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과 함께 하는 가정예배

 (설교 : 소진우 목사(예복교회 본지 사장)

제목: 부르짖을
성경: 시편 10 1 찬송가 461

다윗이 어찌하여 라고 부르짖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원수들의 박해로 인해 고통 받고 있을 하나님께서 역사하시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말은 하나님을 원망하는 불신앙적인 외침이라기보다 하루 속히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기를 간절히 간구하는 신앙적인 외침이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가 부르짖을 나타나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돌보시고 부르짖을 도우시는 하나님이 되십니다.

 

제목: 고난의 터널 너머에는예복교회 성전투시도 사본1 사본.jpg
성경: 시편 10 2 찬송가 537

악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어떠한 보복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마음대로 악을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원수들의 박해와 핍박으로 인하여 심한 고통에 빠질 하나님은 그를 믿고 그를 찾는 자에 간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악인은 그들 가운데 하나님이 없다 생각하기에 그러한 방자하게 행동하지만 거룩한 성도요 택한 족속이며 자녀된 자로써 우린 고난의 터널을 지나 있는 밝은 빛을 기대하며 전진하길 소망합니다.

 

제목: 하나님께로 가까이
성경: 시편 10 3 찬송가 183

본절은 하나님을 무시한 악인들의 마음 상태가 어떠한지를 보여줍니다. 불의로 재물을 착취하는 자가 마음으로 하나님을 점점 싫어하고 떠나는 상황을 묘사한 것이라고도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어떤 것을 우리가 사랑하게 된다면 이는 우상숭배며 하나님과 겸하여 섬길 없는 짓입니다. 하나님을 배반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께로 날마다 가까이 겸손히 나아가는 모두가 되어야겠습니다.

 

제목: 하나님을 의식한다면
성경: 시편 10 4 찬송가 342

악인들은 하나님의 존재뿐 아니라 그분의 간섭과 심판까지도 부인하는 것을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자신의 권력, , 명예 등에 눈이 멀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대항하려고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모릅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그럴지라도 믿는 우리는 그러지 맙시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식하며 사는 ,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라면 지금의 불편도 감수하여 영원히 썩지 아니 것에 우선순위를 두고 사는 복된 기적의 주인공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제목: 의기양양하며 살지라도
성경: 시편 10 5 찬송가 433

악인은 하나님이나 인간을 두려워함이 없이 또한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대담하게 악을 행했습니다. 악인은 위에서 권세를 누리고 있는 자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공격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타인들의 위협을 무시해 버립니다. 하룻강아지 무서운 모른다는 속담처럼 아무리 땅에서 의기양양 할지 모르나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경외하는 자는 살지만 악인은 벌을 면치 못하고 것입니다.

 

제목: 착각 속에 살다간
성경: 시편 10 6 찬송가 420

악인은 많은 사람들이 파멸할지라도 자기는 언제든지 형통할 것이라고 믿고 있는 마음의 상태입니다. 악인이 마음속에 이러한 생각을 가지게 것은 자기 스스로 어떠한 재앙도 물리칠 있다는 자만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악인은 고통 없는 행복만을 꿈꾸고 있습니다. 때로는 착각 속에 살며 나는 괜찮겠지 라는 자기 합리화에 빠져버린 사람이 바로 악인이라는 사실입니다. 날마다 하나님 앞에 있다라는 의식으로 하루를 우리는 죄짓는 일이 훨씬 적어 것입니다.

 

제목: 혀를 가지고
성경: 시편 10 7 찬송가 286

본절은 악인이 입술로 의인을 시험에 들게 사실을 보여주는 구절입니다. ' ' 맛을 즐길 있는 곳으로 표현은 악인이 단순히 악한 말을 뿐만 아니라 고러한 자체를 즐긴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려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작은 혀가 사람을 살리기도 하지만 죽이기도 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명심하고 나의 입술이 진정으로 찬양의 입술 기도의 입술이 되길 소망합니다.

 

제목: 보고 계시는 하나님
성경: 시편 10 8 찬송가 257

악인은 의인을 ()하기 위해 은밀하게 음모를 꾸밉니다. 악인은 연약한자들을 자기의 권세로 강탈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가진 부와 명예로 약자들을 괴롭히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들을 그저 두시지 않습니다. 사람은 보지 않는다 할지라도 은밀한 중에 보고 계시는 하나님의 눈과 심판 앞에서 피해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약한 중에 강함 되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의지하는 하루가 됩시다.

 

제목: 우는 사자처럼
성경: 시편 10 9 찬송가 353

사자는 난폭한 성질 때문에 종종 악인에 비유됩니다. 앞절에 이어 악인은 압제당하는 자를 또다시 압제하고자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입니다. 구절에서는 악인의 교활한 성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는 사자와 같이 마귀가 삼킬 자를 찾는 것처럼 악인 역시 그러하다는 것을 본절을 통해 있습니다. 이럴 일수록 우리는 기도로 영적싸움에서 이길 힘과 분별력을 가지는 사람이 되어야 것입니다.

 

제목: 어떠한 폭력과 압제 속에서도
성경: 시편 10 10 찬송가 517

강포란 유형적인 폭력뿐 아니라 무형적인 폭력도 가리킵니다. 이러한 폭력에 의해 연약한 자는 무력하게 당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폭력과 압제 속에서도 우리가 기억해야 가지는 믿음만은 일치 않아야한 다는 것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믿음, 변치 않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 때에 우리는 세상을 이기게 것입니다. 오늘 하루를 산다 해도 주님 오실 그날을 준비하는 굳건한 믿음으로 승리하며 살아갑시다.

 

제목: 사상에 따라서
성경: 시편 10 11 찬송가 270

4절에 이어 다시 악인의 사상을 소개한 부분입니다. 그들의 사상은 하나님께서 인간사에 도무지 관여하지 않는다는 악한 사상입니다. 이러한 사상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아무런 가책도 없이 연약한 자들을 괴롭힐 있었던 것입니다. 어떠한 사상과 정신을 가지고 사느냐는 매우 중요합니다. 영혼사랑과 살리는 일에 목숨을 거는 자는 복되지만 그렇지 않는 자들의 최후와 결과는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중심 예수로 무장된 삶이되기를 축복합니다.

 

제목: 여호와여 일어나옵소서
성경: 시편 10 12 찬송가 386

여호와여 일어나옵소서라는 말은 이는 하나님의 즉각적인 간섭을 요청하는 말입니다. 시인은 의로운 자를 억압하는 악인들의 횡포에 대하여 울분을 품고 하나님께서 인간사에 즉각적으로 개입해 주시기를 부르짖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간절히 하나님께 호소하고 간구할 그분은 우리의 간구에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사람들의 고통을 묵과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당하는 환난을 이길 있는 소망이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제목: 멸시한다면
성경: 시편 10 13 찬송가 177

하나님께서 세상사에 간섭하지 않으신다고 하는 악인의 사상은 바로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멸시하여 표현은 신성 모독 행위와 같이 하나님을 능욕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위에 대한 보응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러나 자녀된 자로써 거룩한 울분과 거룩한 분노가 우리 가운데 없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맞는지 점검이 필요할 것입니다. 당당하게 오늘도 하나님의 자녀로 살되 하나님을 위하여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그분은 우리의 세밀한 것까지 아버지처럼 책임지십니다.

 

제목: 나의 연약함 가운데
성경: 시편 10 14 찬송가 501

본절은 하나님의 간섭에 대한 시인의 믿음이 더욱 확고해진 모습입니다. 시인은 악인의 사상이 실로 얼마나 허무한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작음을 발견 나의 나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깨닫게 비로서 그분의 크심을 알며 감사하게 삽니다. 잘란줄알고 사는 사람에게는 절대 하나님의 존재도 하나님의 섭리가 역사 없게됩니다.

 

제목: 어떤 힘보다 강하신
성경: 시편 10 15 찬송가 32

본절은 악인의 기세등등한 (권세) 꺾어달라는 요청입니다. 악의 세력의 완전한 파멸을 요청하는 말로서 세력을 세상에서 완전히 제거해 달라는 간구이기도 합니다. 세상에서 권력이 있는 자와 관계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는데 우주의 창조주가 되시며 인류의 통치자가 되신 중의 왕이 우리의 아버지이시니 어떤 것이 두려워 있겠으며 누구도 나를 대적하지 것입니다. 나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는 하나님 한분으로 만족하며 사는 하루가 되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