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은?조충만 목사 담안선교 이야기

주사랑 담안 선교회에 후원의 손길이 이어져 담안선교가 지속되기를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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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 산골 오지에 자리 잡은 주사랑 자비량 담안 선교회는역지사지라는 고사성어를 목회에 접목시켜 현재 담안의 수용중인 무기수 형제들과 출소자 형제들의 내면의 어려움과 형제들이 겪는 아픔 좌절 고통을 함께 공감해주고 사건이 발생했을 현장에 동참하여 가족의 연고가 없는 형제들의 수사과정이나 재판과정에 자신이 지은죄보다 억울하게 죄명이 추가되는 경향이 있기에 복음으로 지어진 주사랑 자비량 담안 선교회가 형제들의 가족이 되어 사건과 동시에 재판진행 과정을 파악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심과 희생정신에 바탕을 기준으로 하여 수감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무기수와 장기수 사역의 출소자 공동체이다.

 

저희 형제들은 교도소 안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15년의 교정사역중 형제들이 장기수였기에 선교회 안에 눈에 보이는 현상은 대부분 미약하다. 교도소 안에는 장기수와 단기수가 나누어져 있는데 저희 형제들은 대부분 20년에 25년의 형을 받아 장기수로써 생활하므로 대다수 분의 형제들이 10-20년형을 받고 출소하여 오랫동안 사회의 빛을 보지 못한 결과 복음으로 단단히 마음을 다잡고 말씀과 기도로 힘을 얻어 자신들의 세상으로 나간다.

 

잠시잠간 다녀가는 곳이라도 소통의 역할을 있는 곳으로서의 사명을 다하고 있다. 무엇보다 담안에는 자신을 비관하고 자기가 받은 형량에 순복하지 못해 자신의 목숨을 안개와 같이 끊으려 하는 형제들이 보이지 않게 많이 있다. 형량으로 가족이 모두 떠나고 가장 먼저 봉착하는 것이 경제적인 어려움이다. 담안도 작은 사회요, 공동체이다 보니 가족이 떠나버린 무기수 형제는 자신이 저지른 값을 치루는데 있어서 심적 갈등과 외부의 차단으로 고립되어 이상 삶을 이어나 없게 된다.

 

최소한의 소액 볼펜 자루 구입할 형편이 되지 못하다보니(참고:볼펜한자루 200) 볼펜 자루 인생도 되지 못하는 인생의 참담함에 스스로 인생의 막을 내리려 목숨을 끊으려는 형제들이 있기에 저희 선교회는 한생명 복음으로 살리는데 의의를 두어 오늘도 최선을 다해 달려가고 있다.

 

2014 10 24 목포극동방송에 출현하여 담안 병동의 형제들의 딱한 사연을 올리기도 하였다. 그대로 오랜 수용생활로 병을 얻고 혹은 자살을 시도해 후유증으로 몸과 마음이 피페 해져있는 형제들의 몸이 말을 해주고 있다.

 

예를 들어 형제의 이야기를 하자면 오랜 수용생활과 가족이 등을 돌리고 외부화의 소식이 차단되어 극심한 맘고생으로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오신 형제가 어느 뇌종양으로 쓰러져 담밖 사병원으로 옮겨야 하는 실정인데 가족과의 연락이 닿지 않아 법무부가 시간을 지체하는 바람에 수술시간을 놓쳐 수술이 잘못되어 합병증이 발생하고 수술 후에도 종양이 계속 커져 약으로 종양이 커지는 것을 막고 있는 실정이다.

 

수술시간 지연으로 수술이 잘못되고 합병증이 15가지나 생기면서 하루에도 3~4번씩 쓰러져도 회부병원의 치료를 받지 못해 애간장을 태우던 시기에 저희 선교회와 연락이 닿아 보호자역할을 하였다. 보호자는 법적으로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외부인은 보호자의 효력을 가질 수가 없다고 교도소 관계자들은 계속해서 거절하였지만 저희 부부는 형제님의 딱한 처지를 외면할 수가 없어서 복귀과, 총무과, 보안과를 다니며 형제의 ,대변까지 받겠다는 약속을 하고 형제의 보호자가 되었다.

 

다른 형제는 형량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 생명의 끈을 놓고자 의무과에 아파서 마다 주사바늘을 훔쳐내어 600개를 모은 잘게 잘라서 먹은 결과 바늘이 몸속을 타고 돌아다니며 호흡을 방해하고 혈관을 타고 중요부위에 영향을 주어 생명이 위독해지자 법무부에서 서울대병원을 통해 다섯 번의 대수술 끝에 기도를 잘라내고 위를 55센치 잘라내어 생명은 건질 수가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100여개의 바늘이 중요한 부분을 타고 자극을 주어 몸에 능을 방해하고 허리척추를 건드려 40대임에도 불구하고 80대의 몸을 가지고 수용생활을 하고 있으며, 기도를 잘라내어 교도소안에서 주는 음식을 먹지 못하고 외부에서 사비로 구입하는 죽만으로 목숨을 유지하는 실정에 있다. 그럼에도 형제는 전북대 법학과 교수가 인정하는 예수님의 피로 거듭난 형제이다.

 

지금 순간까지도 담안에서 새로 입소한 수용자들이 형량을 감당 못해 절망하고 생명을 놓으려 때마다 수용자에게 자신의 배와 목에 수술부위를 보여주며,나도 살았다 제발 목숨만은 버리지 마십시오라며 자기가 만난 예수님을 전하여 수용자를 변화시키고 수용자의 삶에 은혜를 끼치며 오늘도 복음 때문에 같은 죄인 때문에 십자가에서 피를 쏟기까지 자신을 사랑하신 예수님 때문에 살고 있다면서 환하게 자신의 환경을 바라보지 않고 십자가를 바라보며, 환경도 고통도 이겨내며 웃으며 살아기고 있다.

 

형제는 담안의 음식을 먹지 못하고 사제 죽을 먹기 때문에 30만원 상당의 비용이 필요한 것이다. 일일이 형제들의 사연을 공개할 수가 없지만 교도소안에는 아무도 자신을 찾지 않기에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며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친구들이 많이 있다. 친구들의 열악한 환경을 알리기 위해 극동방송에 출현을 하였다. 긴병에 효자 없듯이 사고가 나고 담안에 갇히게 되면, 길면 1 내지 짧으면 3개월 정도 돌봐주는 듯하다가 세월이 한해두해 흐르다 보면 찾아오는 사람이 없을뿐더러 외부와 차단됨으로 극단적인 생각들을 하게 된다.

 

담안도 작은 사회나 다름없는 곳이기에 자신에게 필요한 생활용품을 자기 손으로 직접구입을 해서 사용해야 한다. 매주 방안 사람들과 생활용품을 공동구매를 하는데 통장에 잔고가 없는 형제는 형제들 사이에서 왕따를 당하고 필요한 용품을 사지 못하니 여유로운 사람들의 종이 되기도 하고 심지어는 성폭행까지 당해도 아무 말을 없는 그런 상황의 장소가 바로 담안이다.

 

그곳은 사회적으로 명성 있는 자도 수감되어도 돈이 없으면 거름벵이 이상의 취급을 받으며 악명 높은 범죄자 일지라도 돈이 있으면, 대접에 막강한 힘이 주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가족들이 떠나고 세상이 외면해 버리는 형제들의 고충과 필요를 주사랑 자비량 담안 선교회가 함께 동참하는 맘으로 선교회의 조충만 목사께서 건설현장에서 수고와 헌신으로 가족과 형제들의 필요와 어려움을 해결하고 계시다보니, 선교회나 담안이나 서로 풍요롭지 못한 삶을 감사로 받아들이고 있다.

 

저희 선교회는 15 연천에서 100평정도의 사택과 교회를 건축했으나, 과도한 채무로 교회와 사택을 정리한 상가건물을 얻어 번의 개척과 선교회를 운영하였으나, 교회와 선교회가 성도와 후원자가 없이 자비량으로 운영되다 보니 세를 내지 못한 결과 문을 닫기 이르렀을 서울지역 허름한 동네에 쓰러져가는 흉가를 전세 200백만원에 얻어, 그곳에 판자로 교회를 지어 나무 십자가를 세우고 12 남짖한 곳에서 당시 출소자 형제와, 정신 분열증을 앓고 있는 형제와 간경화로 1년도 못살 거라고 사형선고를 받은 여집사와(1 정도 밖에 사실 없으시다는 여집사는 우리와 10년을 사시다가 작년에 소천을 하셨다),

 

판자촌 목회를 2009년도에 시작 되었으며, 2014 625 개발지로 선정되었다며 집을 비워달라고 하셔서 판자촌교회를 두고, 무안으로 이전 건축을 하였다. 하나님의 은혜로 조충만 목사 혼자의 힘으로 손수 33평형의 조립식 교회를 건축하던 체력이 소진하여 번의 쓰러짐을 경험하였지만, 하나님께서 은혜를 쏟아 부어 주셔서 무안 유지의 도움의 손길을 통하여 보약 2재를 드시고 다시 회복을 하셨다.

 

무안 산골오지에 들어와 교회를 건축하는 과정에서 동네 어르신들에게 교회 짓는다는 말을 수가 없었다. 유교, 불교가 강한 이들에게 교회를 짓는다고 했으면 여러 가지 문제에 봉착했을 거지만 하나님께서 입을 열게 하지 않으셨던 이유 또한 때가 있었기에 그러시지 않았나 싶다. 교회가 완성 되어지고 십자가를 세우는 , 어르신들을 찾아뵈었다. 여기는 집이 아니라 교회라고 말씀 드렸더니 전부 얼굴 표정이 굳어지셨다.

 

그래서 단호하게오늘 십자가를 세울 것인데 십자가 올리는 것에 대해서 동네 어르신 누구도 어느 누구라도 반대 하신다면 알아서 하십시오 오늘부터 이곳 어르신들과 단하마디도 하지 않고 살테니까 그렇게 아세요라고 했더니 모두가 함구하였다. 그날 십자가가 세워지고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다. 동네 어르신들이 누구하나 없이 봉투를 가져오고 헌물을 가져다주시며 한마디도 안하시고 돌아가셨다. 저는 돈을 아주 값지게 사용하였다.

 

저희는 이렇게 선교회를 운영할 수가 있었다. 이곳에서 주변을 돌아보니 어려운 어르신들이 매우 많았다. 이번 겨울을 그분들을 위해 사랑하는 지인들과 함께 김장 150포기를 남편 조충만 목사와 단둘이 해서 나누었다.

 

바람에 날아간 독거 노인댁 대문도 만들어 달아드리고, 김장도해서 나누어 드리고, 엄마가 버리고 3, 6,9 아이들도 이번 달까지 저희가 돌보면 다음 달부터는 좋은 환경으로 정부의 도움을 받아 가족이 함께 살수가 있다고 하신다.

 

부득이 저희 선교회에 자랑이 있다면 12년형을 받고 2000년데 출소한 형제한분이 12년의 수용생활을 8년동안 지극히 자기를 뒷바라지 해준 주사랑교회의 헌신에 힘입어 외딴 관광지로 들어가 3 동안 쓰레기를 치우며 동네의 궂은 일을 다한 친구가 그곳 유지들에게 인정을 받아 지금은 펜션 4개를 운영하는 사장이 되었다.

 

하나님 말씀에 나한사람이 천을 이루고 나한사람이 만을 이룬다고 하셨는데, 친구가 열매를 맺자 하는 일이 곳곳 교도소에서 친구에게 복음을 듣고 형제에게 찾아들어와 함께 해수욕장의 쓰레기를 치우며 펜션사업에 동참하며 주변에 덕을 끼치고 있다.

 

형제가 출소하여서 너무나 열심히 사시는 모습에 저희 선교회도 감동을 받아 당시 20명이 넘는 형제들의 빨래와 하루7번상을 차려야 하는 식사를 제가 도맡아 했으며, 조충만 목사는 저렇게 살려고 하는 우리 형제를 내가 안도와주면 누가 도와주겠느냐 라는 마음으로 생전 음식 쓰레기 한번 손으로 만적본적 없는 목사가 아이들과 똑같이 작업복을 입고 쓰레기를 치우시던 2달간의 여정이 저희 선교회에도 있었다. -

 

주사랑 담안 선교회는, 형제 4명으로 시작해서 전주, 원주, 광주남부 교도소등 여러 곳의 형제들이나 다른 곳으로 이감되어서 새로 시작하기도 하다.

아울러 극동방송과 미국기독교방송에도 소개된바 있다.

 

인천지사 kdp092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