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공직생활 30, 나의 비전은 선교사...

임봉택 목사(사진), 경찰공직생활 어느덧 30년의 세월이 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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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경찰에 입문했을 때는 자신감 의욕을 가졌지만 중간 중간 위기가 닥쳐왔고 힘들때도 많았다. 내게 치명적인 번째 위기는 91년도 1 23일이었다. 인질 강도범과 격투를 하면서 이가 2대나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경찰이란 직업을 끝까지 가질 없겠구나라는 생각을 갖기도 했다. 그러면서 보람 있는 경찰공직생활을 어떻게 할까? 하고 고민하던 신앙생활을 본격적으로 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급기야 결정하게 것이 신학대학을 들어갔으며 신학공부를 마치고 목사가 되었다. 그리고 경찰학교 교수가 되어 30년의 공직생활을 하게 되었다.

 

임봉택 경찰(사진)은 공직생활이 3년이 연장되면 앞으로 9년을 더하게 된다. 저의 목표는 공직생활을 3년만 하고 선교사로 나가는 비전이다. 베트남에 있는 교단 신학교(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가서 교수로 2 인생을 살고 싶은 것이 저의 꿈이다. 본격적으로 이중 직업을 갖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께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가기 위함이다.

 

경찰에 입문하게 동기가 있다면?

어려서부터 항상 경찰관이 되어 소외된 사람들을 도와주고, 나쁜 범죄를 저지르는 범인 검거에 자신을 갖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운동을 대학 때도 운동, 태권도 사범. 경찰생활을 하면서 느낀 것은 머리도 중요하지만 검거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 힘도 세고...어려서부터 꿈이었기에 경찰관이 것이다.

 

경찰공직생활을 하면서 신학을 하게 계기가 있다면?

결정적으로 인질강도를 잡다 다치면서이다. 당시 죽음의 위기까지 몰렸었다. 근무하던 방배동 지역에 인질강도가 나타났는데 어린 아이 2명을 묶어 놓고 자리에서 엄마를 성폭행하고 금품을 빼앗고 통장을 보니 돈이 많이 저축이 되어있는 것을 확인하고 은행에 가서 돈을 찾아오게 사건인데, 강도가 가스총을 갖고 있었고 30cm 짜리 칼을 갖고 있었다. 2km 쫓아갔는데 나는 45구경 권총을 갖고 있었다. 막다른 골목에서 강도가 내게 가스총을 들이 대었는데, 정면에서 총을 사용할 수가 없었다.

 

가스총을 치며 강도와 엎치락뒤치락하는 과정에서 가스총에 맞아 앞니가 2 부러지며 중상을 입었다. 당시 강도는 덩치가 상당히 컸다. 185cm 85kg였고, 173cm 60kg였다. 내가 땅바닥에 깔렸는데 권총을 손을 강도가 붙잡고 총을 빼앗으려고 했는데 죽음의 공포가 밀려왔다. 그때 짧은 시간에 아이의 모습이 지나갔다. 그러면서 순간적으로 힘이 솟아나면서 강도를 제압하며 때려눕혔다.

 

이후로 외근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겼다. 112 신고를 접하면 가슴이 두근거리며 출동하기 두려운 그런 트라우마가 생겼다. 경찰관 6년차에 경찰관을 그만 탈출구가 뭘까 생각했다. 군에서 처음으로 신앙생활을 하면서 신앙이 엄청나게 좋지는 않았지만 사이 전도도 하였었는데 시기에는 전도도 어려웠었고...그래서 기회에 신학을 하여 목회자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계기가 되어 하게 되었다.

 

김복례 사모님과의 결혼은 언제 하셨나요?

1987 531일에 결혼을 하였다. 군에 있을 고모 딸과 친구여서 같이 면회를 왔다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슬하에 1(28)1녀가 있다. 임봉택 목사는(55) 김복례 사모(53). 아들이 성장하여 신학대학원 마지막 학기를 하고 있다.

 

선교사로서의 비전을 갖게 동기가 있다면?

개척교회를 섬길 40 새벽기도를 하는 마지막 전도 축제 하는데 전날까지 한명도 전도를 못했다. 그런데 유치장에 들어온 사람이 있어서 전도를 하는데 내가 신앙이 없고 신학적인 지식이 없다보니 전도가 안되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를 하였다. 전도를 잘하고 장차 선교사로 사역을 하고, 목사로서 사역을 있는 기회를 달라고 하였다. 5 후에 응답을 받았다.

 

신학대학교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게 되고 그때부터 선교사의 꿈을 가졌었다. 신학을 하기 전부터 경찰 선교와 유치장 선교, 청소년 선교를 하게 되었다. 안양경찰서에 근무를 제가 자원을 해서 2 동안 유치장 선교를 했다.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많은 전도를 시기가 아닌가 싶다. 살인범, 강도범, 청소년들은 거의 전도를 하게 되었다. 경찰 선교는 중앙경찰학교를 제가 이유이기도 했다. 신임 순경들 교육기관이다. 교수사역을 통해 상담을 하면서, 수업을 하면서 그들에게 전도를 하고, ·의경 교육을 하면서 전도를 하는 사역을 하게 되었다.

 

보람되고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30년의 공직생활을 하면서 상담학 박사과정까지 마쳤다. 심리 상담학을 하다 보니 기존의 경찰관들이 나처럼 트라우마가 많았다. 경찰관 생활 2년이면 각종 트라우마가 생기는데 그런 경찰들을 치유해주고 싶었다. 경찰교육원에 와서공감힐링과정 만들어서 올해 2 차인데 기존의 경찰관들을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과정이다. 많은 경찰관들이 치유되고 있다. 그리고 경찰관들이 근무에만 올인하다 보니 가정에 소홀한 것이 있다. 그래서 올해부부행복과정 개설을 것이다.

 

지금 진행되고 있다. 사모님들과 경찰관들이 정말로 껴안고 통곡하고 울며 치유가 일어나는데 과정을 제가 개설했고, 그리고 경찰교육원이 생긴 이래로청소년힐링캠프 처음으로 개설했다. 일반 학교를 대상으로, 학교폭력 피해자, 가해자, 일반 학생들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이다. 캠프에 참여한 중학교 1학년생들에게 엄청난 치유가 일어났다. 경찰공직생활 30 동안 3 과정을 개설한 것에 대해 의미를 둔다. 앞으로 가정폭력, 성폭력 4 사회악을 근절하는 , 경찰에 가장 요구되었던 그런 것들에 일조를 한다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

 

경찰관이지만 현재 목회자로서 사역하는 곳은?

지금은 서울 송파구 문정동 순복음 세광교회(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중고등부를 담당하고 있다. 청년부, 주일학교를 담당했었다. 현재 거주는 경찰교육원 관사에서 하고 있다. 아들과 며느리와 딸은 현재 안양에 거주하고 있다.

 

공직생활 이런 점들은 반듯이 개선되기를 바라는 것은?

심리 상담과 연계한다면... 경찰관이 행복해야 국민을 행복하게 해줄 있다. 경찰관이 행복하지 못하면 아무리 친절한 사람이라도 국민에게 친절하게 대할 없다. 경찰관이 스스로 치유할 있는 시기는 이미 지났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이것을 치유해줘야 하는데 일선에서 제가 심리 상담을 공부했기 때문에 상처받은, 트라우마가 많은 경찰관을 치유하여 주면 스스로 국민들에게 행복하게 해줄 있지 않나 생각한다. 공감힐링과정, 부부행복과정, 청소년힐링과정이 확대되어 경찰관이 치유되고 회복되어 진정으로 국민들을 섬기고 대한다면 경찰도 국민들에게 신뢰를 얻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선교사로 파송될 지역은?

우리 교단에서 베트남에 신학교를 세웠다. 교단에서 직접 운영하고 교수진도 파송을 하였는데, 그곳에 가서 신학교 교수로도 사역을 하고...특히 우리 경찰교육원에서는 코이카 과정이라고 해서 베트남, 캄보디아, 필리핀 동남아 지역의 경찰관들이 우리 대한민국의 선진 경찰의 수사 기법 등을 전수해 가는데 베트남에 가면 신학교뿐만 아니라 베트남 경찰들을 위한 사역, 제가 30 이상 배우고, 제가 가진 역량들을 베트남 경찰들에게 전수해주고 복음도 전하고 싶은 꿈이다.

 

경찰교육원 감성개발센터는 어디에 있는지요?

센터가 만들어지게 동기는 강남경찰서 관할의 뇌물사건, 경찰관들의 비리사건 도덕적인 부분의 사건들이 발생하자 경찰관들의 인성을 바꿔보자는 취지로 감성개발센터가 생겼다. 감성개발센터 내의 커리큘럼이 있다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있고, 사람의 됨됨이, 도덕성을 교육하는 인성과목이 있고, 청렴성, 인권, 리더십, 비전들을 총괄할 있는 센터를 만들어서 운영 중인데, 3 전에 만들어져서 거의 정착되었다. 이후 힐링센터가 추가되어서 경찰관들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개인 심리 상담을 해주는 곳이 감성개발센터이다.

 

경찰과 목회자의 공통점은 있다면 무엇인가요?

경찰관을 30 동안 하면서 생각한 것이... 경찰의 의무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것이다. 경찰뿐만 아니라 목회도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섬김이라고 본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킨다는 것은 바로섬김 연관되지 않으면 사실 어렵다. 목회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성도들의 섬김이다. 공통점이 있다면섬김 아닐까 생각한다.

 

현재 경찰 내에서 목회를 병행하는 분들이 분이나 되나요?

여럿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학부부터 시작해서 신학대학원까지 정통으로 코스를 밟은 것은 내가 1호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일부 경찰관 중에서 목회사역을 하는 분들이 있다.

 

30년의 경찰생활 중에서 어려웠던 점과 보람 있었던 점을 말한다면?

야간 근무를 하면서 주취자들하고 싸우는 것이 힘들었다. 여러 가지 여론 조사에도 강도 잡는 것보다, 살인범을 잡는 것보다 오히려 주취 자가 시간 시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고 악성민원인을 만나면 어쩌면 그게 가장 힘들고. 야간 근무를 하는 것이, 새워서 시달린다는 것이 가장 힘든 같다.

 

가장 보람된 것은 경찰관들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회복하고, 가정이 붕괴되는 것을 상담을 통해서, 가정에 직접 찾아가서 상담을 하고, 상담소에서 상담하고, 교회에 초청을 해서 상담을 하며, 이혼했던 가정도 재결합을 시켜주고, 이럴 가장 보람이 있다.

 

현재 개신교의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 크리스천의 삶에 대해서 말한다면?

개신교의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첫째는 목회자들이 영성을 회복해야 한다. 이게 가장 중요하다. 거기에 도덕성, 윤리가 사회에서 요구하는 수준대로 올라가줘야 된다고 생각한다. 가장 원인이 있다면 우리 목회자들이 솔선수범하지 않은 것에 원인이 있다.

 

성도들에게 원하고 싶은 있다면 말씀은 인터넷 방송, 스마트폰을 통해서 최고의 목사님들의 설교를 듣는데, 귀는 엄청나게 커졌는데 행함이 없다. 실천함이 없다. 예전에는 봉사를 많이 했었는데 요즘은 봉사가 없다. 모든 것이...회의를 하더라도 말로만이고 봉사는 안한다. 최말 단에서, 신경조직에서 해줘야 평신도들이 실천을 하고 말씀만 많이 듣고 귀만 커졌고 일을 한다. 앞으로 한국교회가 부흥되기 위해서는 첫째는 목사님들이 많은 반성과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70년대 80년대처럼 정말 기도로 무장하지 않으면 되고, 성도들은 말씀대로 많이 들었다면 실천하고 행함이 따르지 않는다면 지금보다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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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경찰행정학교에서 경찰교육원으로 옮긴 이유가 있다면?

사실 ·의경, 신입 순경, 거기도 전도하기 좋은 곳이다. 정말로 그물 안에 고기나 마찬가지였다. 4 동안 거기서 많은 사역을 했다. 그런데 심리 치유는 아직 신입 순경 같은 경우는 트라우마가 없다. 아직 경험이 일선에서 강도를 잡다가 다쳐본 적도 없고, 악성 민원인을 만나보지도 않았고, 그에 비하면 일선의 경찰관들이 인원이 훨씬 많다.

 

현재 경찰관이 10 2천명인데 지금 2 명을 충원한다고 하는데, 12 경찰이 되는데 현재 ·의경 합쳐 13 경찰이라고 하는데.. 그곳은 현재 교육받는 인원이 35 명인데 나머지 10만여 명은 상처 입은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경찰들이다. 3천명 인원보다는 10 명을 대상으로 경찰교육원에 오는 사람마다 힐링을 통해서, 상담을 통해서 사역을 하고 싶어서 경찰교육원에 오게 되었다.

 

항상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말씀과 애송하는 찬송이 있다면?

마태복음 6 33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한다는 , 섬기는 교회에서 충성·봉사를 하면 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다. 먼저 성도들이 해야 것은 교회에 충성·봉사하는 , 하나님 나라 확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거꾸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우리 성도들에게 제가 강조하는 것이 먼저 섬겨보고 하나님을 시험해 보라고, 저는 그렇게까지 말을 해보기도 합니다. 정말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는 채워 주십니다. 제가 살아온 경찰관 30 동안 제가 가고 싶다고 정말로 기도하고 했으면 여태까지 살아온 여정을 보면 하나하나 들어주시고 채워주셨다. 성도들에게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찬송은 나의 다가도록입니다. 나의 다가도록 하나님께서 책임지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앞으로 경찰관 생활 이제 9 정도 남았는데 이것도 하나님께서 마치게 하실지, 제가 기도하는 것처럼 3 정도 하고 선교사로 가게 하실 지는 아직 응답을 받았지만 저는 하나님께서 제가 기도한 , 지금까지 가지도 빼놓지 않고 응답해 주신 것을 봐서는 선교사로 보내주시지 않을까, 하나님의 뜻도 거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30년간의 경찰 생활 중에서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경찰관 30년을 하면서 계급에 대한 것은 아마 마지막 벗는 순간까지도 아쉽고 그럴 거에요. 계급을 포기하고 경찰 선교사로 왔는데, 사실 저는 그랬어요. 계급이 중요하냐, 선교가 중요하냐, 저는 선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사실 신학을 하면서 계급은 포기를 했거든요. 그런데 젊은 후배가 저와 똑같은 상황에 왔다면 저는 그렇게 말하고 싶어요.계급은 올라가고 싶을 때까지 올라갔으면 좋겠다....내가 서장 계급에서 하는 거와 청장 계급에서 선교하는 것은 하늘과 차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제가 후회되는 것이 있다면 계급이 조금 올라가서 제가 , 기관장, 그러면 지구대장, 과장.. 계급에 가서 목사를 했다면 많은 선교의 영향력을 미쳤다고 생각을 한다.

 

목회 쪽에 생각을 하면 사실 저도 처음에는 그런 생각을 했어요. 내가 목사 안수를 받으면 경찰관 생활을 그만 둬야겠다. 아직까지도 그런 욕심은 있었지요. 내가 단독 목회 아직 못해본 아쉬움이다. 앞으로 하나님께서 선교사로 보내고, 마지막에도 담임목사 사역을 주실지... 경찰교육원에도 있고 중앙경찰학교도 교회가 있는데 그런 곳에도 보내주실지 생각을 봅니다. 경찰교육원은 8 과가 있는데 현재 감성개발센터의 교수이며 계급은 경위이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