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설 >
             변질된 다원주의 시대,‘새 그릇에 소금을 담으라’
             1, 21 세기, 인간이 건설한 여리고, 유토피아 국가들
 박영남 교수.jpg
 구약시대 팔레스타인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국가이며, 찬란한 문명을 이룬 여리고 성이 있다. 기생 라합의 고향이며 여호수아가 정탐을 해서 하나님의 작전대로 무너뜨린 난공불락의 요새다. 그 후, 12지파가 땅을 분배 받을 때 베냐민 지파가 차지했다. 그러나 이 성은 다시 재건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람들은 옛 여리고의 영광, 찬란했던 에덴동산을 꿈꾸며 재건했을 것이고, 그 결과는 참혹한 실패작이 되어버렸다. 자연 환경이 아름답고 종려나무 숲이 울창한 오아시스의 땅 옥토가, 수원지가 오염되고 썩은 독물이 흘러나와, 이 물을 먹는 사람도 짐승도 병들어 죽어가고, 이 물로 농사지은 농작물이 자라다 시들어, 열매가 떨어져 버리는, 사람도, 짐승도, 식물도 살 수없는 죽음의 땅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
여리고벧엘에 선지자 사무엘이 선지자를 기르는 신학교를 세웠고, 엘리야와 엘리사가 이를 이어받아 생도를 양육하고 있었다.

 왕하 2장 19-22절에 보면, 생도들이 엘리사를 찾아와 호소한다. 자연환경이나 도시 문명은 사람보기에 찬란하고 에덴동산인데, 수원지 물이 썩어 사람도 짐승도 살 수 없고, 농사도 지을 수없는 죽음의 땅이라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엘리사는‘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오라’는 것이다. 생도들이 담아온 소금을 가지고 수원지에 올라가 물에 던지며‘하나님의 말씀이,,,내가 이물을 고쳤으니, 다시는 죽음도, 곡식이 말라 떨어지는 일이 없을 것이라’이렇게 해서 황폐한 죽음의 땅이 희망과 생명의 땅, 종려나무 숲, 오아시스로 다시 살아난 것이다.

 2, 우리는 지금, 여기here and now, 썩어가는 수원水源을 살리는 소금으로 녹아져야
 우리는 지금, 무엇이, 어떻게 변질 된 시대를 살고 있는가? 진리와 진실, 본질은 사라지고 현상만 남아있는 다원주의, 홍수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정보만능의 홍수, 지식, 기술, 과학만능의 홍수, 황금만능의 홍수, 물질만능의 홍수, 직업만능의 홍수, 향락만능의 홍수,,, 그러나 홍수 속에는 생수가 변질되어 마실 물이 없다. 인간이 보기에 좋게 재건한 여리고 성처럼, 변질된 시대에는 모든 가치관, 진리, 신앙도 변질된다. 하나님의 창조의 세계가 타락한 인간의 손에 의해서 변질되어 버렸다. 물의 근원, 수원지가 오염되어 썩은 물이 흐르면, 물이 독으로 변해 그 물을 마시는 사람이 병들고, 짐승이 죽어가고, 식물이 말라버린다.‘성읍의 터는 아름다우나, 물이 오염되어 사람도, 짐승도 살 수 없고, 토산물이 익지 않고 떨어진다.’오늘의 교회, 하나님의 백성이 변질된 이 시대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 갈 것인가? 처방은 하나다.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수원지水源地에 올라가 뿌리는 것이다’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시대가 바뀌면 이를 받아 수용할 그릇도 새것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릇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의 정신이요, 혼이다.‘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소금은 불변의 맛을 유지하는 본질의 가치이며, 변질을 막고, 참맛을 내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사람이 사는 의미意味, 뜻이며, 살맛을 나타낸다. 저 넓은 바다가 수만 년, 수억 년을 썩지 않고 살아있는 것은, 2,7%의 소금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97,3%의 맹물이 아니라, 2,7%가 있어 97,3%까지, 모두 함께 사는 것이다. 50명의 선지자 생도가 새 그릇에 소금으로 담겨져, 수원지에 뿌려짐으로 변질된 샘의 근원을 정화시켜, 여리고 성 전체를 살려낸 것처럼, 오늘의 한국교회가 이 변질된 다원주의 세상을 바꾸고 살려내는, 소금으로 새 그릇에 담겨져 하나님 손에 고쳐지기를 기원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