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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고 우울증에 걸려
늘 뭔가를 찾아 헤매던 시절이었습니다.
어느 날 종로에 갔다가 박목월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선생님은 저를 살피더니
"니 요즘도 글 쓰나?
내가 일요일에는 집에 있으니
와서 다시 글을 시작해라.

시를 써오면 내가 봐 주겠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날부터 용기백배, 당시 둘째 아이를 임신했는데도
밤새 글을 써서 선생님 댁에 갔습니다.

"선생님 저 왔습니다."
맨바닥에 앉아 글을 쓰던 선생님은
아무 대답도 안 하셨습니다.

배가 부른 상황에서 무릎을 끓고 있으려니 죽을 맛이었습니다.
그렇게 10-20분 정도 기다리자 뒤를 돌아보며
"왜 왔노?" 그러시는 겁니다.

우물쭈물하며 시를 보여드리니
종이를 휙 던지면 글씨가 너무 크다고
"다음에 작게 써 온나." 하셨습니다.
철대문을 나오면서 맹세했습니다.

이 문을 다시 들어오면 인간도 아니라고.
그런데 다음 주에 다시 갔습니다.

이번에는 글씨가 너무 작다며 종이를 던지셨습니다.
이렇게 여덟 번을 가서야 선생님이 첫 추천을 해 주며 말씀하셨습니다.

"그 동안 고생했다.
자네를 종로에서 처음 봤을 때 너무 위험했어.
그냥그냥 좋게 대우해서는 시를 쓸 수 없었을 거야."
그때 명예를 얻는 길이었다면,
부를 얻는 길이었다면
철대문을 건너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내 영혼을 살려야만 했기에 서러운 박대를 당하면서
그 집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그 동안 잘했어" 라는 말을 기억하며
'이보다 더 험한 길을 걸어왔는데 왜 내가 걸어가지 못하겠는가.'
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글은 김인숙 님께서 보내주셨습니다.
신달자, "여덟 번의 거절", 『좋은생각』 2010년 7월호>

*하루 한단 기쁨으로
 영성의 길 오르기*

  당신이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모른다면
어떤 바람도 당신을 도울 수 없다.
<파울로 코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