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순목사 부활절 한기총 연합예배 설교

여의도 순복음교회 내가 믿나이다

요한복음 20:2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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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마다 특성이 있습니다. 종교를 시작한 교주가 있고, 경전이 있습니다. 그리고 경전을 기반으로 교리가 있습니다. 기독교의 교주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경전은 성경인데 구약 39권과 신약 27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1,600여년동안 40여명의 사람들이 기록한 방대한 경전입니다. 66권에 달하는 방대한 책인 성경의 내용을 한마디로 설명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강조하는 하나의 주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구약성경은 장차 구원자로 오실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하고, 신약성경은 땅에 구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하고 그의 생애, 고난,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승천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장차 심판주로 재림하실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빼버리면 성경은 한낱 교양서적이나 역사책이 되고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기독교가 예수 그리스도를 제외하고 정치, 경제, 문화, 교육, 복지, 과학을 강조하고 가르친다면 기독교는 하등종교의 틀을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 없는 기독교는 기독교가 아닙니다. 예수 믿지 않고 다른 것을 믿는 기독교인은 형식적 기독교인일 구원받은 기독교인은 없습니다. 2천년 전이나 오늘 그리고 수만년이 지난 다음세대에도 기독교는 예수를 믿는 종교이며, 믿어야 하는 종교이며, 믿지 않으면 기독교인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믿는 예수는 어떤 분입니까?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사실을 믿는 사람만 죄사함 받고 구원 받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믿으면 영생을 얻고 믿지 않으면 심판 받고 지옥에 들어가게 된다라고. 중요한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십자가에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이 삼일만에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부활을 믿는 종교입니다. 기독교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20년이나 30 교회를 드나들었더라도, 교회 안에서 여러가지 직분을 맡고 봉사했더라도, 3 4 기독교가정에서 성장했더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예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살아나신 부활을 믿지 않는다면 그는 기독교인도 아니고 예수님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던 당시에도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진짜로 죽은 것이 아니라 가사상태에 있다가 깨어났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가사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몰래 훔쳐다가 감춘 살아났다고 거짓말 했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유기설). 그런가하면 예수님을 따르던 광신도들이 환상을 보고 예수가 살아났다는 헛소문을 퍼트렸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환상설).

 

그러나 우리가 믿는 성경이 증언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장사지난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15:4) 게바(베드로)에게 보이시고 열두제자에게 5백여 형제에게 야고보에게 모든 사도에게 만삭되지 못하여 난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다(15:5~8) 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가운데 있을 것이요(15:17)라고 했고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했습니다(15:52)

 

기독교신앙에서 부활이 중요합니까?

1. 소망을 주기 때문입니다.

죽으면 끝이다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꿈도 없고 희망도 없고 비전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기 때문입니다. 오늘 죽으면 인생이 끝나는 사람에게 무슨 희망이 있고 꿈이 있고 비전이 있겠습니까? 그런 사람들은 절망하거나 포기하거나 좌절할 것입니다.

 

그러나 죽음은 끝이 아니다. 죽음은 인생의 종점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이다. 순간과 찰나에 종지부를 찍고 영원한 세계를 향해 거보를 내딛는 시작이다. 죽음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죽음 뒤엔 영원한 부활이 있다. 예수님의 부활이 그것을 증명한다라고 믿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절망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뒤로 물러서지 않습니다. 실패 때문에 주저앉지 않습니다. 죽음도 겁내지 않습니다. 죽어도 다시 산다는 부활 소망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대 로마 황제 가운데 기독교인들을 가장 간악하게 박해한 사람은 네로였습니다. 원형극장에서 훈련된 검투사와 기독교인을 검투로 겨루게 살해했습니다. 굶주린 맹수에게 찢겨 죽게 했습니다. 타오르는 불더미에 태워 죽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칼에 찔려죽고 맹수에게 찢겨죽고 장작불에 죽는 기독교인들이 절규하거나 발악하지 않고 하늘을 향해 손들고 기도하거나 찬송을 불렀습니다. 네로가 보고 싶은 장면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죽어가는 기독교인들이 살려달라고 소리치고 죽지 않기 위해 발악하는 그런 모습을 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기도하고 찬송하는 모습을 보는 네로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정신병자가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죽어도 다시 산다는 부활소망이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의사의 얘기를 들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응급환자가 들어오는 응급실은 야전병원과 같답니다. 어느 저녁, 교통사고를 당한 대학생이 구급차에 실려 병원응급실로 들어왔습니다. 부상이 심해 의식을 잃고 있었습니다. 연락을 받은 가족들이 쫒아왔습니다. 어머니가 대성통곡을 합니다. 가족들도 오열합니다. 아들아 떠봐라, 엄마다. 죽으면 . 죽으면 엄마도 죽어! 7시간 수술이 끝나고 중환자실로 옮겼습니다. 의식이 돌아온 아들이 실낱같은 눈을 뜨고 어머니에게 ... 엄마, 살려줘였답니다. 이틀 동안 사경을 헤메다 젊은이는 숨을 거뒀습니다.

 

당직의사의 말이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저희 병원은 서울에서 최고를 자랑하는 대학병원입니다. 그런데 젊은이를 살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그의 가족도 부모도 매한가지 였습니다. 사람은 낳고 키울 수는 있지만 생명의 주인은 아닙니다.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창세기 2:7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했습니다. 생기는 히브리어로 루아흐입니다. 뜻은 바람, 기운, 생기, 호흡, 성령 넓은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흙으로 만들고 생명을 불어넣어주신 분이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생명은 맘대로 못합니다.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나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내가 나를 살리지 못합니다. 현대 과학이나 의학이 생명을 연장하는 데는 기여하고 있지만 생명을 살리는 일은 못합니다. 부활신앙은 우리에게 소망을 줍니다. 영적 에너지를 공급해 줍니다.

 

2. 부활신앙은 민족정신사의 댐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시대는 희망이 실종되고 절망 바이러스가 독버섯처럼 퍼지고 있습니다. 안된다, 못한다, 없다, 끝장이다, 출구가 없다, 추락한다 라는 용어들이 춤을 추고 패배주의가 도처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국교회는 부활신앙을 회복해야 합니다. 있다, 된다, 가능하다 라는 용어들이 키워드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내가 믿는 예수를 누구에게 믿으라고 말할 있습니까? 내가 바로 살지 못하면서 어떻게 누구에게 바로 살라고 말할 있습니까? 내가 입도 열지 못하는 예수님의 부활을 어떻게 전할 있습니까?

 

교회가 가는 곳에 국가가 간다 말이 있습니다. 저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우리 시대는 상처 받은 사람들, 아파하는 사람들, 고통 받는 사람들, 서럽고, 슬프고, 괴롭고, 외로운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하나님과 성경 없이 세상을 바르게 통치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했고, 3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기독교가 정부의 가장 좋은 친구가 있는 이유는 기독교가 사람의 마음을 바꿀 있는 종교이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22 클리브랜드 대통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가장 순수한 애국심과 최고의 국민정신을 갖게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교회 때문에 나라가 바로 되고 우리 때문에 우리 시대가 행복하고 살기 좋은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반대가 되면 절대로 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확신합시다. 예수님의 부활을 고백하고 선포합시다. 부활신앙 위에 가정을 세우고 교회를 세우고 나라는 세워나갑시다.

 

본문 요한복음 20:24~29 말씀으로 결론을 찾겠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였던 도마는 의심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고 예수님을 직접 만났다는 다른 제자들의 말을 그는 믿지 못했습니다. 내가 눈으로 직접 보기 전에는 믿을 없다. 손으로 직접 만져보기 전엔 믿을 없다 믿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직접 찾아오셨습니다. 도마야 눈으로 보아라 손으로 만져 보아라 그리고 의심하지 말고 믿어라 말씀하셨습니다.

 

주여! 내가 믿나이다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너는 나를 보았기 때문이 믿느냐 나를 직접 보지 못하고 믿는 사람들이 복이 있도다중요한 것은 나의 고백입니다. 우리 시간 여기서 함께 고백하십시다. 주여, 내가 믿나이다.” “주님의 부활을 믿습니다.” “성도의 부활도 믿습니다.” “나의 부활도 믿습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