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벧엘교회 박태남 목사
박태남 목사01.jpg 옛날 한 부잣집 대감이 소중한 보물을 도난당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집안사람의 소행이 분명하다고 생각한 그는 시장에 가서 새 잠옷을 사오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저녁이 되어 집안 식솔들이 한 자리에 모이자 대감이 말했습니다.

“이제 내가 너희에게 새 잠옷을 하나씩 줄 테니 내일 아침 각자 잠옷을 입은 채로 다시 이 자리에 나오도록 하여라!”

영문을 알지 못한 식솔들은 궁금해 하며 잠자리에 들었고, 다음날 아침 대감의 명령대로 잠옷을 입은 채로 마당에 모였습니다. 그런데 모인 식솔들을 세심히 둘러본 대감이 그들 중 나이든 하녀 하나를 불러 세우더니 이렇게 호령을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네가 죄를 짓고도 마음이 편할 줄 알았더냐? 어서 훔쳐간 보물을 내놓지 못할까?”도대체 대감은 어떻게 범인을 찾아낸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그녀의 잠옷이 가장 많이 구겨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양심의 가책을 받아 밤새도록 엎치락뒤치락 하느라…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이여!
언젠가 우리가 주님 앞에 서게 될 때에 그때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요?
혹시, 거리낌과 가책으로 마구 구겨진 삶의 옷을 입은 채 머리를 들지 못하고 서 있지는 않을까요?

자, 더 늦기 전에 여기서 우리들의 삶을 다시 한 번 돌아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