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소영 교수, 엄마 182명 인터뷰 한「엄마되기, 아프거나 미치거나」

 그 어둠 속에서 한 아이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가 서서히 사라져갔다. 아주 선명한 여자아이의 소리였고 점점 작아지다가 그렇게 사라져갔다. … 직감할 수 있었다. 아, 아기가 잘못되려나 보다. … 부랴부랴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이미 늦었다고 했다. 그날 차가운 병원 침대에 누워서 이런저런 검진을 받는 동안 난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가 뭘 잘못한 거지?”

엄마로서, 사회인으로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는 없을까? 그 중간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아프고 미쳐버린 엄마들의 이야기, <엄마되기, 아프거나 미치거나>가 출간됐다. 위와 같은 저자의 뼈저린 경험은 물론 182명의 ‘엄마’들의 목소리가 담겼다.

여자들이 20년 넘게 공적 영역에서 교육을 받다가 결혼과 함께 갑자기 사적 영역의 삶을 강요받다보면 아프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을 선택해 양쪽을 모두 병행하는 여자들은 미치겠단다.

이 책의 저자인 백소영 이화여대 교수는 가정과 직장이 ‘선택’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육아와 더불어 직업전선에 뛰어들어 살아남는 것이 가능이나 할까? 이에 그녀는 먼저 182명의 엄마들의 ‘뒤엉킨 모성 경험들’을 살핀다.

어쩔 수 없었어요. 나도 아이들에게는 참 미안했지만, 당시 공무원 월급이 형편없이 적어 나도 일을 해야 했어요. 우유 신청해서 먹을 여윳돈도 없었으니까. 아이들에게 제일로 미안하죠. 무엇보다 우리 애들이 키도 작고 왜소하고 그래요. 애들 아빠는 안 그런대…. 내가 집안에 있으면서 영양도 챙기고 했어야 했는데 그런 미안한 마음도 들지요. 요즘엔 그래도 은퇴한 마당이니 될 수 있는 한 챙겨 먹어보려 하지만, 다들 분가한 마당에 뒤늦은 일인 거 알아요. 그래도 너무 미안해서요.(60대 후반, 전문직이다가 은퇴) <자격미달형>

정말 모르겠어요. 뭐가 잘못된 것인지…. 친정엄마는 산후우울증이 오래가는 거 같다고 그러세요. 그래도 내가 낳은 아이인데, 꼴도 보기 싫은 거 있죠. 밤새 빽빽 울면 정말 내팽개쳐버리고 싶을 때도 있고요. … 전 모성애가 없는 여자인가봐요. 제 자신에게 이렇게 실망스럽기는 처음이에요. 전 엄마로서 자격이 없는 사람인 것 같아요. 정말이지 요즘엔 모두에게 죄스럽고, 내 자신이 싫어요.(20대 후반, 대학원 휴학 중, 100일 된 아기 엄마)

그런데 이런 뒤엉킨 모성 감정을 느끼게 하는 데, 기독교가 한몫 단단히 했다는 게 저자의 입장이다. 먼저 17-18세기 서양의 자본주의적 노동관을 가진 개신교도들이 이상화한 결혼관을 무비판적으로 ‘하나님 부여하신 질서’가 오늘 날에도 신도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설명이다. 뿐만 아니라 요즘에도 전통적 결혼관으로의 복귀를 강조하는 메시지가 미국은 물론 아프리카, 아시아에 전파되고 있으니, 개신교 여성들의 자아분열은 불가피한 결과다.

모성은 천성이라서, 아이를 못 낳겠다는 수지씨의 이야기다.

이 프로그램(교회제공 예비부부 프로그램) 듣기 전에는 아이 갖기에 대해 별로 심각한 고민을 하지 않았는데…. 물론 저 같은 입장에 대해서 간사님들은 펄쩍 뛰세요. 그건 성경적이지 않다고요. 하지만 성경적이지 않기는 낳아만 놓고 보모에게 맡겨버리는 선택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만약 두 경우 다 성경적이지 않다면 저는 제 아이가 불행하게 자라는 것보다는 제가 준비되지 않았으니 그런 삶을 허락하지 않는 선택을 하겠어요.(20대 후반, 의학전공 수련의)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신 지상명령을 믿지만, 하늘이 준 모성을 제공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2세를 포기하겠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기본적인 갈등상황에 신앙적 문제까지 덧붙여지니, 개신교 여성은 같은 문제를 겪는 다른 엄마들보다 더 큰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

과거 미국의 근본주의 신앙을 받아들여 그것이 진리인양 믿고 있는 한국의 보수적인 개신교는 유교적 상황과 뒤섞여 ‘보수성’을 더해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과학적’이라는 이름이 붙은 모성개념도 더해지니 한국의 개신교 여성들은 ‘선택’이 아닌 ‘운명’으로서의 모성을 강요받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이 책의 저자는 “여자들이여, 당신들의 모성을 부정하라!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라!”고 주장하거나 선동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페미니즘이 강한 대학에서 교육받았지만, ‘모성’의 대체어로 쓰이는 ‘돌봄의 능력’에 대해서는 심각하고 치열하게 고민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직장과 집 사이에 끼어 치열하게 고민한 그녀는, 수많은 여성들을 인터뷰하고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물론 여자를 아이 낳는 기계쯤으로 생각하는 단순한 제도 개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어른이 ‘자라는 생명’을 위해 자신의 에너지와 시간을 나눌 수 있는 개선이다.

이에 저자는 “결혼을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야기로 생각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를 전제로, 주부도 직장인도 아닌 ‘모호한’ 위치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아프지도 미치지도 않는 엄마가 된단다.

이는 무모한 꿈을 꾸는 것일까? 아니면 현실적인 대안일까? 저자는 그 현실성 여부를 책을 읽는 모든 엄마들과 예비 엄마들, 그리고 그녀들에게서 난 남자들의 ‘판단’과 ‘결단’의 몫으로 돌리고 있다. 꿈 속에서 죽어가던 그 여자 아이를 살리는 생명의 길 말이다.