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구제역과 조류독감의 재앙

 
  겨우내 전국적으로 구제역과
AI(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와 싸웠지만 아직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로 인해서 직접적인 피해만도 3조가 넘었다는 소식이다. 게다가 살처분한 동물사체를 매몰함으로 발생하게 되는 지하수 오염과 식육과 우유, 계란의 부족으로 인해서 나타나게 되는 가격상승,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살처분한 닭, 오리, 소와 젖소가 정상적으로 먹을거리를 공급할 수 있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적어도 2~3년이 필요하다고 하니 그동안 농민들과 국민들이 입게 될 피해는 사실상 계산하기 힘들 정도다.

이 현실은 풍수해와 천재지변으로 인해서 발생한 재해와는 비교도 안 되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음에도 그 반응은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게 느껴진다. 단순히 피해액만으로도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엄청난 것임에도 그보다 훨씬 적은 피해를 낸 자연재해에 대해서는 난리인데 반해서 왠지 거리감이 느껴진다.

동물에 대해서나 축산에 대해서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이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이 어불성설이겠지만 그 원인에 대한 인간의 책임에 대해 돌아보게 한다.

한마디로 이번 재앙은 더 많이 더 싸게라고 하는 경제논리가 동물들에 대한 배려는 없고 생산성과 이익만을 높이겠다는 인간의 의지가 만들어낸 결과다. 그렇다고 경제적 현실을 전적으로 부정할 수 없는 것이기에 무조건 비판만 할 수 없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동물들은 자연에서 스스로의 면역체계를 가지고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음을 받았다. 때문에 자연에 사는 동물들은 집단으로 발병하거나 폐사하는 것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 말고는 거의 없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왜 인간이 기르는 가축에만 집단폐사가 발생하는가?

그것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 동물의 체질과 습성과는 관계없는 사육방식과 환경에서 찾을 수 있다. 만일 동물들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아마 인간은 더 이상 인간으로서 대우를 받지 못하게 될지 모른다. 아무리 생산을 목적으로 사육한다고 할지라도 동물을 사육하는 것이 아니라 공장에서 생산하는 제품과 같은 존재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환경에서 자라는 동물들이 자가면역력이 저하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일단 발병하면 집단감염과 함께 즉시 폐사하게 된다. 또한 전염력도 강할 수밖에 없기에 한 농장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체 농가들의 피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생산성이라는 목적을 위해서 동물들이 살 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를 하지 않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때문에 사육하는 동물은 거의 예외 없이 태어나면서부터 항생제와 더불어 사육하는 것이 현실이다. 점점 고단위 항생제가 투여되고 주사로 투입하는 것은 물과 사료를 통해서 투여된다. 어떤 면에서 항생제로 사육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동물들의 체력이 약하고 면역력 또한 약하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정말 아무런 대안이 없는 것일까? 어떤 것도 절대적이라거나 완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대안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깊이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야 할 것이고, 바란다면 조금이라도 실천할 수 있으면 좋겠다. 생산성에 집착하는 한 어떤 대안도 없을 것이다. 때문에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적당한 것으로 만족할 수 있는 가치관이 먼저 우리 안에 만들어져야 한다.

축산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는 유럽의 축산 농가들의 경우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들은 이미 우리가 직면한 시행착오를 먼저 경험했고 그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선택한 것은 철저하게 사육수를 제한한다는 것이다. 즉 가축의 종류에 따라서 단위 면적당 기를 수 있는 수에 대한 규정을 정하여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다.

때문에 기르고 싶은 대로 기를 수도 없거니와 환경오염에 대한 대책도 자연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을 만든 것이다. 그렇게 됨으로 자연환경도 지켜지고, 가축들의 건강상태도 유지할 수 있음으로 항생제를 최소한 사용하고, 가축전염병에도 걱정을 덜게 되었다.

그렇다면 문제의 발단은 인간의 욕심이다. 축산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나 그것을 소비하는 사람의 입장이 모두 통제되지 않는 욕심이 지배하게 되면 어떤 법이 만들어진다고 해도 그것은 실효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생산자든 소비자든 적당한 것으로 만족하겠다는 가치관이 분명하게 있어야 하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생산자의 탓으로만 돌려서는 안 되는 것이 소비자도 절제와 여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적당히, 그리고 조금 덜 먹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있어도 되지 않겠는가. 이번 재앙은 많은 생산과 많은 소비를 이상으로 하는 본능적 욕구에 노출된 우리의 자화상을 깨닫게 하는 것으로 그 수업료가 엄청나게 비싼 것이었다. 따라서 모두가 깊이 돌이켜 볼 수 있고, 생산과 소비의 미덕이 어디에 있는지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시론 이종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