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앞에 나는...

 

금낭화01.jpg

 

 

당신 앞에 나는

송이 작은 꽃이고 싶습니다.

 

새싹 물오르는

나른한 오후쯤 되면

살포시 열고 나온 수습은 향기 되어

하늘 향해 가슴 열어 호흡하는

당신 가슴 깊은 속까지

숨어들 있고파서입니다.

 

당신 앞에 나는

속이 덩치 고목이고 싶습니다.

 

소낙비 장대 되어 퍼붓는 여름을 거닐다가

피할 없어 헤메이는 당신을

당신도 모르오게

품에 꼬옥 품어 누구도 없게

감싸 안을 있고파서입니다.

 

당신 앞에 나는

한마디 호흡에도 휘청이는 갈대이고 싶습니다.

 

인생의 황혼에 처절히 버릴 없어

가슴을 갈갈이 찢을

당신의 휘청이는 손길과 호흡에

함께 흔들거리며

인생을 재채기하고 싶어서입니다.

 

당신 앞에 나는

없는 그루 나무이고 싶습니다.

 

사계를 돌고 돌며 넉넉히 쌓아온 연륜들이

삭풍에 구둘장 차가와 고민할 당신 위해

톱질하는 당신 손마디에 붙잡힌 되어

아프단 비명 한마디 없이 쓰러져

속속들이 속마음을

장작 되어 함께 불태우고 싶어서입니다.

 

정기환 조약돌의 속삭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