되었으며 이것의 결과는 멸망이라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자만하지 않을 가지 비법은 발짝 물러서서 나를 바라본다면 자만하고 실수 확률이 훨씬 줄어 있습니다.

 

제목: 주의 얼굴을 가리 때에

성경: 시편 307절 찬송가 277

다윗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자 하나님께서 잠시 다윗을 떠나 계신 것이다. 주의 얼굴을 가리시매 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다윗의 자만을 꺾으시기 위해 잠시 진노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그 결과로 다윗에게 임한 것은 평강 대신 근심이었으며 건강 대신 죽음의 질병임을 볼 수 있습니다. 철저하게 온전히 하나님을 신뢰하며 나아 갈 때는 그 길에는 참 평안이 있습니다. 또한 그 길만이 승리의 길인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제목: 진노의 목적

성경: 시편 30 8 찬송가 366

질병으로부터의 구원을 요청하는 다윗의 간구입니다. 다윗은 형통할 때에는 하나님을 찾지 않았으나 하나님의 진노로 인해 고통에 처하자 하나님을 찾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성도에게 내려지는 하나님의 진노의 목적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내리어 졌을 이는 싫어서도 미워서가 아니라 내리는 진노임을 깨닫고 돌이키는 사람에게는 화가 돌이켜질 것입니다. 매를 실컷 맞고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진노가 복으로 바뀌는 축복이 있길 바랍니다.

 

제목: 주신 이후에도

성경: 시편 30 9 찬송가 424

이는 논리적인 다윗의 기도입니다. 그의 논리는 자신이 일찍 죽게 되는 것이 하나님께 아무런 영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유가 다음 구절에 구체적으로 진술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다윗의 간구가 단순히 생명의 연장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한편 다윗이 자신의 이러한 논리적인 간구 그대로 회복된 이후 임종시까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헌신하였던 사실이 성경에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것은 구해서 주셔도 변질되지 않는 삶이 우리 가운데 있길 바랍니다.

 

제목: 거저주시는

성경: 시편 30 10 찬송가 595

다윗이 하나님께 최종적으로 호소하는 근거는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그는 자신의 공로로는 도저히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깨달았던 것입니다. 구원은 값없이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나 상급은 우리가 노력해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통한 그분의 구원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구원의 감격으로 살아가고 구원의 기쁜 소식을 날마다 전하는 전도자의 삶을 삽시다.

 

제목: 극도의 기쁨

성경: 시편 30 11 찬송가 446

진정한 회개를 통해 그의 건강이 예전처럼 회복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단순히 건강의 회복 때문에 춤을 것이 아니라 그간의 고통 중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던 그의 심령이 회복되었기에 춤을 것입니다. 한편 이스라엘 백성들은 대적과의 전투에서 승리하였을 또는 축제 때에 춤을 추었습니다. 따라서 춤은 극도의 기쁨을 의미합니다. 오늘 나를 기쁘게 하시는 분이 누구이신가를 분명히 알고 기쁨 하루 사시길 바랍니다.

 

제목: 고난이 유익이 되는 사람

성경: 시편 30 12 찬송가 387

자만하던 때에 다윗은 주를 찬송하지 아니하고 잠잠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영혼과 육체가 회복된 이후에 하나님을 찬송하는 일에 전념하고자 합니다. 그는 고난을 통해 자신의 사명을 확고히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고난이 내게 유익이 되는 사람은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시고자 하는 바를 분명히 아는 사람입니다. 오늘 하루를 살아도 자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내게 주신 상황에 감사하며 살기를 축복합니다.

 

제목: 의지의 대상

성경: 시편 31 1 찬송가 175

구절은 다윗이 그의 유일한 의지의 대상으로서 여호와를 강조하는 기도문입니다. 다윗은 원수들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몸은 요새나 바위 이러한 것들 뒤에 숨겼을지라도 그의 마음은 항상 여호와만을 의지했던 것입니다. 여호와를 간절히 의지하는 다윗의 영적 상태를 의미합니다. 하나님만을 나의 피난처로 알고 사는 사람은 기도 것이고 그분만을 신뢰 것이며 감사 있습니다.

 

제목: 위급한 상황

성경: 시편 31 2 찬송가 299

구절은 다윗의 위급한 상황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다윗의 원수들은 가까운 곳에까지 이르렀을 것입니다. 이는 원수들의 공격에서 구원해 달라는 간구입니다. 나의 고난과 원수들의 핍박을 알고 계시고 보고 계시고 듣고 계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든든합니다. 배짱 하나 있다면 하루를 살아도 세상 앞에 당당하게 있습니다. 가진 때문에 괴로워하지 말고 우주의 창조주가 우리 아버지라는 사실을 믿으면 당당하게 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