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로 ‘제2의 인생’ 꿈꾸는 장애인 배우들

장애와 고통 이겨가며 연습에 또 연습‘장애예술인 사회희망 세우기’ 사업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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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사실 통증은 24시간 동안 계속 되요. 활동보조인이 없으면 일상생활도 어렵고요. 하지만 저와 같은 류머티즘 환자분이 공연 후 펑펑 울면서 저희 덕분에 희망을 얻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됐다는 말씀을 하실 때 저 역시 용기를 얻고 배우라는 사명감을 갖게 됐어요.장애인 창작뮤지컬 연리지연습실에서 만난 뮤지컬 배우 정유미 씨의 말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은 장애예술인 사회희망 세우기사업을 통해 장애예술인이 예술창작물과 예술 활동을 기획, 제작, 공연하는 것을 지원하고, 이를 통해 전문예술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역량을 강화하며, 이들의 문화예술 일자리 창출을 꾀하고 있다.

 

11월 공연을 앞두고 연습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한국장애인국제예술단 연습실을 찾았다. 시종일관 밝은 웃음으로 기자를 맞아준 장애인 배우들은 같은 노래를 수십 번도 더 반복해 부르며 연습에 힘을 쏟고 있었다장애예술인 사회희망 세우기 사업은 전국12개 장애예술단체팀 약 200여 명의 장애인 예술인을 지원, 육성하는 사업이다. 장애예술인 사회희망 세우기사업은 전국12개 장애예술단체팀 약 200여 명의 장애인 예술인을 지원, 육성하는 사업이다.

 

공연 연출진인 김종우 팀장에 따르면, 장애인 배우들은 하반신 장애로 휠체어를 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발성 연습과 장시간의 노래 연습을 강행하려면 엄청난 고통과 노력이 뒤따른다고 한다. 이번에 처음 뮤지컬 배우로 나선 임세은 씨는 2007년 교통사고로 프로골프의 삶을 중단한 중도 장애인이다. 사고 후 3년간은 공황장애, 불안장애로 병원과 집에서만 생활했어요. 공연을 통해 제 인생에 많은 치유가 되는 것 같아요. 아직 장애를 다 극복하진 못했지만 함께 하는 다른 배우들을 보며 많이 배우고 있다.며 뮤지컬 배우로 첫걸음을 뗀 소감을 밝혔다.

 

장애예술인 사회희망 세우기사업은 장애인 배우와 비장애인 배우, 그리고 연출진이 함께 만들어가는 공연 사업이다. 이번 공연에 유일한 비장애인 배우로 공연에 참여하고 있는 유창호 씨는 움직임이 다를 뿐 장애인 배우들과 다르다는 생각은 전혀 없어요. 다만 저 혼자 큰 움직임을 선보이니까 그게 차이점이죠. 같은 배우의 마음자세로 공연에 즐겁게 임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연출진인 김종우 뮤지컬팀장은 지체2급의 장애인으로 이전 공연에서는 배우로 활약했지만 이번 공연에선 팀장으로 공연을 물심양면 지원하고 있다. 배우들의 특성을 1명씩 파악해 다른 배우들과 가교를 놓아주고, 말 그대로 모두가 하나 되는 공연을 만들며 저 역시 배우로 성장하고 있는 것 같아요.라며 공연에 임하는 소감을 전했다.

 


백승철 감독과 배우 유창호 씨
(). 전문 뮤지컬 배우인 유창호 씨는
이 공연이 장애인 배우들과 함께 하는 첫 무대로 기대가 크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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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예술인 사회희망 세우기사업의 목적은 비단 장애예술인 지원에만 있는 건 아니다. 장애인 배우들이 열연하는 공연 작품을 통해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시선을 허무는 작업도 겸하고 있다. 창작뮤지컬 연리지(가제)는 주인공인 여성 장애인의 이야기를 통해 장애인들의 삶과 애환을 보여주며 관객으로 하여금 장애인의 삶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하는 줄거리를 갖고 있다.

 

이번 공연의 총연출을 맡은 백승철 감독(KBS 성우)2008년부터 예술단에서 함께 호흡을 맞추고 있다. 백 감독은 재능기부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저희 배우들은 몸의 불편을 이겨내고 목표를 이루려는 집념, 열정이 대단하신 분들이세요. 저라면 그런 용기를 내지 못할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백승철 감독과 정유미 씨가 작년
one & one 미국 공연에 나선 모습.

백승철 감독과 정유미 씨가 지난해 뮤지컬 one & one으로 미국 공연에 출연한 모습이다.

 

백 감독은 공연 일화를 소개하며 대화를 마무리지었다. 공연을 하고 지하철로 배우들과 이동을 하는데 승객 한 분이 장애인들이 복잡하게 휠체어를 끌고 어딜 나오냐며 항의를 했어요. 그 때 한 배우가 씩 웃으며 저도 사람이에요.라고 말하는데 얼마나 이런 일을 많이 겪었을까 싶어서 가슴이 아팠습니다. 이번 공연 내용을 통해 장애인들도 비장애인과 같은 감정, 같은 삶의 고민을 가진 인격체라는 걸 알리고 싶습니다.라며 공연 취지를 밝혔다.

 

이번 공연은 일회성이 아니라 향후 연극의 메카인 대학로 상설 공연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다른 작품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장애인이기 이전에 전문 배우로 자리매김 하려는 노력이 담겨 있다. 그러나 이런 좋은 취지와 노력에도 현실의 장애 요소는 발생한다.

 

백승철 감독은 대학로의 그 많은 극장 중에 휠체어가 이동 가능한 엘리베이터를 갖추고 있는 공연장은 몇 군데 없어요. 전동휠체어는 성인 남자 네 명이 들어도 버거운 무게거든요. 공연을 청한 공연장에서조차 무대로 휠체어를 올릴 장치가 없는 경우가 태반인데 시정을 요청해도 귀찮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라며 열악한 공연 환경에 대해 설명한다.

 

한국장애인국제예술단은 지난해 뮤지컬 one&one으로 미국 공연 길에 오르기도 한 실력 있는 팀이다. 장애인 뮤지컬 배우들이 장애인이란 타이틀을 떼고 온전히 배우의 이름으로 서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온전한 무대가 제공되어야 할 것이다. 예술가의 이름으로 관객들과 장벽 없이 만날 수 있도록 기본적인 사회 인프라의 조성이 시급해 보인다.

이들이 전문 배우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교육을 받는 것 못지않게 직접 공연을 관람하며 배우는 것도 중요한데 현실이 이렇다보니 이 역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장애인들의 예술적 역량을 키우고 이 분야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 만큼이나 장애인을 고려한 사회환경 조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알 수 있었다.

 

 11월 공연을 앞두고 있는 창작뮤지컬 연리지팀이 한 자리에 모였다. 연리지는 불혹의 지체장애인 여성이 장애를 딛고 자신의 재능을 발견한 뒤 화가로 발돋움하며 사랑도 찾아가는 내용이다. 올해 장애예술인 사회희망 세우기사업은 전국 장애예술인 단체 12개 팀, 200여 명의 장애예술인을 지원하고 있다. 직업 선택의 자유는 헌법에 보장돼 있는 모든 국민의 권리인 바 장애인들에게도 그들의 예술적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이 같은 정책 지원이 얼마나 반가운 일인지 모른다.

 

다만, 이들의 동등한 권리를 위해서라도 좋은 취지의 정책들이 기본적인 사회 인프라가 함께 성장해 나가야 할 것이다. 공연을 만들어가는 숱한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의 노력이 빛을 잃지 않도록 말이다. 올 가을 깊어가는 가을 정취와 함께 이들의 공연을 관람해보는 건 어떨까?

 

장애인예술단 공연 일정

- 한국장애인국제예술단 연리지 1126() 3~7시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아트홀

정책기자 진윤지(대학원생) ardentmithras@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