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중원은 병원이자 예배공동체, 일부 시청자들 "선교사 미화" 비판도

지난 5일 포털사이트 ‘다음(Daum)’ 검색어 순위에 알랜(Horace Newton Allen)선교사가 이름을 올렸다. 그가 통합검색어 2위에 랭크된 이유는 바로 이날 방영된 SBS월화드라마 <제중원>의 방송직후였기 때문. 이날 방송분에서 구한말 기독교가 전해질 때 의료선교에 앞장섰던 알랜이 등장했다.

드라마에 선교사 ‘알랜’ 등장
4일 첫 방송된 이 드라마는 국내 최초의 근대식 의료기관인 제중원(광혜원)을 배경으로 백정출신의 의학생, 선교사의 통역을 담당하던 역관의 딸 여의사, 성균관 유생이 함께 동등하게 의술을 겨룬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신분제가 붕괴되어 가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서 제중원이라는 공간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여주겠다는 게 제작진의 기획의도다.

이에 2회 방송분에서 ‘호러스 알랜’이 배를 타고 조선으로 오는 모습이 방영되면서,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유발했다. 특히, 극중 주인공인 백정의 아들 소근개(박용우 분)가 총상을 입어 쓰러진 상황이라 그 기대감을 극대화시키기에 충분했다.

제중원 설립의 숨은 목적은 ‘선교’
알랜의 일기에 따르면 실제로 제중원에는 약 20명 정도의 한국인들이 일을 도왔다. 정부의 주사, 조수(학생), 서기, 식당직, 사환 등을 맡은 이들이었다. <고종실록>에 따르면 오전에는 4~6시간 정도 수술을 했고, 오후에는 70명정도의 환자들을 진료했다. 당시 의사로서의 임무에 충실했던 알랜이었으나, 병원 설립의 숨은 목적은 개신교 선교였다.

직접적으로 복음을 전하지는 않았으나, 이 병원 수위의 아들이 전도사업을 해야겠다고 결심할 정도로 영향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기독교 금교령 등으로 1888년 5월~9월까지 모든 종교적인 활동이 금지되고, 그 이후에도 선교가 불법이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제중원의 일부 학생들은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합리적(?) 예배공동체 제중원 ‘교회’
『언더우드 목사의 선교편지』에 의하면, 일부 학생들이 선교 사역과 연관된 기독교인 학생들과 함께 공부할 수 없다고 병원장(외부부대신)을 방문한 적도 있었다. 이를 들은 병원장은 그러나 “자네들 스승 역시 선교사일세. 자네들이 조씨와 같이 공부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 이 학교를 떠나도 좋네”라고 답했다. 알랜과 정부에 의하여 설립된 국립병원 제중원은 병원이면서 동시에, ‘합법적’ 선교 현장이었던 것이다. 당시 기독교에 대해 가르치는 것이 국법을 어기는 행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제중원의 틈새에서는 예배공동체가 형성되었다.

이에 대해 『한국 기독교와 초기 의료선교』의 저자인 신재의 의사는 “제중원은 병원일뿐만 아니라 신앙공동체인 교회로도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알렌을 비롯한 선교사들이 제중원에서 치료하는 가운데 예배, 성찬식, 세례 의식을 하는 교회를 설립했다는 문장이 한국기독교 역사에 추가되어야 한다는 논증이다.

같은 책의 공저자인 경희대 김권정 교수도 “1890년대 정치사회변동 과정에서 제중원은 병원으로써 뿐만 아니라 신앙공동체로서 서울지역 장로교회 개교회 설립에 직접 간접으로 관련되어 있다”며 “기독교 복음선교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다”고 강조했다.

일부 시청자들 “선교사 미화했다” 비판
하층민들과 함께한 헤론 선교사도 등장 예정

 그러나 드라마 ‘제중원’에 대한 논란이 적지않다. 1,2회가 방송된 후 시청자게시판의 유지현 씨는 알랜에 대해서 “지금가치 1조원정도 조선의 재산을 팔아먹은 인물을 가공해서 마치 위대한 의료 선교사로 날조”하려한다며 비판했다.

이후 알랜이 운산광산의 채굴권, 경인철도 부설권을 미국업체에 주선한 것과 주한 미국공사가 되어 전등과 전차선로 부설 등의 권리를 미국에 넘겨준 사례를 지적한 것. 또한 일부 사이트에서는 “알랜을 통해서 미국의 모습을 미화하려는 장로 정부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극단적인 평가도 올라오고 있다.

알랜 선교사에 대해서는 한국 교계에서도 교회나 교단에 따라 그 평가가 엇갈리고 있어, 이번 드라마 방영으로 그에 대한 토론이 더 풍성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그런데 더 주목이 되는 부분은 알랜에 이어 제중원을 맡는 헤론(John W. Heron)선교사에 대해서도 다룬다는 것이다. 그는 환자들을 치료하다가 이질에 걸려 단명한 탓에 그동안은 연구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왕이나 양반들을 대상으로 기독교를 전하던 알랜과는 달리 헤론은 제국주의적 정치와는 거리를 두고, 하층민들 사이에서 일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전해진다. 그런 그의 모습을 드라마 <제중원>이 비중있게 그려낼 예정이다.

주인공 소근개는 실존인물 ‘박서양’ 모델
아버지 박성춘은 백정출신 세례교인으로, 열렬한 사회운동가
한편 이 드라마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근개(황정)는 백정 출신에서 의사가 된 실존인물 박서양을 모델로 했다. 박서양의 아버지는 박성춘으로 백정출신의 세례교인이다. 열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던 박성춘을 제중원 4대 원장 에비슨(O.R.Avison)선교사와 무어(S.F.Moore)목사가 발견해 치료한 것이 인연이 됐다. 계급에 상관없이 병을 고쳐주는 모습에 감동한 박성춘은 바로 기독교인이 됐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무어 목사가 인도하던 곤당골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사건을 두고 양반 교인들이 ‘백정의 입교’라며 항의하고 교회를 떠난 것이다. 그들이 만든 교회가 바로 홍문동교회다.

그런데 박성춘은 이에 굴하지 않고, 백정 교인들을 계속 전도해 교회의 안정을 주도했다. 그는 또 만민공동회의 연사가 되어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연설을 할 정도로 정치 사회적인 개혁운동에 열정적이었다. 교회를 떠났던 양반 교인들도 3년 만에 다시 곤당골교회로 돌아왔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백정들을 열렬히 전도하며 사회운동에도 열심인 박성춘을 보며 느끼는 바가 있었을 것”이라며 “말씀에 기초해 봤을 때 자신들이 백정출신 교인들에게 했던 행동이 얼마나 비신앙적인 것인가를 깨닫게 되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에게서 자라난 아들 박서양은 1908년 제중원을 졸업해 조선 최초의 의사가 되었다. 일본의 국권침탈 이후에는 간도로 옮겨 병원과 학교를 세워 독립운동을 지원했다고 한다. 드라마 <제중원>에서 ‘황정’으로 묘사되는 그는 혼란과 격동의 시대에 인술로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하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개신교물 빼면 ‘제중원’ 설명 안 되는데…
 이렇게 보아도, 저렇게 보아도 제중원은 개신교라는 종교를 빼고는 온전하게 묘사되지 않는다. 공중파 드라마에서는 이례적으로 선교사가 비중있게 등장해 일부 시청자들이 뜬금없어 했지만, 사실상 ‘뜬금없음’이 아닌 것이다. 선교사들과의 얽힌 역사를 풀어내지 않으면 ‘제중원’ 자체는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어쨌든 드라마 <제중원>을 보는 시청자들의 선교사에 대한 평가는 좋든, 나쁘든 한국 교계에는 득이 될 것으로 보인다. 부정적 평가에는 합당한 토론으로 맞서고 긍정적 평가에는 더 자세한 설명을 덧붙임으로, 한국기독교사를 더 풍성하게 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개신교를 빼고는 설명할 수 없는 근현대사 사건들은 이외에도 많이 있다(독립협회도 개신교 공동체를 빼고는 온전히 설명되지 않는다).

이런 것들을 계속 발굴하고 밝혀내야, 교과서를 쓰는 이들도 좋든 싫든 ‘어쩔 수 없이’ 개신교를 끼워주지 않을까? 여러모로 이 드라마와 시청자들의 반응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