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동안 뉴스의 첫 머리를 장식한 것은 미국대학수능시험에 해당하는 SAT시험문제 유출사건이었다. 그 주인공이 한국 사람이고, 한국의 사교육의 중심인 강남의 잘나간다는 학원들이 그 주체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은 국내에서만이 아니라 국제적으로 엄청난 파문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것으로서 망신을 당했다.

전 세계에서 공통으로 시행되는 시험이지만 시차(時差)에 따른 시험시간의 차이가 있고, 그것을 이용해서 먼저 보게 되는 아시아권의 나라들에서 시험문제를 빼내서 10여 시간 후에 치르게 되는 미국의 수험생들에게 알려주는 대가로 엄청난 돈을 챙긴 사건이다.

빼낸 문제를 수험생들에게 팔게 되는데 이 때 한 문항 당 5만원씩을 받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 학생이 지불해야 하는 돈만도 수백만 원이나 된다. 수험생이 얼마나 많은가. 하니 학원들은 족집게라는 소문을 내서 부정한 방법으로 엄청난 부를 축척했던 것이다.

하지만 전해지는 뉴스에 대한 반향은 그리 뜨겁지 않다. 일주일 동안 뉴스가 중점적으로 다루었지만 국민들의 반응은 시큰둥한 것 같다. 필자만 느끼는 것일지 모르나 두려움마저 느껴진다. 그러면 왜 다른 뉴스에 비해서 반응이 시큰둥할까? 여기에는 두 가지 정도의 원인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일반인들이 SAT라고 하는 시험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고, 직접적인 관련이 없기 때문에 무관심하거나 관계가 없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또 하나는 목적 지향적 가치관에 지배를 받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부정한 방법까지도 능력이라고 생각함으로써 문제시 하지 않겠다는 이유가 아닐까.

만일 이러한 가정이 가능하다면 우리는 심각한 장애상태에 빠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장애라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인 것이다. 자녀를 교육하기 위한 교육열에 대해서는 세계가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것이건만 정작 무엇을 교육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직 목적만 달성할 수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것일 뿐이다. 공정성과 같은 경쟁에 있어서 기본적인 자세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오직 자신과 자신의 자녀가 일등하면 되고, 원하는 대로 합격을 할 수 있으면 된다는 논리만 있을 뿐이다.

교육의 기본은 공정한 경쟁부터다. 하지만 이미 교육까지도 불공정을 전제로 한다면 과연 무엇을 교육하자는 것인가. 이 물음에는 목적만 있을 뿐이지 과정은 중요하지 않다는 입장인 것이다. 또한 그러한 심리를 이용해서 돈을 챙길 수 있으면 되지, 부정한 방법이 교육에 미치는 영향이나 결과에 대해서는 생각할 가치조차 없다는 입장인 것이다.

실제로 교육의 현장에서 만들어진 사건이고, 그 주인공들이 모두 교육을 하는 사람들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면 그러한 교육기관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무엇을 배우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어떤 가치관과 인격을 형성하고 있을지. 그리고 그러한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하지만 이러한 질문이 어리석은 것처럼 느껴진다. 이 사건에 대한 반향은 그리 크게 나타나고 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부끄럽기 때문에 감추려는 것인지는 몰라도, 그만큼 우리 사회의 정서가 공정한 경쟁에 대해서 무감각하다는 증거일 게다.

문제는 그만큼 우리 사회에 공정성과 공의에 대한 의식이 희박하다는 것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실용적 자본주의와 목적 지향적 가치관이 우리 사회에 지배적인 영향을 주면서 형성된 사회적 인식이 아닌가 하는 진단을 하면서 그 심각성에 대해서 한국교회도 깊은 사고가 필요하다. 국민으로서 신자들의 의식도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는 교회도 이 같은 현상이 있음을 지적할 수조차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흔히 ‘은혜’라는 말로써 공의를 무너뜨리는 일들이 많은 것을 우리 스스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은혜’는 무질서와 부정을 용납하거나 모른 척 방임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공의를 말하면 ‘은혜’가 없다는 식의 반응은 그리스도인들의 의식이 어떤 상태인지를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신학교에서 학생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시험을 치르고, 다른 사람의 리포트를 카피해서 제출하는 것, 나아가 리포트를 미니 홈피에서 판매하는 것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면 한국교회는 사회를 향해서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한 마디로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지금이라도 부끄러움과 잘못을 깨달았으면 좋으련만 자신들의 행위가 잘못되었고, 부끄러운 것임을 깨닫지 조차 못하고 있다면 우리의 미래는 없는 것 아닐지. 분명한 것은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정직과 공의에 있어서 본이 될 때 이 나라의 미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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