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松 건강칼럼 (457)... 火病과 하는 한국인

/ 靑松 朴明潤(서울대학교 保健學博士會 고문, 대한보건협회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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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憤怒), 화병(火病), 범죄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는 미국의 소설가 존 스타인벡(John Ernst Steinbeck Jr, 1902-1968)1939년에 발표한 20세기 미국 소설문학의 대표작 중의 하나이다. 이 소설은 1940년 퓰리처상(Pulitzer Prize)을 수상하였으며, 존 포드(John Ford, 1894-1973) 감독에 의하여 영화화되었다. 존 포드는 1941년 제1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OSCAR: Academy Awards)에서 감독상을 수상하였다. 존 스타인벡은 196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존 스타인벡은 미국 캘리포니아 출생으로 독일계 아버지(John Ernst Steinbeck)와 아일랜드계 어머니(Oliver Hamilton) 사이에서 태어났다. 교사 출신의 어머니 덕분으로 어린 시절부터 책을 가까이 하는 가정환경의 영향으로 성서(聖書)를 탐독하기도 했다. 1919년에 스탠퍼드대학교에 진학해 영문학을 전공하였으나, 경제적 어려움으로 학업을 중단하였다. 이후 일간지 신문기자로 일하다 해고된 뒤에는 공사 현장에서 인부로 막노동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였다. 1929년 첫 소설 ‘황금의 잔(Cup of Gold)’이 출간되면서 문단에 데뷔하였다.

 

소설 ‘분노의 포도’는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기(大恐慌期)에 따른 아메리칸드림(American dream)의 붕괴를 현실적으로 그려낸 장편소설이다. 대자본에 의한 농업 기계화로 경작지를 잃은 오클라호마의 농민 톰 조드 일가(一家)가 캘리포니아의 비옥한 토지를 찾아 이주한다. 그러나 그들이 꿈꾸던 자유의 땅에서 기다리는 것은 착취와 기아와 질병이었다. 농장 노동자의 비참한 생활을 구약성서 중 출애급기(Exodus)의 구성을 빌려 묘사한 서사시(敍事詩)적 작품이다.

 

톰 조드 일가의 대공황기의 수난 여행과 그 생존의 드라마를 통해 경제적 곤란과 모순을 생생하게 증거 함과 동시에 그 난세(亂世)를 견디는 생명력과 형제애를 서사시적으로 그려냈다. 스타인벡은 경제도 중요하지만 정작 문제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사려 깊은 어조로 되뇌고 있다.

 

인간의 분노 폭발은 감정, 공격성, 성적 본능 등을 관장하는 감정 중추(변연계, 기저핵)와 논리, 판단 등 고차원적 사고를 관장하는 고위 중추(전두엽 등 대뇌피질)의 균형이 깨진 상태에서 나타난다. , 분노가 폭발한 상태에서는 논리적 판단을 하는 전두엽(前頭葉, frontal lobe) 기능이 짧게는 30초에서 길게는 3분 정도 멈추게 된다. 전두엽 기능이 마비되면 분노가 제어되지 않고 충동적 행동으로 나타나게 된다.

 

화가 치밀어 오른 사람은 호흡이 빨라져 가쁜 숨을 몰아쉬고, 마른 침을 삼키며, 온몸에 힘이 들어가고 근육이 경직된다. 이때 아드레날린 등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되어 15초 정도에서 최고 농도에 달하면서 분노가 폭발한다. 분노 발작 형태의 급성 스트레스 반응은 밤중에 강도를 만난 사람이 보이는 공황(恐慌) 반응과 유사한 형태를 보인다.

 

분노 발작 상황에서 언쟁을 하면 할수록 상대방의 분노 감정은 극으로 치닫는다. 이에 가능한 말싸움을 피하고 상대방을 진정시켜야 한다. 만약 분노 폭발이 극에 달한 것으로 보이면 일단 자리를 피하는 것이 좋다. 분노 발작은 대개 한 시간 이상 지속되지 않는다.

 

현대사회에서 생존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스트레스 관리와 분노 조절이 화두가 되고 있다. 이에 자신의 분노 조절이 가정과 직장생활을 하는 데 유익하기 때문에 분노 조절 프로그램이 인기가 있다. 기업에서는 직원들의 스트레스와 분노 관리가 업무 효율을 높이고 이직률도 떨어지기 때문에 사내에서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분노 조절 장애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거나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반복되면 법원 당국이 분노 조절 관리 프로그램을 이수하도록 명령한다. 치료 프로그램에는 증세에 따라 불안증, 우울감 등을 감소시키는 약물처방도 포함된다. 중독 및 정신보건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부기관에서는 분노와 충동 조절, 불안장애 등 각종 정신건강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보급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국립정신보건원에서 일본인 맞춤형 프로그램을 보급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욱’한다고 표현되는 생활형 분노가 팽배해 있으며, 불만과 갈등 조절 기능이 약하여 점점 분노 표출이 만연하는 사회로 이행되고 있다. 이에 작은 갈등에도 분노가 폭발하는 상황이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

 

한국형 분노 폭발 범죄는 평소 불만, 모멸감, 음주 상태 등이 겹치면 일어난다. 그 배경으로 빈부 양극화와 경쟁 과잉 사회 분위기에서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 상대적 박탈감, 화가 나면 술부터 찾는 음주문화, 자기가 무시당했다고 느끼는 멸시감과 열등감을 유난히 못 참는 성향 등이 작용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충동을 조절하지 못하는 충동조절장애 환자가 20093720명에서 2013년에는 4934명으로 32.6% 늘었다. 2013년 기준으로 환자의 성별, 연령별로 보면 10대 남자가 1106명으로 가장 많으며, 그리고 20대 남자 986, 30대 남자 745, 40대 남자 454, 10대 여자 366명 순으로 뒤를 이었다.

 

충동조절장애는 명백한 동기가 없는 상황에서도 과도한 행동을 반복하며, 자존감에 민감한 개인주의 사회에서 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경우 발생한다. 충동조절장애 환자 중 10대 청소년 비중이 높은 것은 핵가족화와 입시경쟁 등으로 대인관계 능력을 제대로 기르지 못한 것과 관련이 있다.

 

충동조절장애의 일종인 ‘간헐적 폭발성 장애’ 발생 과정은화가 치미는 스트레스가 발생하면, △아드레날린 등 스트레스 호르몬이 과분비되어, △상황에 걸맞지 않은 과도한 분노가 발생한다. △이성적 판단을 하는 전두엽 기능이 마비되어, △자기 행동이 미칠 결과를 예측하지 못하며, △폭력 행동의 표출과 기물 파괴를 한다. △대개 1시간 이내 분노 발작 사라지면, △후련함 또는 후회하는 감정이 생긴다.

 

화가 치솟고 못 참겠다는 순간이 되면 심호흡으로 분노를 일시적으로 가라 안쳐야 한다. 심호흡을 여러 번 천천히 하면 혈압이 떨어지고, 근육의 긴장이 풀린다. 또한 화도 누그러진다. 자신에게 분노 조절 장애가 있거나 그런 기질이 있으면 명상이나 심신요법을 통해 평소에 화를 다스리는 훈련을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해 학교 교사와 또래들, 그리고 부모에게 폭행을 가하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 감정조절을 못 해서 해마다 증가하는 ‘욱 범죄’를 줄이기 위하여 어릴 때 가정의 ‘밥상머리 교육’이 매우 중요하다. 옛날 한국인은 대가족(大家族) 안에서 엄격하게 자랐으나, 핵가족(核家族)이 늘면서 점차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놔두는 ‘자유방임(自由放任) 양육’이 늘고 있다. 자녀의 올바른 양육을 위한 밥상머리 교육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이 중요하다.

 

요즘 아이들은 휴대전화, 컴퓨터 등에 너무 익숙해 참을성이 떨어지므로 자녀가 글과 활자를 가까이 하며 차분히 생각하는 습관을 갖게 하기 위하여 책과 신문을 읽게 한다.

 

남에게 자기 마음과 감정을 이야기하는 것이 서툰 아이들은 화가 나면 대화보다 욕이나 폭력으로 분출할 기능성이 크다. 이에 부모는 자녀들과 공부나 성적 이야기만 할 게 아니라, 하루에 10분이라도 자녀가 좋아하는 것을 이해하면서 진솔한 대화를 나누도록 한다.

 

자녀가 원하는 것을 부모가 무조건 다 해주면 아이의 분노 조절 장치가 마비되어 커서도 욱하는 성격이 변하지 않게 된다. 따라서 아이가 원하더라도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가르쳐야 한다.

 

부모가 지나치게 자녀를 억압하면 화를 못 참고 욕을 하거나 폭력을 휘두르는 아이가 될 수 있다. 이에 부모는 자녀를 부정적인 말로 억압하지 말아야 한다.

 

동양의 성리학(性理學)에서는 인간의 감정을 희(, 기쁨)ㆍ로(, 화남)ㆍ애(, 슬픔)ㆍ구(, 두려움)ㆍ애(, 사랑)ㆍ오(, 혐오)ㆍ욕(, 욕망)의 일곱 가지로 설명하면서 이들을 한데 묶어 칠정(七情)이라고 한다. 성리학자들은 인간이 타고난 감정이 선하거나 악할 수 있기에 어릴 때부터 감정을 다스리는 훈련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화병(火病)은 우리나라 민간에서 ‘분노가 쌓여 생긴 병’이라는 의미로 통용된다. , 화병은 화가 나고 화가 쳐 오르지만 화를 삼키고 화를 내지 못할 때 화병이 생긴다. 정신건강의학에서 화병은 명치에 뭔가 걸린 느낌 등 신체 증상을 동반하는 우울증(憂鬱症)의 일종으로 분노와 우울을 억누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정신 질환이다.

 

화병은 질병의 발생이나 증상의 출현에 우리나라 특유의 문화적인 배경이 영향을 주는 것으로 간주되어 미국의 정신의학회에도 ‘hwa-byung’이라는 우리말 그대로 등재되어 있다. 매년 우리나라 국민 약 116천여명이 화병으로 진단을 받고 있으며, 이중 여성의 비율이 전체의 61%를 차지하고, 40-50대의 중년층이 가장 많다. 이는 여성들이 화를 내지 못하게 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이다.

 

화병은 일반적인 우울증과 마찬가지로 스트레스가 원인이며, 개인이 감당하기 힘든 스트레스로 인해 세로토닌 등 뇌의 신경회로에서 신경전달물질에 이상이 생기고, 이것이 우울감, 불면, 식욕저하, 의욕상실 등의 증상으로 나타난다.

 

또한 화병의 특징적인 신체 증상으로 특별한 이유 없이 갑작스럽게 죽을 것 같은 공포를 느끼기도 하고, 숨쉬는 것이 답답하고 가슴이 뛰는 증상이 생기기도 한다. 몸 여기저기에 통증이 지속되는 경우도 있다. 우울감이 심해지면 자살에 대한 생각이 증가하여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게 될 위험도 있다.

 

화병 치료는 항우울제(抗憂鬱劑)가 주로 사용되며, 뇌세포의 연결 부위인 시냅스에서 세로토닌의 재흡수를 차단시키는 약물들이 선택되는 경우가 많다. 세로토닌 외에도 노르에피네프린이나 도파민 등에 작용하는 항우울제도 치료 효과가 우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화병 예방을 위하여 규칙적인 생활습관, 운동 등이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력을 길러줄 수 있다. 또한 취미생활도 스트레스 관리에 도움이 된다. 부정적인 감정을 억누르기만 하는 것은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으므로 가족이나 친구와 대화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적절히 포현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식생활에서 알코올, 카페인 등 중추신경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약물은 피하는 것이 원칙이다. 우울감을 해소하기 위해 음주를 하는 경우가 흔히 있으나, 음주가 계속될 경우 오히려 예후가 나빠질 수 있으므로 주의하여야 한다.

 

우리는 화날 때 거친 말 표현이 익숙해 있지만, 미국에선 언어폭력을 심각하게 생각한다. 영국인들은 감정을 다스리고 어떤 경우라도 차분하게 행동하도록 교육을 받는다. 그리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냉정을 지키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우리나라 사람은 ‘감정 절제’보다 ‘감정 무절제’에 기울어 있다. 국민 65%가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서 거주하지만 이웃을 위한 배려는 너무나 부족하다. 이에 어릴 때부터 감정 절제를 가르쳐야 ‘욱’해서 일으키는 사회문제가 줄어들 수 있다. 가정폭력, 학교폭력, 사회폭력 예방을 위해 가정, 학교, 그리고 사회 전체가 노력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