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신학 입장에서 총회정치 총평(소명편)]

직전 총회장 선관위 위원장 배제는 역사의 맥을 끊는 중대한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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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 사태의 책임은 직전 총회장 임원들이 공동으로 짊어져야


총회가 지향하는 신학 정체성은 역사적 칼빈주의와 청교도 신앙 개혁신학에 있다. 이같은 총회의 신학 정체성은 총회 정치와 사무 행정 모든 분야의 근간을 이루고 있으며, 100 총회 역사의 유산이다.

 

리스(John H. Leith) 칼빈에게 있어서신학은 이론적인 학문이 아니라 실천적인 학문이리고 주장한 있다. 이는 총회가 나아가야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해 주는 의미심장한 말이다. 하지만 총회 정치 사무 행정 등이 칼빈주의와 청교도 신앙 개혁신학이 적용되고 있는가?

 

최근 총회 정치와 사무 행정 등의 실상을 자세히 살펴보면 칼빈주의나 청교도 신앙 개혁 신학을 벗어난 행태들이 너무나 많다. 총회 정치가 표류하고 있으며, 총회 사무 행정도 원칙을 벗어난 일들이 빈번하다.

 

그렇다면 무엇이 총회를 혼란케 하고, 총회 정치가 표류하고 있는가? 답은 명백하다. 총회 정치에 개혁신학이 실종되었으며, 총회 행정에 청교도 신앙 칼빈 신학이 제대로 적용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칼빈은 자신의 생애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이끌림을 받았다" 고백하면서 다음과 같은 증언을 남겼다.

 

하나님께서 본래 낮고 천한 신분에서 나를 이끌어내셔서 복음의 선포자와 사역자의 영광스러운 직임을 베풀어 주심으로써 나를 가치 있게 만들어 주셨다."


이같은
고백은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에 대한 위대한 신앙 고백이요, 생생한 삶의 체험이다. 하나님의 섭리와 관련하여 그는 [기독교 강요]에서 빗방울 하나라도 하나님의 확고한 명령 없이는 떨어지지 않는다"(1 16 5) 고백할 정도였다.

 

칼빈에 의하면, 만사와 만물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이루어진다. 이처럼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 사상이 칼빈 신학의 골격이다. 그렇기 때문에 총회 정치는 철저히 개혁신학과 칼빈주의 정치관에 입각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을 인정하며, 정치의 모든 분야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분야마다 인본주의와 세속주의의 목소리가 크다. 이같은 현상은 총회의 현실만이 아니라, 기독교계 전반에 걸쳐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스토트(John Stott) "현대교회를 병들게 병페가 바로 세속주의와 인본주의"라고 지적한 있다. 오늘 우리의 문제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면 문제점이 무엇인가?

 

개혁주의 정치 소명관

예수님은 기도 중에 소명을 받으셨다. 누가는 이를 집중해서 부각하고 있다. 이는 의사였던 누가의 직업과 무관하지 않다. 소명이 없는 의사는 돌파리 의사다. 그러기에 누가는 의사처럼 예수님도 분명한 소명으로 사역을 시작했다는 것을 강조한 듯하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실 무렵 기도하시다가 성령의 음성을 들으셨다(3:21-22). 하늘에서 들려오는 음성을 듣고 소명을 확신한 다음, 소명감에 따라 십자가를 짊어지신 것이다. 예수님의 소명은 신적이었고, 강력한 세속주의를 이겨내는 힘이 되었다.

 

결국 예수님은 불타는 소명감으로 죽음의 위기를 이겨내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이처럼 소명이 분명하신 주님은 십자가의 길을 가시다가 마침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기 목숨을 버리셨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인류 구원의 소명을 위해서 자기 희생, 좁은 , 고난의 , 심지어 죽음에 이르렀다. 예수님이 받으신 신적인 소명은 자신의 생명을 죽음에 이르도록 강력한 동력이 되었다.


주님의
수명은 만세 전에 계획된 하나님의 뜻이었으며, 때가 차매(4:4)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세상에 오셨다. 그리고 자기 몸을 드려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셨다. 개혁신학에 입각한 정치적 소명은 바로 주님의 소명에서 시작된다.

 

따라서 주님처럼 정치권 인사들의 소명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총회를 섬기려는 확고한 소명감을 바탕으로 자기 희생, 좁은 , 고난 그리고 자기 몸을 찢는 십자가 죽음 등에 있다.

 

그러면 총회 정치에 부름받은 지도자들의 소명이 무엇인가? 그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정치적 소명을 받았을까? 총회를 위해서 무엇을 봉사하고 어떻게 희생하라는 부름을 받았을까? 총회 정치 일선에 나선 인사들이 총회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 어떻게 신적인 소명을 받았는지를 하나씩 점검해 보면 의심스러운 부분들이 금방 드러난다.

 

정치권 인사들을 강하게 위협하는 유혹 중의 하나는 명예욕과 물질욕, 그리고 권력욕에 있다. 총회 정치권 인사들에게 () 유혹은 쉽게 버릴 없을 만큼 달콤하다. 총회장은 매해마다 삼백만대 (3,000,000:1) 주어지는 바늘 귀보다 어려운 경쟁을 뜷고 차지하는 귀한 영예다. 총회 임원들 역시 그에 못지 않는 영예며, 상비부장 특별 위원장을 비롯한 기관의 장과 임원들 모두 화려한 직책이다.

 

사실상 예수님께서도 그런 () 제안을 받으셨다. 삼십대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병을 고쳐 달라고 애원하는 엄청난 명예와 권력욕의 유혹을 받으신 것이다. 하지만 주님은 그런 제안을 단호하게 물리치셨다. 오히려 순간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기도하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셨다. 이것이 바로 총회 정치권 인사들이 따라야 소명의 본이다.

 

진정한 정치 소명은 자기 희생과 십자가 안에서의 죽음

진정한 소명은 거머쥐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희생하면서 겸손히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다. 때로는 자기를 부인하며, 다른 사람들이 가지않는 좁은 길을 선택하기도 한다. 참된 소명자는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도록 자기를 내놓는 사람이다. 자기에게 주어진 자리를 양보하고 내어 놓을 있는 결단은 십자가를 경험할 때만 가능한 일이다.

 

이처럼 총회 정치를 위해 부름받은 소명자들이 서로 자기를 낮추고, 자기 몸을 찢는 희생이 있을 총회 정치가 회복될 있다. 자신의 이름과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자기를 찢는 아픔을 감수하는 정치 소명자들이 나올 비로소 개혁주의 정치가 회생(回生) 있는 것이다.

 

이번 선관위 위원장직을 놓고 총회 임원들이 무려 4개월 동안 고심한 결과를 발표하자 교계 언론들은논란 예상등의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엄밀하게 생각하면 이번 사태는 매우 중대하다. 직전 총회장을 뚜렷한 근거없이 정서와 여론만으로 97회기 총회장을 선관위 위원장에서 배제시킨 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의 맥을 끊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번 일로 법적인 문제가 제기되면 다시 혼란이 예상되기에 상호 자제하고 순복하기를 바라지만, 총회 정치를 바로 평가한다는 차원에서 분야 인사들에게 드러난 흠결을 지적하지 않을 없다.

 

98회기 임원들은 97회기의 혼란을 수습하지 못한 책임을 97회기 총회장에게만 지우는가? 당시 비대위가 아무리 압박해도 총회 임원회만 정상적으로 가동했더라면 혼란을 잠재우고, 최종적인 판단은 98총회시에 받았을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97총회 임원들은 비대위의 눈치를 보면서 총회 임원회를 수차례 파행시켰다. 책임은 기피하는가? 이번 직전 총회장 선관위 위원장 배제 사태는 98회기 정임원들의 무책임한 행동이며, 신적인 소명을 잃은 소신없는 행동이다. 적어도 정치 신의를 지키는 것은 상식이다.

 

개혁 신학적 정치 소명에서 이탈된 사례들

이런 실상들은 총회 정치가 개혁주의 정치관에서 벗어난 생생한 증거들이며, 개혁 신학적 정치 소명에서 이탈된 명백한 모습들이다. 이번 사태에 대해서 아프지만 개혁주의 정치 회복을 위해서 지적하고 넘어갈 구체적인 실상들은 이렇다.

 

예컨대, 총회 정치권의 판세를 총체적으로 읽지 못하고 임원이라는 권력의 힘을 빌어 일방적으로 직전 총회장을 배제시킨 총회 임원회, 엄청난 영예를 누린 후에도 선관위 위원장직을 과감히게 포기하지 못하고 직에 연연한 직전 총회장, 97총회 사태를 수습하지 못한 책임을 직전 총회장에게만 떠넘긴 전통적으로 증경 총회장들이 갖는 선관위 위원장직을 덥썩 받은 서기,

 

이런 혼란기를 틈타 차기 총회 임원 후보에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고 총회 임원들을 압박해 정치권 인사들, 심지어 직전 총회장이 속한 노회를 분열시켜 선관위 위원장직을 강탈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일부 영남권 인사들,

 

총회의 혼란을 미리 지도하거나 훈수하지 못한 증경 총회장단들, 또한 개혁신학에 입각해서 총회가 정로(正路) 걷도록 안내하지 못하고 정론직필하지 못한 교단지 기독신문과 총회 산하 사설(私設) 언론들, 총회를 개혁하겠다고 나선 이후 총회 역사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해프닝속회 총회 개최하고 지금은 개혁의 목소리는 커녕 총회의 각종 자리에 앉아서 호사를 누리고 있는 비대위 인사들.


이번
사태는 총회 정치권 인사들에게 예수님과 같은 뜨거운 소명이 사라진지 오래인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위의 현상들은 총회 정치에 개혁신학이 실종되고, 자기 부정과 희생의 소명이 흐려진 결과들이다.

 

심각한 문제는 이같은 행태는 세속적인 정치관이 낳은 위장된 개혁주의 정치의 산물들이라는 점이다. 개혁주의 정치 소명은 십자가 안에서 자기를 죽이는 죽음에서 비롯되기에 총회 정치권에서 진정한 개혁주의 정치 소명자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개혁주의를 표방하는 총회 정치권에서 주님처럼 자기를 찢어 죽으려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모두 살겠다고 발버둥 치는 모습들이그 증거들이다. 더욱이 주님처럼 영광의 자리를 내놓고 천한 자리에 앉겠다는 인사들은 찾아볼 없고 모든 좋은 자리에 연연하는 실상이 바로 총회 정치권의 실상이다.

 

결국 이번 사태는 누구 사람의 책임이 아니며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특히 총회 정치에 개혁 신학적 소명관이 흐린 탓이며, 주님처럼 자기를 희생하고 죽는 십자가 정신이 빈약한 이유 때문이다. 총회 정치에 개혁 신학적인 소명이 회복되어 총회 정치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크게 드러나고, 하나님의 주권이 널리 실현되기를 기대한다.

 

송삼용 목사/ 하늘양식교회, 개혁주의 영성아카데미 원장 www.cfoc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