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마6:17)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하루 세끼를 규칙적으로 먹는 것이 건강의 비결이다. 그러나 심신의 상태가 비정상적인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몸이 아프고 전혀 식욕이 없을 때는 안 먹는 것이 상책이다. 정신적 충격을 받았을 때 식음을 전폐하는 것도 일종의 인체 보호본능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동물은 병이 나거나 부상을 당하면 감식 또는 금식을 한다고 한다. 그리고 동물에 따라서는 주변상황이 급작스럽게 바뀌거나 적응이 도저히 불가능할 때는 장기금식(동면)에 들어간다. 사람만이 병이 났을 때나 위기에 처했을 때 평소보다 평소보다 더 잘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현대 성인병의 70%가 잘 먹어서 생기는 식원병(食原病)임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먹어야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식욕부진이라면 무조건 보약이나 보신식품을 과량으로 상용하고 있음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다. 먹어서 생긴 병은 먹지 않음으로 회복된다는 원리는 결코 논리의 비약이 아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체는 자체조절기능을 가진 유기적 시스템이다. 인체는 내부적 상황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표현하고 때로는 강력한 경고를 발한다. 다만 말이 없을 뿐 증상으로 표시한다.

식욕이 전혀 없다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현재의 비상사태에서 음식물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음식을 소화, 흡수하기 위해 위장관계로 보낼 혈액을 다른 위급한 곳에 보내 혈액순환을 원활히 함으로 신체를 정상화하겠다는 의사표시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선 먹는 것의 우선 순위가 낮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실 음식물의 섭취를 중단하는 것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치료법 중의 하나이다. 히포크라테스나 갈렌 등 저명한 의사들이 질병치료를 위해 단식처방을 했으며 수많은 종교가, 철학가들이 정신적, 도덕적 수련을 위해 금식을 해왔다.

세계의 장수국가 중 하나인 스웨덴 국민은 금식에관한 한 300년의 전통을 가지고 잇으며 유럽과 일본의 최고급 건강관리센터에서도 건강 및 미용을 위해 금식을 활용하고 있다.

금식은 타성에 빠진 신체를 활성화시키는 충격요법이다. 이른바 인체는 자극을 받으면 정상으로 돌아가려는 작용이 나타나는데 이런 정상화 작용이 인체에 유익한 방향으로 극대화되는 것이 금식의 효과이다. 즉 음식물이 들어오지 않는 상태에서 정상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인체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게 되고 각종 호르몬의 분비가 활성화된다. 이러한 정상화 작용에 의해 인체의 저항력은 강화되고 자연치유력은 극대화된다.

오랜 세월에 걸쳐 축적되어 온 노폐물은 배출되고 잉여물질은 에너지의 공급을 위해 처리된다. 특히 위장관과 혈관 등에 있던 불순물이 제거되므로 소화기 및 순환기 질환에 드라마틱한 효과가 있으며 각종 성인병의 예방과 치료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 특히 난치병을 금식으로 고쳤다는 많은 사례가 사실로 입증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금식은 무분별한 식생활과 환경공해, 운동부족 등 열악한 조건에서 생존해야하는 현대인의 심신을 새롭게하기 위해 하나님이 숨겨두신 카드가 아닐까?

그러나 무분별한 금식은 오히려 건강을 해치는 경우가 있으므로 전문가에게 자문한 후 자신의 상태에 맞게 금식기간과 금식의 방법을 결정해야 한다. 금식 중에는 신체의 활성화를 촉진하기 위해 생수를 게속 마시는 것이 바람직하며 특히 회복식의 기간에는 금식기간 못지 않게 절제가 필요하다. 그리고 금식이 모든 병을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금식을 오래하거나 자주한다고 더 효과가 있는 것도 아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의 말씀을 통해서 금식을 구제 및 기도와 더불어 크리스쳔의 자연스러운 생활양식으로 언급하고 게신다(마6:16-18). 또한 예수님은 금식할 때에 머리에 "재(슬픔의 표현)" 대신 "기름(즐거움의 표현)"을 바르라고 하심으로 금식의 또 다른 새로운 의미를 조명하셨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함은 물론 몸과 마음이 완전히 새롭게 되는 금식은 마땅히 기쁨과 즐거움으로,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해야 하지 않을까?

 

황성주 박사 저 "성경으로 본 건강학"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