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와 짝 궁하기

  빠르게, 쉽게, 가볍게
달려가는 세상에서
느리게, 어렵게, 무겁게 기어가기
 

어디까지, 언제까지
달려 갈 목표도 약속도 없이
게임 규칙도 없이
누구를 이겨먹어야 할 상대도 없이
홀로 쓸쓸이 가는 너

네가 등에 짊어진 통하나가,
너의 아파트이면서
패 숀 옷이면서
모든 재산 목록이면서
하나 뿐인 목숨인
통 하나 달랑
평생을 짊어지고 가는 너는

땅에서,
남보다 다섯 배 앞서려고
빠르게, 쉽게, 가볍게
달려가는 세상에, 너는,
느리게, 어렵게, 무겁게, 생각하며,
백길 천길 뛰어넘어
왕대나무 타고 하늘에 오르는

  나의 짝 궁,
네 이름은 달팽이
철학자 디오게네스

 

박 영남<건국대학교 문학
   논술아카데미 주임교수>
<본지 논설위원,
 시인, 문학 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