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인간의 가치관

성현교회 박형휘 목사(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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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젼 CF 절반이 돈에 대한 이야기이다. 돈은 현대인의 가치관과 무관치 않다. 현대인들은 돈을 많이 가지는 것이 행복의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돈을 번다는 것은 신나고 재미있는 일이다. 돈이라면 목숨까지도 건다. 어떤 고생도 불편도 마다하지 않는다. 반대로 돈이 안되는 일이라면 쉽게 버린다.

 

TV 절반이 경제문재를 주로 다룬다.? 만큼 돈은 현대인과 깊은 관련이있다. 어느덧 인간사의 최고의 목표와 가치로 자리 잡고 있다. 나아가 생존의 이유인듯 싶다. 그뿐인가 유전 무죄 무전유죄이다. 돈으로 죄까지도 유무를 결정할 있다.

 

부자로 산다는 부자가 된다는 , 그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부자가 되면 웬만한 불편은 감내하고 수고로운 짐들이 힘으로 전환 되곤한다. 요즈음 청소년들의 꿈은 ' 많이 버는 것이다' 그들에게 방법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물론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다.시대적 풍조가 그렇게 흐른다. 뜻이다. 의과대학을 가도 돈이 안되는 학과는 기피한다. 그래서 요즈음 명의나 심의가 드문 것은 아닐까?

 

도대체 돈이 뭐길래 이토록 사람을 흥분 시키는가? 사람들은 돈이 전능하다고 믿는 같다. 그러나 세상에는 돈으로 없는 일이 많다. 그래도 현대인들은 돈이 생명이요, 힘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논리는 허구이며 허상이다. 마귀가 속이는 것이요 스스로에게 속는 것이다. 인간의 진정한 가치는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에 있다. 얼마나 소유했느냐가 인간의 가치가 아니라, 무엇 때문에 보람을 느끼느냐에 있다.

 

기독교적 삶의 기준은 바름과 그름에 있다. 얼마나 부자로 먹고 사느냐에 집착하지 말고 얼마나 바르게 사느냐에 욕심을 내어야한다. 성경적 관점에서 잘살고 바르게 사는 기준이란 바로 나눔이다. 부자라고 반드시 부유한 것은 아니다. 부자는 돈으로 가능하나 부요함은 나눔에 있다. 쾌락은 돈으로 있지만, 기쁨은 나눔으로 가능하다. 재미는 돈으로 얻을 있지만 행복은 나눔으로 가능하다. 편리함은 돈으로 해결 되지만 평안함은 나눔으로 소유할 있다.

 

그러나 나눔이란 자기희생과 수고 없이는 불가능하다. 내가 포기한 만큼 베풂이 가능하다. 십자가 없는 면류관이 없고 죽음 없이 부활이 없듯이 나눔이 없이는 축복도 성숙도 상급도 없다.

 

과부의 두렙돈을 기억하자. 전부를 드린 과부는 가난했지만 진정한 부자였다. 아나니야, 삽비라는 부자였지만 가난한 자였다. 은혜란 열리는 것이요. 포기하는 것이다. 내려놓은 것이다. 나누는 것이다. 베푸는 것이다. 섬기는 것이다. 당신은 부유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