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은 일요일에 일어났을까?2

(안식일과 주일)

글 송택규 목사(지저스타임즈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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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는 언제부터 드리게 되었을까?

성경에 명확한 근거는 없지만 초대교회 때부터 자연스럽게 시작 되지 않았을까 추론할 수 있다. 왜냐하면 교인들이 엄청난 부활사건을 그냥 넘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떤 형태로든 이날을 기념하려고 예배를 드렸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안식일을 안 지킨 것도 아니고 동시에 두 가지를 같이 지켰을 것으로 여겨진다. 성경적 근거로는 사도행전 207절에서 보면 사도 바울이 제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마케도니아에 있는 드로아에서 칠일을 머물 때 그곳 성도들이 안식 후 첫날 떡을 떼려고 모였을 때 바울이 한 밤중까지 강론을 계속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고린도전서 161-2절에서도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매 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한 것을 볼 때에 매 주일 마다 예배를 드렸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초대교회 관행들이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한주의 요일과 일요일을 한주의 첫 날로 공포함으로서 자연스럽게 서서히 안식일로 바뀌었을 개연성을 간과 할 수 없다. 이것이 단초가 되어 기독교가 처음으로 둘로 갈라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스라엘의 유대인들과 소수의 이방인들이 율법의 안식일을 고수하는 반면 주님의 부활일을 일요일(주일) 안식일로 지키자는 이방인들의 견해가 엇갈려 서로 다른 교파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안식일은 지켜야만 하는가?

유대인이 지키던 안식일은 토요일이 되고 세상이 지키는 안식일은 일요일이 되다보니 서로 마찰을 빗게 되었고 이로 인하여 복음전파에 있어서도 지장을 받게 되었으며 어느 한쪽은 세상의 핍박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하나님 백성들은 이럴 때 당황하고 갈등하게 된다. 안식일이 없었다면 이런 갈등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안식일은 꼭 지켜야만 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와 꼭 지켜야 된다면 구약의 안식일인 토요일과 일요일 안식일 중 어느 쪽을 지켜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안식일은 사람이 만들어 지키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명령이었다. 창세기 313~17절에서 보면 하나님이 엿새 동안 일하시고 칠 일째 안식하신 날을 기념시키기 위하여 언약으로 인간들에게 주신 특별명령이다. 그러므로 그날은 성일로서 더럽혀서도 안 되고 일을 해서도 안 되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온전히 드리는 거룩한 날로 지키라고 십계명에서도 명령하셨다. 결국 안식일을 지키는 데는 모두가 이의가 없으나 지키는 날짜가 서로 다른데서 기독교인들이 갈등을 하는 것이다.

 

주님은 유월절에 돌아가셔야만 했을까?

안식일이 반드시 지켜져야 할 문제라면 주님은 토요일에 부활하셔서 안식일과 부활일을 맞추어 주셨더라면 이중적 갈등 구조는 안 일어났을 것인데 무슨 이유로 유월절(목요일 일몰시부터 금요일 일몰 전까지)날 돌아가시고 3일후인 일요일에 부활하시므로 세상과 갈등을 초래케 하셨을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왜 부활을 일요일에 맞추셨는지 그분의 뜻을 헤아려 볼 때 문제를 풀 수 있는 해답이 나오지 않겠는가. 그러면 성경 속에서 주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을 살펴보자.

 

주님의 일하시는 방법을 보면 굉장히 합리적이시며 효율적이시다. 주님은 어떤 외형이나 형식보다는 그 사건속의 핵심을 정확히 꿰뚫어 보시고 그 뜻과 의미를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마태복음 121-8절에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과 밀밭사이를 지날 때 제자들이 배가 고파 밀 이삭을 잘라 먹는 것을 보고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당신 제자들이 십계명을 어겼으니 어떻게 할 것 이냐고 따졌다. 주님은 안식일 보다 사람이 더 중함과 안식일의 주인이 바로 예수 자신이라고 말씀하신다.

 

또 마태복음 1210-13절을 보면 예수님이 안식일 날 병을 고치실 때 바리새인들이 율법에 위배됨을 지적하자 주님은 안식일 보다 사람의 생명이 더 중하고 선을 행함이 옳다고 말씀하셨다. 또 그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은 인간이 지은 지명을 사용하여 그 지명에 합당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심도 볼 수 있는데 예수님이 태어난 곳은 예언한 대로 베들레헴 즉 떡집이라는 의미를 가졌다. 바로 예수는 이 땅에 떡(말씀)으로 그곳에서 탄생하셨고 돌아가실 때는 겟세마네 동산(기름 짜는 곳이란 뜻)에서 돌아가셨다.

 

이와 같이 주님은 진리가 아닌 어떤 제도나 관습이나 형식적인 방법보다는 본질적인 의미 즉 그 뜻을 중요하게 생각 하시고 그 의미에 따라 바꾸시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본질이 순수하게 보전될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함인 것이다.

 

이렇듯 주님의 부활은 굉장한 큰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간들이 그날을 기념하게 될 것이고 그날을 기념한다는 것도 율법에 어긋남으로 어느 요일에 맞추어 부활해야 세상 방법과 서로 상충되지 않으면서 주의 백성들이 합리적으로 지켜나갈 수 있을까 생각하셨을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과 다투지 않고 자연스럽게 서로 어울려 안식일을 지킬 수 있는 방법으로 일요일에 부활하실 것을 결심하셨는지도 모른다.

 

또한 주님의 십자가 사건은 인류 구원의 절정에 달하는 사건이다. 이 역사적 구원의 세리머니(Ceremony)를 아무 의미 없이 아무 날에나 하시겠는가? 주님은 이스라엘 민족에 있어서 영원히 기록되어져야 할 출애굽 유월절 날을 자신이 십자가상에서 죽는 날과 맞추어 인류 구원의 날로 택하신 것도 기이하지 않은가.

 

주님께서 일요일에 부활하신 이유

모든 것이 합리적이지 않을 때 부작용이 나타난다. 숫자에도 의미와 뜻이 있는데 1은 하나님의 수요, 2는 땅의 수, 3은 완전수의 뜻을 가지고 있다. 주님의 부활을 예표 하는 요나서에서도 3일 동안 물고기 뱃속에서 있다가 나왔고, 3일 길을 걸어 니느웨이성에 입성하여 니느웨이를 구원하였다. 또한 예수님은 30세에 이르러 공생애를 시작했고, 3년간 사역하시다가 33세에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다.

 

또한 3이라는 숫자는 성삼위를 나타내는 숫자로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의 완전수를 가리키기도 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켜 노예()에서 해방(구원)시키기 위하여 어린양을 죽여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게 하셨고 그들을 구원시키신 날이 유월절인데 주님께서도 바로 그 유월절 날 죽으셨다는 사실을 주목하여 보라. 죽으신 그날 십자가 보혈로 우리 인류를 죄에서 해방 시키신 것이다.

 

당시 유월절은 태양력으로 목요일이 되고 예수님은 다음날 금요일 오후 3시에 돌아가셨다. 그러므로 유월절 다음날 돌아가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유대력으로는 하루의 시간 개념이 오후 일몰부터 다음날 오후 일몰시까지가 하루임을 볼 때 다음날이 아닌 유월절 날 돌아가신 것이 된다. 그리고 구원의 상징인 부활하시는 날도 완전수인 3일을 택하시므로 오묘하게도 세상 사람들이 쉬는 일요일 날 부활하시게 된 것이다.

 

결론

전능자 하나님께서 세상 사람들이 다 사용하는 공휴일을 부활일로 택하신 것은 우연히 된 것이 아니라 어떤 의도에서 하셨다고 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세상 사람들이 교회에 쉽게 나올 수 있게 하기 위함이요, 또 하나는 하나님 백성들의 갈등과 핍박을 덜어주기 위함이 아닌가 한다. 이것은 그들을 구원키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배려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일부 기독교의 종파 중에는 안식일은 하나님의 명령이신 율법임으로 절대로 고쳐서는 안 된다고 고수하고 있다.

 

안식일 문제는 바꿀 수 없는 진리나 또 그것을 바꾸면 인간의 생명에 지장을 초래한다던지 하는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다. 안식일의 본질은 하나님의 뜻이 잘 지켜지느냐 안 지켜지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구약에서 지켜지던 안식일(토요일)이 일요일이 되었다고 해서 문제가 될 수는 없다. 주권자요 완전자, 전능자이신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헤아리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를 제한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율법주의 보다는 율법의 정신을 잘 계승하고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닫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지 본질이 아닌 비본질적인 율법주의에 매몰 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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