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松 건강칼럼 (451)... 단팥 人生 이야기

박명윤(보건학박사,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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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팥빵 이야기

최근에 아내와 함께 일본 영화 : 단팥 인생 이야기 우리 동네에 있는 CGV 영화관에서 관람을 하였다. 관객은 우리 부부를 포함해 10여명에 불과했다. '이란 일본 전통 단팥빵(sweet red bean paste) 도라야키안에 들어가는 팥소를 뜻한다. 도리야키는 납작하게 구운 반죽 사이에 팥소를 넣어 만든다. 필자는 단팥빵 즐겨 먹으며, 특히 慶州 황남빵 좋아한다.

영화는 일본 감독 칸영화제(Cannes Film Festival) 최다 진출을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최신작으로 2015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개막작으로 선정돼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나오미 감독은 28세에 최연소로 칸영화제의 신인상격인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했으며, 심사위원대상도 수상한 일본 예술영화의 얼굴이다.

: 단팥 인생 이야기 할머니가 정성스레 만든 달콤한 단팥처럼 우리 마음에 위안을 주고 삶을 살아갈 용기를 주는 힐링 영화이다. 나오미 감독은 영화에서도 말을 줄이고 하늘, 햇볕, 바람소리, 초목 등을 통해 인물들의 희비와 인생의 맛을 전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살아갈 의미가 있는 존재들이므로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한다.

영화의 주연은 일본을 대표하는 국민 여배우 키키 키린(도쿠에役) 도라야키 가게의 아르바이트생으로 먹으면 잊을 없는 맛의 단팥소를 만든다. 나마세 마사토시(센타로役) 무뚝뚝한 도라야키 가게 주인으로 도쿠에 할머니를 통해 삶의 의지를 되찾는다. 키키 키린의 실제 손녀인 우치다 카라(와카나役) 가게의 단골인 중학생 소녀로 도쿠에 할머니와 친구처럼 지낸다.

영화는 일본 전통 단팥빵 도라야키 파는 가게가 배경이며, 가게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소소하게 마음을 울린다. 거장 가와세 나오미가 작가 도리안 스케가와의 원작을 섬세하고 아름답게 연출하여 재미와 감동을 고루 갖춘 수작(秀作)이라는 평을 일본에서 받아 개봉 당시 박스오피스를 강타했다고 한다.  

영화의 초반부는 흐뭇한 웃음이 흐른다. 센차로와 두쿠에가 도라야키 가게에서 함께 일하면서 정의할 없는 관계가 형성된다. 계약서상 가게 사장과 아르바이트 직원이지만, 단팥소 제조에서는 두쿠에가 스승이고 센타로는 견습생이다. 공식적인 지위와 실질적인 위치가 혼재하면서 사람은 동지적, 동업자적 관계를 형성한다.

도쿠에와 센타로 사람이 합작하여 만든 단팥빵 도라야키는 고객들의 반응이 아주 좋아 줄을 서서 기다리다 구입하여 먹는다. 하지만 센타로에게 정신적으로 의지하던 불우 청소년 와카나 때문에 도쿠에가 한센병(癩病) 환자 출신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도라야키 가게에는 손님이 끊긴다. 영화는 씁쓸한 결말로 향한다.

영화는 과거사로 고민하는 사람에게 희망을 비춰준다. , 폭력사건에 연류 되어 평생 빚을 지고 있는 센차로는 도쿠에의 모습을 보고 삶의 의욕을 깨운다. 한편 60 이상 한센병으로 인하여 사회와 격리되어 살아온 도쿠에는 생의 끝자락에서 일자리를 구하고 싶었던 꿈을 센타로에 의지해 이룬다.

도쿠에가 세상을 떠난 센타로는 달콤한 단팥소에 소금을 넣어 도라야키를 만들어 판매한다. 인생은 달면서도 짜기도 복합적인 것을 깨달음을 도쿠에의 인생 이야기를 통해 알게 것이다.

빵의 기원은 정확하지는 않으나 서기전 3000년경 바빌로니아에서 시작되었으며, 효모를 넣은 희고 부드러운 빵은 서기전 2000년경에 이집트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조선 말엽에 비밀리에 입국한 선교사들이 빵을 만들어 먹은 것으로 추측한다. 1884 러통상(通商)조약 체결 이후에 러시아인 웨베르 공사의 처제인 손택(孫澤) 정동구락부를 개설하고 빵을 선보였다.

한일합방 후에는 일본인 제빵 기술자들에 의하여 제과점이 생겼으며, 1942년에는 전국에 40 개소의 제과점이 있었다. 그러나 시기에는 밀가루, 설탕, 등의 원료가 부족하여 빵의 대중화가 어려웠다. 815해방과 북한의 625남침전쟁을 겪으면서 원조물자로 공급된 밀가루, 분유, 설탕 등으로 빵이 급속도로 대중화되기 시작하였다

서양 사람들이 주식으로 먹는 빵은 일반적으로 밀가루에 물과 소금, 그리고 효모(yeast) 넣고 반죽을 한다. 빵에 사용하는 설탕이 10% 이하이면 식빵류, 20-30% 수준이면 과자빵류, 그리고 여기에 유지가 많이 들어가면 단과자빵류 등으로 나누어지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제품에는 식빵류(우유식빵, 건포도식빵, 옥수수빵, 버터식빵 ), 과자빵류(팥소빵크림빵소보로 스위트 , 스위트 , 데니쉬 페이스트리 ), 조리빵류(햄버거빵핫도그빵피자파이빵 ), 기타 빵류(찐빵, 도넛, 야채빵 ) 등이 있다.

서울의 백화점이 지방의 단팥빵 매장을 유치하기 위해 삼고초려(三顧草廬) 했다고 한다. 이는 경기 불황과 소비 침체 등으로 백화점 매출이 감소하자 골목상권의 유명 빵집을 매장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백화점 고객들이 줄을 서서 들어가는 곳은 70 역사의 전북 군산의 빵집 서울 분점인 단팥빵 매장이다.

한편 해외 시장에 먼저 출시된 단팥빵이 국내 시장으로 유턴 고객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파리바게뜨 프랑스 파리 매장에서 먼저 선보인 단팥크림 코팡 연일 매진 사례를 기록할 만큼 현지에서 인기 제품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지난 8 출시한 단팥크림 코팡은 출시 만에 100만개 넘게 팔렸다.

파리바게뜨 관계자에 따르면 한국인 여행객들이 파리에 있는 매장에서 단팥크림 코팡을 맛보고 페이스북, 트위터 SNS 글을 올리면서 소비자들이 한국에서도 출시할 것을 요청하여 국내에도 제품을 내놓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빵의 고장인 프랑스에서 인정받은 한국의 제품이라는 점에서 사람들이 보다 관심을 보이고 있다.

단팥빵또는팥앙금빵이란 재료로 팥과 설탕을 앙금을 넣어 만든 빵이다. 단팥빵은 일본에서 처음 만들어졌으며, 1874 이바라키현 출신의 기무라 부자(父子) 판매한 것을 시초로 본다. 단팥빵을 일본어로 안판이라고 부른다. 앙금을 속에 넣어 만든다는 점에서 경주의 황남빵과 비슷하다.

기무라가 단팥빵을 만든 경위는 다음과 같다. 일본 메이지 시대 왕실(王室) 주방에서 일하던 기무라 야스베는 독립해 도쿄 직업훈련소에 취직했다. 그곳에서 나가사키의 네덜란드 저택에서 빵을 굽던 조리사 우메키치를 만나 빵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빵에 흥미를 느낀 기무라는 직업훈련소 일을 그만두고 동양풍과 서양풍을 퓨전한 빵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기무라는 1869 도쿄에 제과점을 창업하지만, 1873 화재로 제과점이 전소되었다. 이듬해 1874 도쿄 긴자에 기루라야(木村屋)이라는 이름으로 아들과 함께 제과점을 낸다. 기무라는 이스트(yeast) 익숙하지 않은 일본인들의 입맛을 고려해 효모(酵母) 대신 술누룩의 약한 발효력(醱酵力) 발효 시간과 설탕량을 늘리는 것으로 보완했다. 그리고 1874 기무라는 단팥빵을 만들어 도쿄 긴자에서 팔기 시작하였다

단팥빵은 하루에 15천개 가량 판매되면서 유명해 졌다. 1875년에는 궁내(宮內) 식탁에 단팥빵이 오르고, 왕비가 맛을 좋아해 꾸준히 납품했다. 1884 기무라는 단팥빵 중앙을 눌러 안에 소금에 절인 벚꽃 꽃잎을 얹어 납품용과 시판용을 구분했다. 1897년부터는 시판용 단팥빵에도 꽃잎을 얹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현재까지도 단팥빵의 중양은 눌린 모양이 된다.

명실상부하게 경주를 대표하는 빵인 황남빵 유래는 지금부터 76년전인 193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열악한 환경으로 가게의 상호도 없이 빵을 만들어 팔았고, 동네 주민들이 빵을 즐겨 사먹으면서 간판도 없는 가게에 동네 이름을 붙여 황남빵이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필자가 1939년에 출생하였으므로 황남빵과 해를 같이 하고 있는 셈이며, 또한 황남빵과 연관된 에피소드가 있다. 필자는 1970 10월에 결혼을 하고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당시 제주도는 최고의 신혼여행지로 꼽혔다.

1971 1월에 당시 국제연합아동기금(UNICEF) 주한대표(Mr. C. Kondapi) 함께 UNICEF 지원사업을 점검하기 위하여 지방출장을 가게 되었으며, 신혼인 아내도 동행하게 되었다. 1970년대는 외국인 외교관이 머물 있는 호텔이 전국적으로 되지 않았다. 수안보관광호텔과 대전 유성관광호텔에서 유숙한 경주 불국사관광호텔에서 묵게 되었다.

호텔에서 저녁 식사 우리 부부는 경주 시내 구경도 하고 소문을 들어 알고 있던 황남빵 사기 위해 황남동으로 갔다. 허름한 빵가게에서 주인 최영화씨가 화덕에 빵을 굽고 있었다. UNICEF 직원들, 친지들에게 선물로 나누어 황남빵을 승용차에 가득 싣고 숙소인 불국사관광호텔로 가는 길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우리 부부가 외제 대형승용차가 눈이 쌓인 빙판 언덕길을 불국사 방향으로 올라가는데 택시 대가 빙판길을 내려오면서 우리 승용차와 정면충돌을 했다. 당시 택시는 소형차여서 완전히 부서지고 택시기사도 부상을 당했다. 한편 우리 승용차는 대형이여서 범퍼와 엔진에 손상이 생겼지만, 운전기사와 우리 부부는 안전했다. 사고로 승용차 운행이 어려워서 경주에서 경상도 지역 출장은 UNICEF에서 지원한 자동차를 이용하였다. 당시 UNICEF에서 국내 보건소 등에 차량(독일 폭스바겐, 영국 랜드로버) 수백대를 지원하였다.  

 

조그만 단팥빵인 황남빵은 1994 경주시 향토전통음식으로 지정되었으며, 1998 경주 세계문화엑스포에서는 공식지정식품이 있다. 황남빵 제조 공법은 특허를 받았으며, 천안 호두과자와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빵으로 자리 잡고 있다.

경주 토박이인 최영화 씨가 처음 개발한 황남빵은 물과 밀가루의 비율을 엄격히 지켜 빚은 반죽에 팥소를 넣어 둥글납작하게 반죽을 반죽덩어리 위에 빗살무늬 도장을 눌러 찍어 멋을 내고, 철판위에 구웠다. 맛있게 익은 황남빵은 인공 감미료와 방부제를 사용하지 않아 부드럽고 고풍스러운 맛을 선사한다.

오랜 역사를 지켜 오는 황남빵의 독특한 맛은 고유의 향이 살아 있고 말랑말랑 하면서도 느끼하지 않은 팥소의 담백함에 있다. 또한 빵껍질을 만들기 위한 밀가루 반죽은 재료의 배합과 반죽의 농도가 맞아야 고유의 맛이 나기 때문에 저울을 사용해 엄격하게 비율을 지키고 있다. 황남빵을 개발한 최영화(1917-1995)翁이 사망한 제과점을 후손들이 이어가고 있다. 황남빵 가격은 1 800원이다.

/ 靑松 朴明潤(서울대학교 保健學博士會 고문, 대한보건협회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